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다니던 직장을 은퇴하고 시간 여유가 많아진 대부분의 어른들은 여전히 부지런하고 성실하다.오랜 경험을 통해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루의 절반가량을 직장을 위해 쏟아 붓던 어른들은 이제 그 시간을 대체할 다른 것들을 찾아야 했다. 그 중 하나로 한의원을 선택한 어른들에게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귀엽고도 엄한 딸로 살았다.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어른들을 만나본 곳이자 학생이 아닌 20대의 대부분을 일한 장소, 한의원. 철저하게 고객님이라 부르고, 차분하고 세련된 어투로 안내하던 통신사 고객센터를 그만둔 나는 이후 한의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같은 서비스직이니 이전 직장에서 배운 언어습관들이 크게 도움될 거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한의원에서는 그 습관 덕분에 오히려 애를 먹었다. 한의원은 기존에 내가 속했던 곳과는 또 다른 독특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의원에 오시는 분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첫째, 한의원‘만’ 다니는 분들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병원을 우선하고, 보조적인 치료 방법으로 한의원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일반 병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아픈 분들이 많지는 않다.
둘째, 침 치료를 자기관리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더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다니거나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지키기 위해 다니는 곳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다른 서비스 직종과 달리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노인들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장소로 한의원을 택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독특한 성향 덕분에 다른 곳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던 것들이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예를 들면 환자분, 누구누구(이름)님이라고 부르거나 깍듯한 존댓말 같은 것들이다.
67살의 김영숙님은 매일 진료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한의원에 들러 접수를 하고 가장 먼저 침 치료를 받는 분이었다. 개원한 첫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3개월 동안 그렇게 하셨기에 열 명이 넘는 우리 직원들 중 김영숙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김영숙님을 볼 때마다 깍듯하게 인사하고 치료실로 안내하곤 했다.
“나 여기 다닌 지 좀 됐는데, 매번 처음 오는 사람처럼 대하는 게 좀 서운하네.”
평소처럼 김영숙님을 치료실로 안내하던 어느 날, 김영숙님이 갑자기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매번 김영숙님, 혹은 김영숙 환자분이라고 호칭하며 깍듯하게 ‘-다’로 끝나는 어투가 친절하면서도 왠지 서운하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자주 봐서 친해진 것 같은데도 뭔가 거리감이 있다고, 혹시 한의원 방침이 그런지를 물어보셨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린 후, 우선 데스크로 돌아왔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던 그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한 건, 나도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에서 배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응대가 오히려 이곳에서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매일 보는 김영숙님에게 나는 인사와 안내 이외에는 별다른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올 수 있을까, 어떻게 매일 한 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릴 수 있을까, 아침은 먹고 오시는지, 아픈 증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계신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다.
진료와 관련된 이야기는 원장님과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물어봐선 안 될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골똘히 생각하던 나를 지켜보던 실장님이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실장님은 의외의 해답을 주셨다.
“호칭을 어머님, 아버님으로 불러보는 게 어때? 식사하셨는지 물어보고, 간단한 안부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자식처럼 대하는 걸 오히려 더 좋아하실 수도 있어.”
내 부모, 내 친구 부모 이외에 다른 사람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거기에 실제로는 부모보다는 조부모에 가까운 나이대의 분들이 대부분이니 더 어색하고 쑥스럽게 느껴졌다.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선임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의원은 단순히 치료만 받으러 오는 곳은 아닌 것 같아. 하루에 말 한마디 할 곳 없는 어르신들이 찾아오는 장소인 것 같기도 해. 자신의 말을 관심 갖고 들어달라고.”
다른 한의원에서 오래 근무했던 실장님과 선임은 서로 ‘오~’를 외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먼저 걸어간 그들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심취해,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쉰 후,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려는 김영숙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어머님. 병원에서 또 뵙자는 인사를 하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내일도 또 뵈어요. 기다릴게요.”
‘내일 9시 예약입니다. 감사합니다.’만 앵무새처럼 뱉던 내가 다른 말을 내뱉자 김영숙님은 조금 놀란 듯 했다. 그러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예쁜 딸내미가 생겼네. 그래, 우리 내일도 보자.”
기분 좋게 돌아가시는 어머님을 배웅하고 돌아온 내게 실장님과 선임은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나도 같이 엄지를 척 들어 보이고 치료실로 돌아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길 수많은 어머님과 아버님을 상상하면서 나는 그렇게 한의원의 가족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