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순간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괜찮아?’였다. 선의로 가득한 그 질문을 악의로 돌려줘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괜찮다고 해도 안쓰러운 반응, 안 괜찮다고 해도 속상해하는 반응. 대답이 어느 쪽이든 상대가 보일 그 모든 반응을 감당하기 싫었다. 그런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상상을 했다.
‘괜찮을 상황이 아니라는 거 너도 아니까 그런 질문 한 거겠지? 괜찮지 않은 내가 너의 반응까지 감당하지 않게 해줘.’
물론 상상에서 그친다. 걱정하는 이들이 섬세하게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할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저 정말 괜찮아질 때까지 괜찮은지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대답도 못하는 얼빠진 사람이 되곤 했다.
오래 만난 애인과 헤어져서 엉망인 기분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출근해야 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였다.
이제 애인도 없는데 이깟 일이 다 뭔가 싶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백번쯤 반복하며 한의원 문을 들어서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이 바빠진다. 헤어진 애인 생각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정신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맞이하다 보면 오전 진료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와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 오전에 다 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후는 여유롭다. 그때부터는 다시 마음이 어지러울 시간이다.
애인을 잃은 상실감에 자주 끼니를 거르다보니 며칠 새 얼굴이 홀쭉해졌다. 주변에서도 요즘 살이 빠진 것 같다며 한마디씩 보탰다. 힘들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았다. 환자가 없는 시간을 틈타 한의원 내에 있는 인바디 측정기계에 슬쩍 서봤다.
체중은 변하지 않았고 체지방량은 더 늘어났고, 골격근량은 줄었다. 욕설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직장이라 내뱉진 않았다.
남들은 실연 다이어트니 맘고생 다이어트니 잘만 하는데 이 몸뚱이는 왜 이리 굳건하게 살을 지키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얼굴살도 빠지지 말던가. 볼살은 있는 게 훨씬 좋은데 말이다.
인바디실 문을 닫고 데스크로 돌아오면서 결국 이 모든 건 다시 나를 차버린 전애인 때문이라며 맘대로 결론을 내렸다.
“부실장님,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데스크로 돌아오던 중, 대기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허리디스크 수술 후, 두 달째 꾸준히 침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74세의 이영미 환자였다.
“어머님! 오셨어요? 비가 많이 와서 오늘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어떻게 오셨어요?”
“나도 내일 오려고 했는데, 비가 오니까 몸이 더 안 좋아서 아들한테 태워달라고 했어.”
“그러셨구나. 접수는 하셨죠?”
“했지. 이제는 내가 입구로 들어오면 이름을 말 안 해도 알아서 접수들 해주시더라고.”
“어머님이 꾸준히 오시니까 모르는 직원이 없죠.”
“고마운 일이지. 누가 날 기억해준다는 게.”
어머님의 말에 씩 웃으며 잠시 데스크를 쳐다봤다. 환자가 없어 여유롭고 실장님은 한약 달이러 탕전실에 들어가셔서 없다며 데스크 직원이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나도 손으로 오케이를 그리며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꺼내 믹스커피와 뜨거운 물을 섞었다. 매일 보행기를 끌고 힘겹게 한의원에 오시는 어머님이 믹스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근무지 방침 상 직원이 환자에게 커피를 만들어 드리는 일은 하지 않고, 어머님도 항상 직접 타서 드시지만 비 오는 날은 몸 상태가 유독 좋지 않은지 그냥 자리에 앉아 계시곤 했다. 이럴 때면 나와 직원들이 실장님의 눈을 피해 몰래 만들어 드리곤 했다. 이번에도 믹스커피 한 잔을 어머님께 내밀고는 옆에 앉았다.
“부실장님은 센스가 좋아. 매번 고마워.”
“뭘 이런 걸로요.”
“그래서, 무슨 일인데? 얼굴이 안 좋아.”
“별일 아니에요.”
“애인이 속 썩이는구나, 그치?”
나는 이전에도 종종 어머님과 이런 식으로 내 사생활에 대해 얘기한 적 있었기 때문에 이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어머님은 이미 내가 오래 만난 애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어디에 사는지, 내가 몇 살인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 나는 잠깐 웃고는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주에 헤어졌어요.”
“오래 만났잖아. 어쩌다가? 부실장님이 찼어?”
“제가 찼으면 제 얼굴이 이 모양이겠어요?”
“힘 안들이고 살 빠진 건 좋지 뭐.”
“살은 안 빠졌어요. 몸무게 그대로에요. 얼굴만 이래요. 그게 더 짜증나요.”
어머님과 나는 동시에 빵 터졌다. 크게 웃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어머님이 지긋이 말했다.
“딸내미, 아직 젊고 좋네.”
어머님을 포함한 한의원을 자주 찾는 많은 분들은 주변에 다른 사람이 많을 때는 나를 부실장이라 불렀고, 사람이 없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딸, 딸내미, 따님, 며느리 등으로 불렀다.
그렇게 불리는 순간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진심어린 그들의 호칭이 늘 고마웠고 따뜻했다. 그래서 공적인 장소에서 종종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헤어졌는데 좋다는 말에 왠지 모를 반발심이 생긴 나는 살짝 퉁퉁거렸다.
“헤어졌는데 뭐가 좋아요.”
“헤어지는 것도 다 젊을 때나 하는 거야. 그 땐 힘든 거 회복하기도 쉽잖아.”
그렇지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애인과의 이별쯤은 아무것도 아닌 노인의 지혜를 나는 따라갈 수 없다고, 회복이 쉽든 어렵든, 어쨌든 힘든 건 힘든 거라고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애인과 헤어진 분노를 엄한 사람에게 쏟아내는 것일 뿐이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자 어머님이 조용히 말했다.
“난 이제 모든 이별이 다 사별밖에 없어.”
사별이 아닌 이별을 경험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는 어머님의 말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동시에 비겁하게도 내 이별상대는 죽은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 이별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남과 비교해서 위안을 찾는 게 너무 싫으면서도 좋은, 그런 이상한 상태가 된 나는 어머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 때 치료실에서 어머님의 이름을 호명하며 들어오라고 했다.
“괜찮아. 좋은 놈은 또 있어.”
어머님은 격려 차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보행기를 끌고 조심스럽게 치료실로 들어갔다. 나도 어머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해진 마음으로 데스크로 돌아왔다.
74세까지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온 어머님의 삶을 그저 상상해 볼 뿐이었다. 대부분의 이별이 사별로 바뀌는 삶을 지나온 그 마음을 다 알기가 두렵다. 그 마음을 내가 오랫동안 몰랐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