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치고 좀 꽁트
지금도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지만 더 가난했던 시절, 신혼집은 나름 목동에 있었다. 신랑은 목동 언저리라고 표현을 했고, 9호선 전철역에서 가까웠지만, 전혀 역세권이 아닌, 그냥 지하철 역 가까운 동네였다. 나는 전철역 가까우면 역세권인 줄 알았다. 우리동네는 전철'역'은 맞았지만 '세력'이 하나도 없었다. 가정집 외에 편의시설이라 할 만한 곳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한개도 친절하지 않은 세탁소와 오래된 슈퍼, 그리고 묵밥집 하나가 전부였다. 아, 큰 주유소가 두 곳, 주유소 뒷편으로 구립어린이집이 있었다. 장 보기가 불편했지만 매일 장을 보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술집이 없으니 소란한 기운도 없고, 조용하게 살기 좋았다.
용왕산 바로 아래 동네, 봄이면 아카시아 향기 진동하고, 낡은 집들이 재개발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 서울스럽지 않은 소박한 동네에서 우리는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결혼 전에 살았던 성북동 부자동네 올라가기 전 가난한 동네에서 느꼈던 정겨움이, 신기하게도 이곳 언저리 목동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목2동은 발음상 모기동이어서 우리는 맨날 농담이랍시고 "파리동 아니고 모기동 살아요" 했던 시절이다.
산 아래 동네라 벌레들이 자주 출몰했다. 그나마 (신랑은 혼자 살던 시절에 당했지만- 물렸지만 나는) 지네 구경을 한 적이 없어 다행인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네가 아닌 다른 각종 벌레들은 꼭 신랑이 외출하고 없을 때, 나만 있을 때 등장했다. 벌레를 끔찍이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잡아야 했다. 가끔 신랑이 있을 때 벌레가 나오면, 이 인간은 도망을 가셨다. 벌레는? 신부가 잡았다.
어느 날 대낮이었다. 새끼 바퀴벌레가 나왔다. 천천히 기어가는데, 순간 그동안 내가 벌레를 죽여온 것에 대한 억울함이 치솟아올랐다. 얼른 작은방으로 가서 스카치테이프를 가져왔다. 방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벌레 위로 스카치테이프를 살포시 눌렀다. 신랑이 퇴근할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결국, 그날, 벌레의 시체는 신랑이 치웠다. 오랜만에 통쾌했다.
잠시, 옆집 이야기.
우리가 살았던 집은 층마다 두 세대씩, 여섯 세대가 사는 다세대주택으로, 우리는 2층 왼쪽집에서 전세를 살았고, 옆집 아줌마네는 자기네 집이었다. 리모델링도 깨끗하게 하고 좁지만 딸 둘과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우편함 우편물을 보다가 발견한 사실은 네 식구의 성이 다 다르다는 거였다! 이런 일에는 꼭 뒷말하기 좋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딸들의 성이 다르다는 건 새 아빠가 세 번째 아빠라는 뜻일 것이다. 대학생 큰 딸은 안경끼고 화장기도 없이 수수하고 얌전해보이고, 교복치마를 최대한 짧게 접어 입고 과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 긴머리 둘째딸은 대낮에 남자친구와 한번씩 제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나와 신랑에게 따로 몇 번 들켰다. 이걸 아줌마에게 얘기해줘야 하는지 망설였지만, 그냥 두었다. (아줌마, 미안해요) 아저씨도 어디 경찰서에서 근무한다고 했는데, 야간근무가 많은 듯했다.
그러던 하루, 늦은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옆짐 아줌마가 다급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자기네 집 욕실에서 벌레가 나왔는데, 아저씨가 오늘 밤근무라 딸들과 자기밖에 없다며 SOS!를 쳐왔다. 풋! 제 집에선 벌레보고 도망치던 이 분, 옆집 벌레 잡아주러 눈물을 머금고 슬리퍼를 신었다. 신랑은 30분 후에 돌아왔다. 그냥 벌레가 아니고 지네였다며, 약을 뿌려도 뿌려도 안 죽었다며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나는 발많은 그리마는 몇 번 봤지만, 그 산 아래 동네에서 살며 다행히도 지네를 안 만났다. 지네는 쌍으로 다닌다는데, 그 옆집 지네 한 마리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한번씩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