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오로라를 만났다

지구별 탐사일지 33화

by Stardust


저 너머 북극이 있단 말이지.

고요한 바다 너머, 오른편 하늘에는 달이 걸려 있었고 왼편에는 검푸른 수면이 아스라이 번졌다.


데이비드는 Space Weather Live 앱을 보여주며 태양풍 속도와 전자의 밀도를 확인했다.

숫자가 오를수록, 오로라가 나타날 확률도 높아진다고 했다.

"오늘은 느낌이 좋아요."

데이비드의 자신감이 들어간 목소리가 설레었다.



베이비 오로라는 빨랐고, 북녘이면 어디든 나타났다.

저기다!

카메라를 고정하고 초점을 맞추는 동안 사라져 버렸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같았다.

이래선 절대 오로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나는 삼각대를 접었다. 프레임 안에 오로라를 가두려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비로소 밤하늘이 넓게 보이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이라는 작은 창(窓) 대신, 나의 두 눈이 우주의 광활한 전시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데이비드가 가져온 튼튼한 삼각대를 해변가 돌들 사이에 단단하게 고정했다. 카메라 렌즈가 북극을 향해 열려 있었다. 베이비 오로라지만,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어쩌면 이게 다 일 수도 있으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번갈아 카메라 앞에 섰다.
초록빛이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우리 뒤에서 숨 쉬고 있었다.

이제 나는 구름과 오로라를 구별할 수 있었다. 카메라 없이도 빛은 분명히 보였다.


저녁 9시가 지나자 날이 쌀쌀해졌다. 모닥불 위 소시지가 지글거렸다.

그 순간, 산마루 쪽 하늘이 묘하게 밝아졌다. 그 옆에 하나. 바다 위에 또 하나. 빛줄기가 동시에 피어올랐다.

우리는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소시지를 팽개치고 해변가로 달려갔다.


빛줄기들이 이어지더니, 초록 장막이 바람을 탄 커튼처럼 일렁였다.
보이지 않는 벽을 타고 빛이 쏟아졌다.

숨을 죽였다.


그리고—

하늘이 터졌다.

초록이 번지고, 핑크가 스쳤다. 연둣빛이 짙어지며 여름 숲처럼 깊어졌다. 끝자락이 파르르 떨리더니 하늘을 가르며 번졌다.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와…”

누군가의 숨 같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칠레 청년은 웃으며 뛰어다녔고, 호주 부부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데이비드는 말했다.

“이게 오로라 댄싱이야. 당신들은 그냥 봐요. 사진은 내가 찍을게.”

그는 환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다들 말을 잃었다. 나 역시 감탄 외엔 달리 어떤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신음 비슷한 감탄사를 내뱉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나는 고개를 더 젖혔다.
그러나 하늘은 눈에 다 담기지 않았다.

결국 데크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휘몰아치는 빛 아래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이상하게도 가득 찼다.

등 뒤로 밤바다의 물기가 스며들었다. 상관없었다.

초록과 분홍과 보라가 하늘을 건너 내 위로 흘렀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들이 지금 이 순간,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누워 있었다.


여기 오길 잘했어. 지금 여기 있어 다행이야.



오로라는 그 후로도 두 시간 넘게 출몰했다. 우리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빛을 따라갔다.

언덕 위에도, 보름달 곁에도, 지붕 위에도, 나뭇가지 사이에도, 바다 위에도, 지평선 너머에도 초록빛이 번뜩였다. 재즈처럼 즉흥적으로, 리듬을 타듯 자유롭게 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달은 더 높이 떠올랐다. 산마루 위 목성이 유난히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마침내 현란하던 오로라가 서서히 무대를 잃어갔다. 마치 무대 조명이 하나씩 꺼지듯, 하늘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11시 30분.

데이비드가 모닥불을 끄고 자리를 정리했다. 빌린 방한복과 부츠를 벗어 밴에 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는 고개를 들고 북쪽 하늘을 살폈다. 달 밝은 깊은 밤. 별들이 차갑게 박혀 있었다.


트롬쇠로 돌아오는 길에도 창밖으로 불쑥 오로라가 몇 번이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짧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때마다 괜히 웃음이 났다. 이미 충분히 봤는데도, 또 보고 싶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숙소로 돌아와 발소리를 죽이며 방에 들어갔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초록빛이 다시 떠올랐다. 하늘을 가르던 초록 물결, 떨리며 흩어지던 끝자락, 그리고 그 아래 서 있던 우리.


새벽 4시가 되어서야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달라진 게 있을까.

오로라가 내 앞날을 보여준 건 아니었다. 무슨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단단해져 있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것을 직접 보았다는 사실, 그 순간을 온몸으로 즐겼다는 기억.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지구인이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차올랐다. 태양풍이 불어오고 자기장이 흐르는 곳, 산소와 질소가 적절히 섞여 있어 이토록 찬란한 빛을 낼 수 있는 행성. 내가 이 푸른 별의 목격자라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태양에서 날아온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지구의 대기와 부딪혀 찬란한 빛을 내뿜듯,

내 안의 이름 모를 감정들도 세상이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히다 보면

언젠가는 저런 빛을 내는 문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로라가 미래를 예언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멈출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짙푸른 어둠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여전히 흔들리면서, 그러나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