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18화
친구들과 헤어졌다.
다음 행선지는 파도바.
들어는 봤나?
파도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 주의 소도시다.
혼자 보낼 도시를 고를 때의 나만의 체크리스트였다.
- 도시의 역사와 풍광이 나를 사로잡을 것
- 소요하며 시간을 보낼 성당, 미술관, 공원이 적당히 있을 것
- 주변에 훌쩍 다녀올 곳이 많고 대중교통이 편리할 것
- 시장이 열리고 로컬 식당도 제법 있을 것
- 도시가 아담해 걸어 다녀도 되는 곳
- 도심에서 숙소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 것
- 가을날이 추워져도 우울해지지 않을 곳
써놓고 보니 꽤 까다로운 기준 같지만, 유럽에는 이런 도시가 의외로 많다.
베로나, 포르투, 토리노, 이스탄불, 루블랴나, 에든버러, 탈린…
그리고 피렌체까지.
쟁쟁한 도시들과 경합 끝에 선택된 곳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한동안 혼자 지낼 도시로 가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파도바를 정했다.
작은 기차역에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젊은이들.
비도 내리고 큰 여행가방 때문에 트램을 타기로 했다. 한 정거장 가더니, 학생들이 시위 중이라며 멈춰 섰다.
낯선 거리에 시위대는 보이지 않고 경찰차들의 불빛만 요란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호와 함성, 나팔소리…
이탈리아 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이 빗속에서 시위를 하는가?
승객들은 화도 내지 않고, 항의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기다렸다.
일부는 내려 걷기 시작했고…
20분을 기다리다 나도 내려걸었다.
아담한 광장 한가운데 있는 숙소는 4층 계단을 올라야 했다.
비 맞은 나는 힘을 내야 했다.
현관 앞, 자물쇠가 나의 입장을 가로막았다. 자동으로 세팅된 불은 자꾸 꺼지고 묵직하고 오래된 열쇠는 아무리 돌려도 거대한 자물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이 저릿하고 땀이 찰 때쯤, 마침 외출하던 아래층 학생이 도와줬다.
대충 끼니를 해결하려던 1층 편의점에선
8시 반 이후라며 와인도 맥주도 팔지 않았다. 비는 점점 거세지더니 밤늦도록 천둥 번개가 쳤고 설상가상 와이파이마저 터지지 않았다.
집 안에서도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기이한 구조의 잠자리는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놓여 있는 다락방.
앉아만 있어도 지붕이 닿을 듯하다.
기와지붕에 퍼붓는 빗소리가 귀를 때렸다.
낭만적으로 보였던 다락방은 공포영화 무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무서워서 외롭거나 우울할 틈이 없다는 거.
친구들과 헤어진 지 겨우 반나절이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