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탐사일지 34화
언제 오로라를 만날지 몰라 넉넉히 잡았던 일주일의 트롬쇠 일정. 기적처럼 이틀 만에 오로라를 마주한 뒤, 내게는 5일이라는 거대한 공백이 주어졌다. 트롬쇠 관광안내소에서 권하는 프로그램은 고래 관찰, 순록 썰매와 사미 문화 체험, 개 썰매 타기 같은 한겨울 여행객용 액티비티뿐이었다.
아무 계획도 없던 여행자의 시간은 갈 곳을 잃고, 북극의 흐린 하늘 아래에 그대로 멈춰 섰다.
하지만 나의 한가함과는 대조적으로, 내가 머무는 바다 전망 아파트의 시간은 분주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 집에는 온 가족의 삶과 취미가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오로라가 펼쳐지는 여행지가 아니라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현장이었다.
거실 한편은 통째로 선배의 화실이었다.
캔버스와 판넬, 그리고 색색의 물감들.
“예쁜 색을 가진 화구를 사는 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사치야.”
선반 위에는 수십 종의 붓과 물감통이 보석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두 번째로 큰 방은 디제잉 룸이었다. 시내 바에서 매주 디제잉을 한다는 선배의 남편분은 여행 중이라 만나지 못했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운 레코드판과 건반, 헤드폰만으로도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 그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만선의 고깃배가 들어오고 어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날이면, 그의 바는 세상에서 가장 흥겨운 축제의 장이 된다고 했다.
집에서 가장 큰 안방은 의외로 막내딸의 차지였다. 방 안에는 미싱과 원단, 옷본들이 빼곡했다. 그녀는 여행 중 찢어진 내 가죽 셔츠를 보더니 전용 본드를 꺼내 감쪽같이 고쳐 주었다.
집주인인 선배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노르웨이인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따라 트롬쇠까지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종이루아이들과 씨름하느라 녹초가 될 법도 한데,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붓을 들었다. 만 예순다섯 살까지 일해야 연금이 나온다며, 그래서 절대 아프면 안 된다고 웃는 선배.
아름답고, 성실하고 강인했다.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우리는 커다란 가방에 화구를 가득 챙겨 문화센터로 향했다.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 북유럽산답게 튼튼하고 묵직한 책상과 의자들을 꺼내 날랐다. 책상 바닥에 비닐을 깔고 색연필과 물감, 붓과 종이를 펼쳐 놓았다. 마지막으로 열다섯 개의 이젤을 조립해 세우고 나서야 준비가 끝났다.
이젤마다 아이들의 전시 작품을 올려놓으면서 얼마 전 열었던 미술 전시회가 성황리에 끝나 부모님들이 참 좋아했다고 말하는 선배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 같은 북유럽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내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꼬마 천사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오자, 좁았던 방안은 금세 15명의 아이와 부모들로 북적였다. 선배는 능숙하게 아이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스크린에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케이팝(K-POP) 뮤직비디오가 흐르고, 아이들은 익숙한 구간이 나오면 약속이라도 한 듯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붓과 색연필을 쥐고 도화지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대견했다. 선배는 특별한 이벤트를 시작했다. 바로 '페이스 페인팅'이었다. 그림을 다 그린 아이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줄을 섰다. 아이들은 저마다 변신하고 싶은 캐릭터 사진을 내밀었다. 단연 인기 있는 건 케이팝 그룹의 멤버들이었고, 남자아이들은 DC 코믹스의 영웅들을 골랐다.
줄이 길어질수록 선배의 손길은 마법사처럼 빨라졌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상냥하게 의견을 물은 뒤, 쓱쓱 그 조그만 얼굴에 색을 입혔다.
“또로로, 똑. 쓱쓱."
혀로 재치 있는 소리를 내며 붓을 움직이자 아이들의 기대감도 덩달아 부풀어 올랐다. 거울 속 자신의 변신한 모습을 확인한 아이들이 활짝 웃음을 터뜨릴 때면, 지켜보던 부모들도 연신 셔터를 누르며 행복해했다. 온기가 가득한, 참으로 다정한 토요일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폭풍이 지나간 듯 어질러진 방. 물감 묻은 붓과 물통을 씻어 차곡차곡 넣고, 다시 그 무거운 책상과 의자들을 접어 옆방으로 옮겼다. 둘이서 매달려도 30분이 넘게 걸리는 일이었다. 이 일을 선배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반복한다. 매년 초 워크샵 기획부터 홍보, 예산 집행과 정산까지, 모두 직접 혼자서. 누가 시킨 일도 보수가 따르는 일도 아니고, 스스로 하는 거였다.
"선배, 안 힘드세요?"
"그러게요. 나이가 드니 이제 힘에 부치네요. 그래도 아이들이 이렇게 나와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거든요."
노르웨이는 부유한 복지 국가라지만, 백야가 끝난 뒤 찾아오는 긴 어둠과 혹독한 추위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바이킹의 후예들도 이 긴 겨울 앞에서는 쉽게 무기력해지고 우울에 빠지곤 했다. 긴 겨울은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사춘기 학생들의 방황이 술과 마약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선배는 늘 안타까웠다고 했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아이들에게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 그 소망 하나로 선배는 시청에 직접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지역 은행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처음엔 가족들이 도와줬지만 매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제는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그녀.
"트롬쇠는 무슨 복이래요. 선배 같은 분이 여기까지 시집와서 이런 봉사를 다 하고."
끙끙거리며 책상을 나르던 나는 터져 나오려던 신음 대신,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외치고 싶었다. ‘존경해요, 선배!’
매일 밤 해가 지면 선배와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렸다. 와인을 마시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며 긴 밤을 보냈다. 그리고 서툴지만 나도 그림을 남겼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그 집에는 또 다른 빛이 흐르고 있었다. 거실을 가득 채운 물감과 화구들, 작은 방에서 울리는 묵직한 비트, 밤늦도록 이어지는 미싱기 소리. 각자의 자리에서 좋아하는 일을 붙들고 하루를 채웠다.
오로라는 하늘에만 뜨는 것이 아니었다. 북극의 긴 밤을 건너는 법은, 각자의 방에서 불을 켜는 일.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어느새 밤을 건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