천재가 아닌 사람들

[오늘도, 사람!]

by 별체



하나만 특별하게 잘하는 것보다 뭐든 못하는 것 없이 중간 이상으로 해내길 원했던 소녀는 고등학생이 됐다. 그리고 자유주제로 1분 스피치를 해내야 하는 도덕 수행평가에서 이런 발표를 한다.


‘천재는 50프로의 재능과 50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이 대부분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반면,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타 지역의 고등학교를 지원해서 들어간 소녀는 입학 첫날 희를 만난다. 출석번호가 붙어 있어 강제적으로 이어진 인연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친해진 둘은 매일 붙어 다녔다.


늘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소녀는 고등학교라는 넓은 세계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희가 있었지만 여전히 같은 중학교 동창이 한 명도 없는 낯선 학교, 매일 아침 40분씩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낯선 동네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 감정은 소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소녀는 희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달랬다. 희도 소녀처럼 타 지역에서 입학해 동창이 없는 같은 처지였기에 둘은 더욱더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었다.


다만 희는 소녀와 다르게 성적이 떨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 때보다 성적이 올랐다고 했다. 소녀는 희가 좋으면서도 수행평가나 시험을 본 다음날이면 희에 대한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희는 얼굴도 작고 날씬했다. 성격도 온순하고 호불호가 강하지 않아 누구나 다 좋아하는 편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순간 기억력도 좋았다. 소녀와 같이 만화책을 보고 밤새 낄낄거리다가 시험 10분 전에 책을 쓱 보기만 해도 좋은 성적을 냈다.


소녀는 평소에 꾸준히 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성적을 희는 너무나 쉽게 받아내곤 했다. 희는 예체능에도 소질이 있었다. 특히 소녀가 잘하지 못하는 체육에서도 그녀는 매번 만점을 받아내는 팔방미인이었다. 제너럴리스트가 목표인 소녀에게 희는 소중한 친구이기 전에 소녀가 너무도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소녀는 희처럼 되고 싶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교 시간에도 체육관에 달려가 농구 골대에 공을 넣는 연습을 한 시간씩 하고, 구를 그리는 미술 수행평가를 잘 해내고 싶어 매일 연습장을 연필로 가득 채웠다. 한 학기동안 바느질로 테디베어를 만들어내야 하는 가정 시간에도 재료를 몇 번씩이나 사서 다시 만들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체육 수행평가 당일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한 탓에 오히려 연습 때보다 더 못한 실력을 선보였고, 미술 수행평가는 잘하고 싶은 압박감에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 최하점을 받았다. 테디베어는 겨우 완성해서 제출은 했지만 선생님이 검사하려고 드는 순간 옆구리에서 솜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점수가 깎였다.


반대로 소녀의 연습을 지켜보며 놀던 희는 모든 수행평가를 만점을 받았다. 소녀는 이제 노력하면 다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기 시작했다. 분명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있다고 말이다.


이제 남은 도덕 수행평가, 자유주제 1분 스피치를 위해 소녀는 희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꺼냈다.


“희야, 이번 도덕 수행평가 때 너를 보면서 느낀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어떤 건데?”


“에디슨이 이렇게 말했잖아. ‘천재는 1프로의 재능과 99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그런데 너를 보면 그 말이 틀린 것 같아. 내 생각에는 50프로쯤 재능이 있어야 될 것 같아. 노력한다고 해서 천재는 될 수 없는 것 같아.”

“크크, 뭐야. 나 천재 아니야.”

“나는 사실 너처럼 되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아.”


소녀는 차분히 그동안 희에게 느껴왔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뭐든 잘해내고 싶은데 생각보다 자신은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죄도 없는 희를 남몰래 질투했던 것, 질투심이 희와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전에 먼저 고백하고 사과한다는 말과 함께 희는 정말 천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도덕 수행평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소녀보고 생각이 너무 많다며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도덕 수행평가 시간, ‘천재는 50프로의 재능과 50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제목을 칠판에 쓴 후 스피치가 시작됐다.


