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다니는 윤슬, 돌로미티

지구별 탐사일지 25화

by Stardust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 했던가.

나는 말하자면, 호수와 강, 바다 쪽 사람이다.

산은 늘 멀었다. 굳이 힘을 써서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일을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스위스에 자주 갈 기회가 있었지만
알프스의 명산이라는 융프라우에는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취리히 출장 중, 비즈니스 파트너가
융프라우 아래 마을, 집성촌 출신이라고 했다.

“그럼 자주 올라가 봤겠네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차 요금이 너무 비싸요. 아마 가족들도 다 안 가봤을걸요.”

나는 바로 이해했다.
그래, 가까우면 아쉽지 않다.
나도 남산타워 꼭대기는 안 가봤으니까.


그랬던 내가, 요즘은 산이 점점 좋아진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따라 걷는 정도지만, 이제는 왜 땀 흘리며 걷는가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걸을 수 있다면, 언제든 먼저 걷는 쪽을 택한다.



돌로미티는 남편의 로망이었다.
어진 그답다.
언젠가 함께 가자고 했던 곳인데, 이번에 먼저 기회가 닿았다.
딸과 나는 당일치기 돌로미티 동부 투어를 떠났다.


돌로미티는 날씨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구름 하나에 풍경이 가려지고,
그날의 행선지가 바뀐다.
눈 소식에 마음이 쓰였지만,
도착한 날 하늘은 맑기만 했다.


“이 정도면 완전 날씨요정 아니야?”
딸을 보며 웃었다.


새벽에 출발한 버스에서 졸다 깨어,
길가 산장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국룰 크로와상과 카푸치노 한 잔.


돌로미티의 하루가 열렸다.



첫 번째 스폿은 에메랄드빛 아우론조 호수였다.

아침 햇살이 아스라했고, 누군가는 조깅을 하고 있었다. 호수 뒤편으로 작은 마을과 설산이 겹쳐 보였다.

길 건너편 쉬는 시간을 맞은 학교 운동장엔

볼 빨간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맑고 단단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다음은 미주리나 호수.
보트 선착장에 난 문을 발견한 딸은
‘스즈메의 문단속’을 자동 재생했다.

문을 열면, 호수 위를 사뿐히 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던 딸이 말했다.


“이건 베네치아 본섬에 들어갈 때,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떠올렸던 생각인데.


이렇게 내 눈에 보이는 윤슬 말이야.
어떤 자리에 고정된 게 아니라,
햇빛이 닿는 동안엔
윤슬이 계속 나를 따라 움직이는 거잖아.
음- 낭만적이야.”


낭만을 말하는, 자신의 느낌을 문장으로 붙잡으려 애쓰는 딸의 얼굴에서,

어느덧 직장인 3년 차의 고단한 기색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반짝이는 건 호수만이 아니었다.

너야말로 지금 내 앞에서

가장 눈부시게 반짝이는 윤슬인걸.

나는 딸의 시선을 따라, 나를 따라오는 그 빛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산책 나온 강아지를 발견한 딸이
졸졸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와, 귀엽다. 풀밭을 탐색 중인가 봐.”


그 옆을 따라 뛰어다니는 내 강아지.


나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내 앞의 윤슬과 강아지들,
찰나의 아름다움을 실컷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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