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26화
돌로미티의 하이라이트, 트레치메.
지프차를 타고 덜컹덜컹 산길을 올라,
트레치메 봉우리 바로 앞에 도착했다.
현지인들은 돌로미티 산맥을 오래전부터 ‘창백한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맥을 이루고있는 ‘돌로마이트’라는 광물이 햇빛을 받으면 은은한 회백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눈이 곳곳에 쌓여있어 그 별칭이 더욱 실감났다.
돌로미티는 2억 5천만년 전 고대에는 열대 바다였다.
산호초가 쌓이고 굳은 바다가
대륙의 충돌로 밀려 올라
지금은 알프스 산맥의 한 자락이 되었다.
우리 눈 앞에 산과 땅은
하늘에 닿아 버린 고대의 바다였다.
지금 나는 딸과 함께
바다이자 산이 된 땅을 걷고 있다.
무수한 영겁의 시간 속 이 찰나가 소중했다.
10분 정도 트래킹을 하자,
넓은 평원 위에 트레치메 봉우리들과 푸른 하늘. 호빗들이 나올 것 같은 멋진 협곡들.
언덕을 넘자, 멋진 평원 위에서 정면으로
빨간 빛을 띄는 멋진 봉우리와 십자가가 보인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인데도 날이 맑아서일까, 푸른 창공을 배경으로 산호색이 선명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이탈리아 최북단 마을.
트래킹으로 산을 오른 사람들과 마주쳤다.
가벼운 잠바 차림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 그들의 미소가 밝다.
아쉽지만 트레치메로 돌아간다.
멋진 풍광을 두 눈에 꼭꼭 담으며, 안녕!
점심을 먹은 식당은 호수 앞에 위치해 먹는 내내 즐거웠다.
너무 배고파서 디쉬를 3개나 시켰다.
시금치 만두를 닮은 카네델리(Canederli),
치즈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가 곁들여진 고기 플래터. 거기에 버섯을 얹은 사슴 스테이크와 와인까지.
낯설지만 풍요로웠던 식탁을 싹싹 비워냈다.
배가 부르니 풍경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호숫가 산책길은 사진 속에 들어온 듯 비현실적이었다.
멀리 뻗어있는 초록 길을 따라 걷다가,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 예쁜 호수 앞에서 빠질 수 없는 포토 타임이 시작됐다.
딸 아이가 두툼하게 껴입었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포즈를 취한다.
프레임안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답다.
마지막 장소는 코르티나담페초.
병풍처럼 둘러쳐진 흰 산들 아래,
푸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도 행복할 풍경.
풀내음은 향기롭고,
찬 공기는 맑고 시원하다.
잔디 위를 맘껏 뛰노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는 즐겁다.
레이요 레이후 레이요 레이요 후~
돌아오는 버스 안.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성악을 전공했다는 가이드가 오페라를 직관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 좁은 버스 안에서,
두 친구가 못다 이룬 꿈을 열렬히 펼쳐 보여준다.
박수와 앙코르 속에 이어진 여러 곡 중,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가슴에 남았다.
창밖으로 흐르는 돌로미티의 노을 위로
감미로운 선율이 낮게 깔렸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마치 우리의 오늘을 위해 쓰인 듯한 가사를 가만히 따라 읊조려 보았다.
그때 창밖을 응시하던 딸아이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 살다보면 어떤 단어의 뜻이 온몸으로 와닿는 순간들이 있잖아.
지금이 바로 breathtaking 한 순간이야.
아니, 오늘 하루 종일 숨을 멎을 듯한( breathtaking) 순간들의 연속이었어."
"그러게. 정말 멋진 하루였어."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너와 함께라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