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1화
지난 12월 31일자로 회사를 그만두며
30년의 사회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봄과 여름이 지나갔다.
지구별 생활 55년차.
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이제는 원하는 일만 하며 지내도 될 텐데,
이상하게 좋은 하루를 보내기가 어려웠다.
어떤 하루가 좋은 하루인지,
그 정의조차 잡히지 않았다.
매일매일, 새털처럼 가벼운 하루들이 흘러갔다.
앞으로 몇십 년 남았을지도 모를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회사일처럼
내 인생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할 수는 없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기를 놓치지 말자.’
자식들은 대학과 직장에서 제 길을 걷고,
남편에게도 “혼자 지내보라”고 말할 수 있고,
양가 부모님 중 아프신 분도 없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은 봄날 같은 시절.
누군가는 “지금 아니면 늦는다”고 등을 떠밀었고,
누군가는 “돌이켜보니 여행에 대한 충동도 50대가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엔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도 하루를 채우지 못하는데,
여행을 가면 과연 달라질까.
더는 돈을 벌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이전처럼 훌쩍 떠나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유럽 어딘가에서 찍은, 검푸른 밤하늘에
은빛 커튼처럼 펄럭이는 오로라.
올해는 21년 만에 가장 강력한 태양 폭풍이 지구에 도착하는 극대기라고 했다.
2025년을 놓치면 다음은 11년 뒤, 2035년.
그때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제야 목표가 생겼다.
오로라를 보러 가자.
일단 길을 떠나면 무언가 보일지도 모른다.
다녀오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비행기 표를 샀다.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도시만 인 앤 아웃으로 정해두고,
한 달 넘는 조금 긴 여정을 비워두었다.
나머지는 천천히, 하루씩 채워나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팔란티르를 찾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마법의 구슬처럼,
내 인생을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로라를 만난다면—
혹은 오로라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라도—
반드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오로라처럼,
나도 언젠가 한 번쯤 빛날 수 있을까.
작은 기대를 품고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