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그 사이 어디쯤

[오늘도, 사람!]

by 별체



“누나는 재수 없었지.”


대학교 3학년 2학기 종강 파티에서 동기 엘이 말했다. 엘은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는 다른 애들과 다르게 3학년까지 쉬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복학생으로 가득한 우리 학년에서 엘은 나랑 학번이 같은 유일한 남자애였다.


3년 내내 같은 전공 강의를 들었지만,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는 첫 대화의 주제로 ‘재수 없었던 누나와 싸가지 없는 동기’를 선택했다.


그건 우리가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대화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입학 후 처음 만난 전공 교수님은 80명이 넘는 학부생들에게 각자 1분씩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하셨다.


이럴 때 김 씨는 대체로 불리하다. 대한민국에는 생각보다 강 씨나 권 씨가 많지 않다고 느꼈고 내 차례는 5분 안에 다가올 예정이었다.


재수를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한 21살의 새내기는 이름과 나이밖에 말할 것이 없었다. 부모님이 반대했던 재수를 강행한 만큼 공부 이외의 취미생활을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여행을 다녀본 것도 아니고 최신 유행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나는 주어진 1분을 채우기에는 텅 빈 사람이었다.


내게 남은 방법은 앞사람을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앞선 네 명의 동기들은 가족 얘기를 하거나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비슷한 얘기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 동기들 앞에 섰다.


“저는 뚜밍이입니다. 재수해서 한 살 더 많아요. 저희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자기소개 하라는데 아버지가 대기업 다니는 건 왜 말하는 거야?”


강의실 뒤쪽 구석에 앉은 엘이 혼잣말하는 척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엘의 주변 친구들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멈칫했다.


내 앞에 말했던 동기 아버지는 중소기업 영업부장님이고 그 앞 동기 어머니는 반찬가게 사장님이셨다. 똑같이 말한 것뿐인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원색적인 비아냥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잠깐 강의실 문을 쳐다보며 뛰어나갈까 고민했다.


“다들 얘기했는데 왜 언니한테만 뭐라 그래?”

“엘 너나 잘해.”

“수민아,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말해.”


고맙게도 내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역시 강의 첫날부터 뛰쳐나가 출석 점수를 깎이는 것보단 이 자기소개를 대충이라도 마무리하는 것이 나았다.


엄마가 그림을 잘 그리고 동생도 엄마 닮아 손재주가 좋다는 말은 뺐다. 나는 만화와 게임과 음악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라며 랩 하듯이 단숨에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남은 2시간 내내 다른 동기의 자기소개는 이어졌지만 나는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21살의 자기소개는 어떤 말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생각했다. 적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가족 이야기 없이 스스로를 소개할 수 없는 나는 정말 별로였다.


센스와 순발력은 더 별로였다. 아버지가 중소기업 영업부장님이라는 앞 동기의 말을 그대로 베껴서 대기업 다니는 프로그래머 아버지를 뒀다고 말한 융통성 없는 인간이었다. 대기업 다닌다는 말이라도 뺄 것을. 부잣집 딸도 아닌데 난데없이 집안 자랑한 재수 없는 애처럼 보일 것이 뻔했다. 이건 앞 동기에게도 큰 결례였다.


강의가 끝난 후 앞 동기에게 나의 덜떨어짐을 열심히 설명하며 사과했다. 앞 동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2시간을 써가며 한 자기소개는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았다. 내 자기소개를 기억하고 불쾌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엘 역시도 강의가 끝난 후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우리는 3년 동안 인사 외에는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엘이 한 달 뒤에 군대 간다며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술잔을 들이댔다.


“누나는 재수 없었고 나는 싸가지가 없었지. 자기소개야 어떻게 하던 자기 마음인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줬잖아. 따지고 보면 가정환경도 자기소개에 들어갈 내용 맞는데.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안.”


그 말을 시작으로 엘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엘은 위로 누나가 둘인 막둥이이자 장남이었다. 엘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보다도 12살이 많았고 실직 후 집에 계신 지 오래됐다고 했다. 식당 일을 하시는 어머니가 실질적인 가장이라고.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대기업 다닌다는 걸 자기소개라고 하는 내가 재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도 미안. 사실 그거 자랑한 거 아냐. 내가 그때 내세울 게 우리 아빠 대기업 다니는 거 말곤 아무것도 없었어.”


엘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제대로 된 사과를 주고받는 건 꽤 근사한 일이었다. 우리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대화하지 않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 바로 얘기 해봤더라면 더 오랜 시간 좋은 친구가 됐을 것이었다.


“누나, 이제 우리 동기 아니고 친구지?”

“군대 면회 안가. 편지 안 써. 개수작 부리지 마.”


우리는 3학년 마지막 순간에 신나게 술잔을 기울이며 1학년 첫 순간의 오해를 이해로 풀었다.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가족의 직업이나 재주를 앞세워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를 앞세워 더 간편하게 소개했다. OOO의 뚜밍이라고. 이 한마디와 명함 한 장이면 세상에 정당하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속해 있지 않은 지금의 나는 21살의 그때보다 더 설명하기 곤란한 사람이 됐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소개해볼까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자주 오해하고 가끔 이해하는 뚜밍이입니다.

항상 오해와 이해 그 사이 어디쯤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