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19화
아직 이른 아침.
머리맡 창밖에서 활기찬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에서 몸만 틀어 조그만 창을 내다봤다.
세상에!
아치 위에 세워진 로자가 아름다운 라조네 궁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 에르베 광장엔
부지런한 농부들이 차로 실어 나른
온갖 채소, 과일, 약초를 파는 노점들이 펼쳐져 있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거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채도 낮은 오렌지색 기와 지붕들 사이로 고풍스러운 성당 돔과 종탑들이 보인다.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시장에는 색색이 싱싱한 과일들이 가득했다. 가게마다 특색이 있어 탐색하면서 한바퀴를 돌고, 다시 한바퀴.
달디단 납작 복숭아, 올망졸망한 무화과,
갓 구운 빵과 커피를 사들고 돌아왔다.
비갠 하늘, 날이 좋으니 빨래를 돌렸다.
왠지 찝찝한 이불도 팡팡 털어 햇살을 쬔다.
벌써 오전이 지나갔다.
앞집, 유럽 최대 규모의 지붕을 가진 라조네 궁전부터 가본다.
직사각형 건물 일층 아케이드엔
정육점, 생선, 햄, 빵, 와인,
치즈·돌체 전문점들 사이에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 있다.
알레고리가 가득한 프레스코화가 있는 2층 그레이트 홀은 한때 재판소였고,
지금은 장쾌하게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현대판 푸코의 진자가 멈추지 않고 회전하며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고 있었다.
드높고 드넓은 홀 서쪽에는 검은 기마상이 서 있다.
신화 속 트로이 목마처럼,
검은 말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늘씬하고, 생동감있는 자태에 360도 돌아보며 감탄했다.
그때 창밖 광장 건너편으로 내 작은 다락방이 바로 보였다.
네가 밤새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천둥 칠 때마다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던 지난밤이 무색해졌다.
궁전 밖 파도바엔 길마다, 가게마다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파도바는 대학 도시다.
인구 20만 중 3분의 1이 학생이고,
5천 명이 교수나 대학 관계자라고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창문 열린 건물 안에서 강의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춰 서서 귀 기울여본다.
이탈리아어라 알아듣지는 못해도 흥미롭다간간이 웃음소리도 섞여 흘렀다.
도시 전체에 젊음이 넘쳤다.
졸업시즌이다.
광장과 학교, 가게 여기저기에서
정장을 입고 월계관을 쓴 학생들이 몰려다니며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Dottore Dottore~"로 시작하는 라틴어 가사 원문은 꽤 거칠다. 대충 말하자면
“넌 이제 박사지만, 여전히 우리랑 똑같은 장난꾸러기일 뿐”이라는 뜻.
골리아르디아(Goliardia) 정신이 깃든,
익살스러운 노래다.
골리아르디아는 공부할 때는 치열하게 지성을 탐구하되, 즐길 때는 세상 모든 권위를 비웃으며 화끈하게 노는 이탈리아 대학생들의 전통이다.
졸업주간 일주일 내내
도시 여기저기서 발을 구르고 박수를 치며
시끌벅적하게 인간미 넘치는 소음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울려퍼졌다.
학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활력이
여행객인 나마저 기운 나게 만들었다.
미리 사둔 붉은 와인을 잔에 가득 부었다.
오늘만큼은 나도 박사들의 노래에 함께 건배하고 싶어서.
우리들의 출발에 행운이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