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집착할게

[오늘도, 사람!]

by 별체



신이 내게 갖고 싶은 걸 줄 테니 말해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할 것이다. 담대하지 않아서 포기하거나 움츠려든 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겁이 없고 배짱이 두둑한 모습은 언제나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대체로 찌질했단 뜻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찍은 내 사진들 중 멀쩡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하나같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 새빨개진 눈으로 울먹거리고 있다.


포인트는 흐아아아아아아앙 울고 있는 게 아니라 훌쩍훌쩍, 흑흑이다. 겁이 많은 어린이는 우는 것조차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요란하게 우는 아이에게 집중되는 관심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엄마의 시선뿐이었다.


엄마는 사진을 인화해서 앨범을 꾸밀 때마다 모질이찜뽕 같다고 했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기 때문에 나를 놀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 말라며 괜히 엄마를 툭 치고는 또 울먹거렸다.


차라리 말을 하라고 웅변 전문 유치원을 보낸 엄마의 열성이 무색하게 나는 모든 것을 울거나, 울먹거리거나. 단 두 가지로 해결했다.


내 이름 대신 야라고 부르는 친구에게도, 덩치 큰 강아지가 얌전히 지나갈 때도, 밖에서 고물상 아저씨가 큰소리로 냉장고 삽니다를 외칠 때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처음 대하는 낯선 것들을 전부 눈물로 마주할 때마다 엄마는 역시 호적신고를 늦게 했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두 살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버거워서 자꾸 우는 거라고 말이다.


모든 낯선 것들 중에서도 특히 사람을 가장 힘들어했다. 나 때문에 우리 집에는 손님이 들어올 수 없었다.


친척들이 와도 방에 숨거나 엄마 아빠 옆에만 붙어 있었다. 누가 귀엽다고 볼이라도 만지거나 안으려고 하면 난리가 났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낙관적이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책을 읽어야 한다며 책 만능주의를 주장했다.


엄마 덕분에 울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림책을 봤다. 한글을 모를 때는 엄마 아빠를 붙잡고 읽어달라고 했다. 모두가 바쁠 땐 엄마가 직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본 책을 보고 또 봤다.


한글을 배우고 난 이후에는 책을 들고 아빠 앞에서 빙글빙글 춤을 췄다. 콤퓨타! 콤퓨타!- 하면서.


우리 집에는 프로그래머인 아빠 덕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도스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 전원을 켜면 검정화면 위에 흰색, 빨강, 파랑, 노랑 글자들이 다다다 지나갔다.


아빠가 무언가를 타닥타닥 치면 전체화면이 파란색으로 바뀌고 왼쪽 윗부분에 흰색 커서가 깜빡깜빡했다. 그 때부터 컴퓨터는 내 차지다.


ㅇ...ㅣ...ㄴ...ㅇ...ㅓ...ㄱ...ㅗ...ㅇ...ㅈ...ㅜ... 동화책과 키보드와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한 자 한 자 키보드를 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 보면 한 번도 울지 않고 조용히 하루를 지나가는 날도 조금씩 생겼다.


아빠는 이게 다 컴퓨터 때문이라며 아무래도 자기가 컴퓨터 천재를 낳은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아빠를 째려봤다. 컴퓨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열심히 사다놓거나 동네 아줌마들과 교환하면서 구한 책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똑똑한 판검사가 될 운명인 것 같다며 좋아했다.


결국 그들의 큰 딸은 컴퓨터 천재도 판검사도 되지 못했지만 어찌 됐건 내가 더 이상 자주 울지 않는 것에 부모님은 한시름 놓은 듯 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울지만 않을 뿐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낯선 것들이 두려웠다. 반에서 제일 인기 많은 애한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3개월 내내 실패했다. 내가 말 걸기에 걔는 너무 친구가 많았다. 쉬는 시간마다 그 애 주변에는 서너 명씩 모여 있었다. 저 사이에 끼어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한숨만 쉬었다. 매일 검사받는 일기장에 적으면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싶어 샤프를 들었다. 그 때 부엌에서 가스레인지 켜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잠시 일기장에 내가 좋아하는 애에 대해 쓰는 상상을 해봤다.


