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24화
파도바를 떠나기 전, 가을로 확 바뀐 상점에서 모직 모자를 샀다. 갈색 체크무늬가 셜록 홈즈 모자 같아서 마음에 쏙 들었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베네치아에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다.
그간 고독에 흠뻑 젖어 말하는 방법조차 잊을 뻔한 내게로, 이제 딸이 온다. 프로젝트 때문에 여름휴가도 가지 못했던 큰딸에게 추석 연휴 2주간의 번개 휴가가 생겼다. 딸은 전날 밤 로마에 도착했고, 우리는 베네치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낼 예정이다. 이후 나는 북으로, 딸은 남쪽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각자의 여정을 이어갈 것이다.
딸아이를 기다리는 내내 들뜬 마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카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점검하며 새 모자를 몇 번이고 고쳐 써본다. 혼자 유난인가 싶으면서도, 설레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로마에서 오는 너의 기차는 계속 연착 중이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마중 나온 사람들, 그리고 배웅하는 이들. 모두가 떠나지 못하는 플랫폼에 사람들이 점점 불어났다. 약속된 시간은 이미 지났다. 전광판 속 너의 기차는 여전히 선로 위 어딘가에서 느릿한 숫자를 갱신 중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역무원들에게 연착 이유를 물었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철도 종사자들이 태업 중이라고 했다. 아, 파도바 광장에서도 누군가 같은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기다림은 얼마나 사소하고 평화로운가. 그래, 그들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조금 늦게 만나도 괜찮은 것이었다. 바람이 시려, 모자를 푹 잡아 썼다.
드디어, 네가 내렸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번쩍 들더니 플랫폼으로 가뿐하게 착지했다. 내가 불러도 들리지 않을 먼 거리였지만, 나는 큰 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분명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네가 보고 싶었다. 격하게.
인파를 헤치고 마침내 마주한, 내게로 오는 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꼭 안았다. 떨어져 지내야 했던 연인마냥. 품 안으로 파고드는 딸의 온기는 익숙하고도 포근했다.
"엄마 모자 예쁘다!"
딸의 칭찬 한마디에 절로 웃음이 났다.
"이거 홈즈 모자야."
내 말에 딸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그럼 나는 왓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킥킥대며 웃었다. 역시 우리는 쿵작이 잘 맞는 여행 메이트였다. 숙소에 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베네치아 본섬으로 향했다. 산타루치아 역에 내린 딸아이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 다녔다. 너무 아름답다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엄마, 내가 아는 언니가 베네치아에서 청혼을 받았었대."
"그래?"
"와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여기 정말 멋지다."
"베네치아가 낭만적이긴 하지."
"그 언니 지금 포지타노로 신혼여행 중이거던. 근데, 베네치아 훨씬 아름답다면서 다시 오고 싶다는 거야. 그만큼 여기가 독보적인가 봐. “
딸의 호들갑 섞인 찬사에 나도 슬쩍 자부심이 생겼다.
"거봐. 엄마 말 듣고 잘 왔지?"
(딸아이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만 가는 힐링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내가 강력하게 꼬셨다.)
"응. 엄마, 최고야."
열흘 전 친구들과 걸었던 그 베네치아가 아니었다. 딸의 탄성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무심코 지나쳤던 운하의 윤슬이 보석처럼 빛났고 낡은 벽돌의 색감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새삼 모든 게 달라 보이고 새로웠다. 딸아이가 부린 마법이었다.
딸은 왓슨이라기엔 너무 영특하고 맹렬했다. 마치 오빠 셜록을 앞지르는 엉뚱하고 발랄한 탐험가, '에놀라 홈즈'의 재림 같았달까.
모든 것을 알아내고 느끼고 맛보겠다는 이 거침없는 에놀라 앞에서 베네치아는 비로소 숨겨둔 속살을 보여주었다. 무구한 표정으로 웃고, 감탄하며 좁은 골목을 뛰어다니는 딸아이는 내게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가르쳐주러 온 작은 탐험가였다.
저녁은 해질 녘 운하가 내다보이는 식당에서 먹었다. 아늑한 가정식 식단이 차려진 식탁 위로, 그날 우리가 발견한 베네치아의 풍경들이 이야기꽃으로 피어났다.
다음날 아침, 운하 옆 코르네또와 아란치노가 일품인 카페를 찾아 나섰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선 수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딸이 찜해 둔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구글 맵 없이 걷는 베네치아는 내가 알던 지도 밖의 세상이었다. 길을 잃어도 좋다는 듯 씩씩하게 앞서가는 딸의 뒷모습 위로, 베네치아의 새로운 풍경이 완성되고 있었다.
딸이 알아서 척척 찾아내는 맛집과 지름길 덕분에 나는 오로지 눈앞의 풍경과 딸의 옆얼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아, 딸 키운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문득 기특해진 마음을 안고, 이번엔 내가 딸을 이끌 차례였다. 베네치아에 올 때마다 들르는 나만의 단골 식당으로 말이다.
산 마르코 광장 뒤편, 곤돌리에들이 즐겨 찾는 이 작은 가게는 여전히 붐비고 사랑스러웠다.
"여긴 결혼 10주년 여행 때 아빠와 우연히 발견한 곳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오래된 비밀을 꺼내듯 말했다.
"그 뒤로 혼자만 몇 번 왔었는데, 드디어 가족과 함께 왔네."
"와, 아빠랑 왔던 곳을 이번엔 나랑..."
딸은 신기한 듯 식당 구석구석을 눈에 담더니, 이내 기분 좋게 잔을 부딪쳐 왔다.
그때 옆 좌석의 베네수엘라 노부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작년에 한국의 서울과 제주는 물론, 마라도와 가파도까지 다녀갔노라며 환하게 웃었다. 딸이 이곳은 부모님의 10주년 추억이 깃든 식당이라 소개하자, 그들은 자신들도 50주년 금혼식 기념 여행 중이라며 함께 건배를 제안했다.
결혼 10주년의 추억이 머문 자리에 앉아, 50주년을 맞이한 노부부와 잔을 부딪치는 순간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한 식탁에 마주 앉은 듯 기묘하고도 다정한 온기가 차올랐다. 먹물 스파게티는 여전히 고소했고, 우리를 감싼 공기는 유쾌했다. 언젠가 30주년, 50주년이 되어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최근 베네수엘라의 어지러운 소식을 들을 때면, 한국의 작은 섬들까지 구석구석 사랑해 주었던 그날의 노부부가 떠올라 마음이 쓰이곤 한다. 그분들의 50년 세월이 그러했듯, 거친 풍랑 속에서도 두 분의 미소만큼은 부디 무탈하고 평온하기를 먼 곳에서나마 빌어본다...
그날, 우리들의 베네치아는 완벽했다. 운하를 따라 걷는 달밤, 재잘거리는 딸의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이 차올랐다.
황홀했던 베네치아에서의 3박 4일이 지났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다. 우리에겐 대망의 돌로미티가 있었으니까. 딸이 선뜻 자그레브 비행 편을 취소하고 내게로 온 건, 돌로미티의 웅장함을 함께 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내일, 그 대자연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