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마도 청춘이동
↑아직 아이가 여덟 살인데, 중년이라뇨? 아닙니...다~ ㅎㅎ
이십대엔 결혼 생각이 없었고, 일이 참 재미있었다. 나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는 나날이 이어져 스물여섯에 팀장을 달았고, 재밌게 일하는 만큼 인정도 받았고 보람도 컸다. 심지어 결혼했으면 일의 즐거움을 몰랐을 거라고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까지 했다. 나는.
결혼한 친구들의 이런저런 얘깃거리들 속에 녹아들지 못하니 자연스레 결혼 안 한 친구, 후배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았다. 삼십대 중반까지도 괜찮았다. 나는 한 해 한 해 나이들어가며 경력이 쌓여가는 것도 행복했다. 동안이라 나이 지긋한 저자분이나 거래처분들 만날 때 어색하고 불편했던 점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게 너무 좋다며 떠들고 다녔으니 참 긍정적인 인생이었다.
딱 서른일곱까지 였던 것 같다. 마냥 즐겁게 일하고 운동하고 여행다니고 편하게 살았던 건... 어느 덧 나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자꾸 떨어져가고 있었다.
서른여덟 여름부터 초조해졌다. 삶의 목표는 결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넘어야 할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결혼은 못하더라도 든든한 아들 하나는 낳고 싶었다. (싱글맘이 너무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각종 드라마의 공이 컸다) 나는 아들 낳을 몸을 만들기 위해 담배도 끊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3년 여를 그렇게 싫어했던 소개팅과 선을 보며 나에게 상처받고 상처주다가,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다. 우리 테니스 모임이 아닌 다른 클럽 사람과 눈이 맞았다. 결혼이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외치며 살았던 내가 결혼에 목을 매고 있었다. 나이 먹고서!!
나는 지금 40대 후반이지만 내가 중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마흔아홉 기혼여성이다. 중년 없이 노년 직진 진입?
주변을 보면, 한 다리 건넌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갱년기를 앓고 있거나 벌써 지나간 시기다. 벌써?? 나이가 사실 그럴 나이이기는 하다. 한 살 어린 후배는 작년에 생리가 끊겼다 했다. ㅠ 책을 편집하면서 40대 중반의 저자가 글 곳곳에 중년, 중년, 쓰셨길래 보기 싫어서 다 바꾸었다. 편집자의 개인적인 성향을 강요하면 안 되는데... 바퀴벌레처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중년'이 보기 싫었다. '중년'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거북함이 담겨 있다. 그럼 안 되는데... 나는 그 단어를 거의 다 걷어냈다.
요즘은 조금만 걷고 이동하고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세 피곤하고 지친다. 30대 초반부터 눈에 띄던 새치는 이제 새치의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흰머리. 한 달에 한 번의 염색 없이는 봐주지 못할 지경으로 반백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고 말았고, 작은 글씨는 진정 멀리 떨어뜨려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원래 잘 삐지는 성격인데 더 작은 일에 더 쉽게 삐지고 기분 나빠하고 있다. 그래도 중년은 아니다. 청춘이 조금씩 느리게 뒤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