어머어머그게누군데뭐하는앤데어디사는데- 아니정미엄마희선엄마들어봐우리딸이글쎄-


자식에 관한 모든 일에 아주 열정적인 엄마의 따발총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일기장에 적는 순간 우리 가족은 물론 옆 동네 지나가던 똥개까지 다 알게 될 것이란 걸 직감했다. 엄마의 호들갑을 상상하자 조금 부끄러워진 나는 샤프를 내려놓았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깨작거리자 엄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팍팍좀먹어너지금안먹으면키안커나중에키안컸다고엄마탓하지말고골고루먹어생선은왜안먹니아직도엄마가생선뼈발라줘야하니콩장도먹어콩먹어야똑똑해지는거야-


엄마는 대체로 내게 말할 때만 말이 빨라졌다. 엄마는 내가 말이 없고 느릿해서 자기가 빨라지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나의 굶주린 배와 모자란 키, 느리기 때문에 놓치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슬그머니 다가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너말야엄마한테말안한다고엄마가모르는줄알지엄마가너에대해모르는게어딨어말을하면다해주는데그게뭐가그렇게어려워재미삼아이거나한번보든가-


별자리 만화책이었다. 엄마는 씨익 웃으며 ‘걔는 황소자리래.’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엄마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창피했지만 후다닥 책을 펼쳤다.


일단 내 생일이 속해있는 염소자리부터 봤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 (음 맞아맞아.) 솔직하고 정직. (음 맞아맞아.) 잘 맞는 별자리는 황소자리. (어머나!)


그 다음에는 황소자리를 펼쳤다. 온화하고 인기가 많음. 우직하고 차분. 재치가 많고 다정. 걔랑 말해 본 적이 없어서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알아냈다는 사실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조용히 책가방 속 교과서 사이에 별자리 책을 넣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나는 그 책을 꺼내들었다. 황소자리 외모와 좋아하는 성격에 대해 읽으면서 걔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짝꿍이 그 책 뭐냐며 같이 보자고 했다.


관심 갖는 짝꿍을 보니 왜인지 갑자기 용기가 생겨 걔를 불렀다. 나는 이미 걔의 별자리에 대해 공부해왔지만 보지 않은 척하며 태평하게 생일을 물었다.


걔도 자신의 별자리가 뭔지 알려 달라고 했다. 책도 안 펼치고 황소자리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책을 보고 있던 짝꿍이 사수자리라고 했다. 뭐? 사수자리? 책을 보니 걔는 사수자리가 맞았다. 우씨, 엄마 얘 황소자리라며…. 잠시 속으로 엄마를 원망했다.


사수자리에 대해선 읽어보지도 않았다. 당황해서 그대로 얼음이 됐다. 걔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수자리에 대해 쭉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수자리의 성격이 자기 맞는 것 같다면서 내 별자리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나는 걔랑 같은 반이 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얘기했다. 이후로는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면서 짝꿍이 아닌 친구들과도 길게 얘기해봤다. 그 친구들에게도 생일을 물어보고 별자리를 이야기해주는 방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제야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낯선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자신이란 걸 알았다.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난처하고 속상했던 그 모든 것들을 눈물과 침묵으로만 해결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생일이라도 알게 된 순간부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별자리는 한동안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던 내 욕심을 충실하게 채워줬다.


물론 별자리 성격이 항상 맞는 건 아니었다. 책이랑 인터넷에서 찾아본 내용이 다르기도 했다. 별자리가 정식학문이 아닌 유사과학일 뿐이란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대화의 주제를 별자리로 놓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별자리와 조금씩 멀어졌다.


무엇보다도 별자리는 물론, 그 어떤 것으로도 나 아닌 남은 절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기에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계속 실패하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평생 실패할 일이다. 알면서도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끝까지 집착하고 애쓸 것이라고 다짐한다.


여전히 내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매일 끊임없이 말을 건네다 보면 한번쯤은 전부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성공에 가장 가까운 실패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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