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20화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에 세계 곳곳에서 온 7만 명의 젊음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대체 어떤 매력이길래?
파도바 대학이 궁금했다.
대학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도시 곳곳에 흩어진 학문의 도량을 다녀보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 다음으로 1222년 세워졌다.
설립자들도 볼로냐 대학에서 학문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교수진과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대학의 모토는
Universa Universis Patavina Libertas
-파도바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예로부터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이 모여 학문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거리에서 마주친 여러 나라 학생들, 그래서였구나.
탐방 프로그램 첫 방문지는 초창기 대학 건물과 대강당. 대강당 벽에는 수많은 교수와 졸업생들의 명판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있다.
피사 출신 갈릴레오는 이곳에서 교편을 잡았다. 나중에 피렌체 메디치가에 초청을 받아 건너갔지만, 그 유명한 종교재판으로 힘들게 보냈다. 갈릴레오는 이곳에서 18년이 인생 최고 시기라고 말했다. 강의가 재미있었는지, 구름처럼 학생들이 몰려들어 연단을 높인 목재 포디움이 강당 앞에 전시되어 있다.
포디움 앞, 갈릴레오의 척추뼈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의 유해는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며 하늘을 가리킨 오른손 중지는 피렌체 갈릴레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 척추뼈?
파도바에서 몰래 가져온 거라고. 갈릴레오를 향한 추앙심이겠지만 좀 기괴했다.
사실 유럽 성당에는 성인들의 유해가 뿔뿔이 흩어져 있곤 한다. 유해 공경 문화, 신앙 전파, 성지 순례 활성화... 정치적·경제적 요인도 있다. 어쩌면 갈릴레오도 자신의 영혼이 가장 뜨거웠던 18년의 곁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을 수도.
다음 코스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해부학 교실. 중앙에 해부 테이블이 있고 주변을 계단식 관람석이 둘러싼 원형 극장식 구조다.
실제 들어가 보니, 정말 좁은 공간이었다.
이 안에서, 그 시절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인체의 신비를 파헤쳤을 것이다.
가이드 말로는, 해부대 아래 지하가 바킬리오네 강과 연결되어 있었고, 시신 도둑들이 강을 통해 시체를 몰래 들여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으스스한 한기에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도시나 괴담은 있는 법.
그 괴담의 뿌리가 ‘앎'을 향한 지독한 갈망이었다는 사실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투어의 종착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박사, 엘레나 피스코피아의 동상 앞이었다. 베네치아 명문가의 딸조차 '교회'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야 했던 시대. 신학과 철학에서 너무나 뛰어난 그녀의 졸업시험에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어, 대성당에서 구술시험이 치러졌다고 한다. 바야흐로 1678년.
자유를 표방한 대학이 설립된 지 450년이 흘러서야 첫 여자 박사가 나온 것이다.
엘레나에게, 늦었지만 분명한 경의를!
배움과 지성, 자유와 낭만이 뒤섞인 도시의 공기 때문이었을까.
문득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떠올랐다. 파도바를 배경으로 한, 연극 속의 연극. 길 위의 주정뱅이조차 귀족으로 변모시키는 연극 같은 도시.
나만 몰랐구나.
파도바는 낡은 석조 건물 어딘가,
갈릴레오의 강의실과 엘레나의 도서관 사이에서
800년째 '자유'라는 전공을 공부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