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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사건

지하철 할아버지들, 왜 이러세요


나는 원래도 운전에 소질이 없었다. 고교 적성검사에서 운전과 간호 점수가 형편없었다. 둘 중 하나는 27점, 하나는 18점이었다. 나는 둘다 직업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27세에 운전면허를 땄는데, 시험기준이 강화되고 첫 시범때라 학원비가 70만원이 넘었고, 네 번의 시험을 보았다. 그렇게 비싸게 면허를 땄는데, 다니던 잡지사에서 뽑아준 편집부 새 차를 갓 결혼한 편집장이 그만두면서 할부 남은 거 떠안고 가져가는 바람에 나의 운전 실력은 정지하고 말았다. 차종, 아벨라.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 후 차를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없었다. 운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씩 생길 무렵, 테니스 동호회에서 친해진 언니가 차를 바꾸며 그 차가 남동생에게 가고 남동생이 타던 오래된 아반떼가 나에게 왔다. 100만원에 샀다. 37세에 다시 도로연수를 받고 나는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역시 적성이 아닌가, 실력이 아닌가. 나는 정말 운전을 못했다. 작은 차는 상대하지도 않았다. 정차해 있는 버스를 들이박고 주차되어 있는 트럭 모서리를 긁었다. 그리고 그후 잔사고 없이 나름 베스트 운전자로 차를 몰고 있는데, 그건 내가 소심하게 운전을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에서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아 경사 없는 길만 다니고, 차선변경 꼭 해야 할 때 아니면 절대 끼어들기 하지 않고, 주차공간 애매한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한 번은 백화점 주차장 오르막길에서 중간에 갇혔는데,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을 밟는 순간 뒤로 밀릴까봐 호흡관란이 왔다. 나는 폐쇄공포증도 있는 것인가... 이제 백화점도 버스 타고 다닌다. 오른쪽 허벅지 힘 풀리는데 10년 걸렸다. 수동면허를 취득했지만 오토를 몰아서 다행이다. 클러치 밟았으면 왼쪽 다리 오른쪽 다리 모두 쥐났을지도 모른다.

 

임신을 하고부터 차멀미에 운전이 두려워져 몇 년을 쉬었고, 그 사이 우리 부부의 중고차는 여러 번 바뀌었다.

아이 세 살때, 이사를 하면서 멀어진 아이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기 위해 매일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안 막히면 20분 거리에 있는 구립어린이집이다. 왕복 한 시간 잡아야 했다. 오전 오후 두 차례 이상 운전이 시작되었다. 겁이 조금씩 사라지고 운전실력이 제법 늘었다. 그러다 오래된 차가 운행중 갑자기 멎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시 운전이 무서워졌다. 아이 다섯 살때의 일이다.

몇 달 동안 등원만 자동차로 하고, 하원은 지하철로 했다. 갖고 있던 카드가 교통비 10% 할인! 청구가 되었다. 그렇잖아도 운전이 적성에 안 맞는데.. 겸사겸사 지하철에서 책도 읽고 교정도 보고 기름값도 아끼고 좋은 점이 많았다.

지하철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가던 어느 날, 나는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아, 정말 다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몇 달 전 첫 사건, 옆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가 나에게 아이를 가리키며 손주냐고 물었다. 그러다 멈칫! 그러나 이미 늦었다. 요즘은 할머니들이 하도 젊다고.. 미안하다 하셨지만, 그 어떤 사과도 이미 소용없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청바지 입고 발랄한 운동화를 신은 날이었다.
두 번째 사건, 자주 가는 동네 마트.. 계산대 아줌마..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갑자기 우리 아이를 가리키며 손주냐고 했다.
이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 모를 아줌마는 모를 거다. 할머니 소리 들은 한 고객의 발길이 몇 달 동안 끊겼었다는 크나큰 사실을.

그러다, 세 번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물었다.
"할머니 따라 어디 가? 너네집에 가? 할머니집에 가?"
뭐라고...
아들의 대답이 즐겁다.. "너네집에가요."

똑똑한 아들이다. 할머니집 가는 거 아니니까 너네집 가는 거다.
아잉~ 정말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건지?   


그렇게 나의 염색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시작하려고 마음속으로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는데... 시작하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또는 3주에 한 번 해야 하는 염색이다. 머리결도 그렇고 돈도 돈이고 시력에도 안 좋고 뭐하나 좋은 구석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염색을 시작했다. 46세때의 일이다.

예전엔 동안 소리가 지겹더니, 이젠...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것인가. 그후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탈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한동안 할머니 소리를 안 듣고 살 수 있었던 건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께  또 염색을 했다. 그래도 아이 고등학교 졸업때까진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11년 남았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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