‘저는 제 친구 희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사전에 희에게 동의는 얻었답니다.’ 로 시작된 스피치는 희에게 미리 털어놓았던 내용에 약간의 살을 덧붙였다.


‘천재는 아무래도 재능이 1프로는 부족하고 50프로쯤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내 소중한 친구 희는 천재가 맞는 것 같습니다.’


로 끝난 스피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끝이 났다. 그리고 소녀는 그 날 반에서 유일하게 도덕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이 됐다.


그 날 하교 길, 여전히 함께인 소녀는 희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희는 소녀에게 말했다.

“난 너처럼 못할 거야. 누가 너처럼 공개적으로 질투했었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 천재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냐. 그것도 도덕시간에.”

“그런가? 그렇게 하면 더 이상 널 질투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진짜 네가 좋고 부러워. 그 감정에서 끝내고 싶어서 그랬어.”


“진짜 천재들이 들으면 웃기겠지만 나는 네가 천재 같았어. 그리고 나도 널 계속 질투했고.”

“뭐?”

“나는 노력 안 해도 잘하는 게 아니고, 그냥 노력을 못하는 거야. 운이 좋아서 결과가 잘 나오는 게 많긴 하지만.”


“재수 없다는 소리가 듣고 싶은 거야?”

“크크, 아니. 난 너처럼 만점 받겠다고 몇날 며칠 공 던지고 그림 그리는 그런 거 못해. 꾸준히 하는 건 내가 제일 못하는 거야. 너처럼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네가 갑자기 날 질투했다고 털어놓는데 당황스럽더라. 나야말로 너처럼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소녀는 희의 고백에 놀라면서도 왠지 창피했다. 희의 장점만 보느라 정작 자신의 장점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난 너처럼 질투했다고 솔직하게 말도 못했어. 나도 미안했어. 우리 이제 둘 다 쌤쌤이야.”


소녀는 자신이 무언가 못한다는 사실을 공개할 때마다 진짜 친구를 얻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싫었다. 진정한 사람을 얻는 게 누군가의 모자란 점을 비웃는 사람들 속에서 비웃지 않고 채워주는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자신처럼 수줍음 많은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라면서.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더 많은 용기를 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순식간에 고민이 깊어진 소녀의 입에 희는 떡볶이를 들이밀었다.


“나는 네가 뭐하나 가볍게 생각 안하는 것도 부러워.”

“별게 다.”


몇 년이 지나 성인이 된 어느 날, 희는 소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 너 TV봤어? 에디슨 명언?ㅋㅋㅋㅋ”

[아니? 뭔데?]

- 천재는 99프로의 노력과 1프로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 그거 노력을 강조하려고 한 게 아니래. 1프로의 재능 없이는 절대 천재가 될 수 없다고 한 말이래.


[진짜?]

- 웅. 왜 예전에 네가 아무래도 천재는 1프로의 재능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한 50프로쯤 재능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한 거랑 비슷하지 않아? 어쨌든 노력이 아니라 재능 없이는 죽어도 천재가 안 된다는 거랑 의미는 같잖아.


[하... 어쩐지. 에디슨이 자기는 그래서 1프로의 재능 덕분에 천재라고 한거네?]

- 웅ㅋㅋㅋ 대박이지? 너는 아무래도 철학과를 갔어야 했어.

[철학 배워서 어따 써ㅋㅋㅋ]

- 내 친구 아리스토텔레스 됐을지 어떻게 아냐ㅋㅋㅋ


에디슨이 한 말에 진작부터 의심을 품고, 철학은 어디다 쓰는 거냐며 되묻던 소녀는 이제 가장 좋아하는 인문 고전으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꼽는 사회인이 됐다.


여전히 모든 걸 잘하고 싶어 하지만 자주 못하는 모습을 들키고 수줍어하길 반복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렇게 영원히 천재가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다.



이전 13화게임을 가르쳐준 사람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