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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리스 Aug 10. 2016

ㄱ. 견우와 직녀 이야기

(4) , 번호가 작은 제목일까요

  “가서 너희가 만든 일을 마무리 짓고 오너라.”

 견우는 말없이 직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은하수를 사이에 둔 외딴집들은 다시 비었다. 기약 없는 이별에도 까치와 까마귀들은 칠석날이면 올라와 물을 흩뿌렸다. 어찌 되었든 비는 내려야 했다. 조금 짭조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었다.


 하늘이 희뿌연 색이었다. 곧 개일 흐림이었다. 산은 어깨가 찌뿌둥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젯밤 꿈이 뒤숭숭했다. 날씨 탓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로 솔을 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별로 관심 없을 테지만 만일을 대비해 지게를 둘러매었다. 밖으로 나가기에 앞서 조그만 토끼 조각도 챙겼다. 요 근래 며칠간 나무토막을 조금씩 깎아 만든 것이었다. 자꾸 어긋나는 바람에 두세 번 다시 했다. 다소 거친 솜씨였으나 언뜻 봐도 신명 나게 풀을 뜯고 있는 토끼였다.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사립으로 나가는데 안에서 아버지가 크게 외쳤다.

  “오늘은 산 가지 마라.”

  “예?”

  “산에 가지 말라고, 일 있으니께.”

 아버지는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신었다.

  “무슨 일이요?”

  “있어, 일. 긍께 장작이나 패라. 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저거부터 먼저 하고 있어.”

  “저도 잠깐만요!”

 말릴 새도 없이 산은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어디서 주문 들어왔겠지, 하면서도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솔의 집 근처로 뛰었다. 생각대로 벌써 출발해 가고 있던 솔을 만날 수 있었다. 토끼 조각을 쥐어주고, 몇 마디 안부 인사를 하고, 비복에게 잘 뫼시고 가라고 신신당부하고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가다가 몇 번이고 돌아봤다. 보이지 않아도 뒤를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마루에 걸터앉아 도끼날을 걱정하는 척 다리를 흔들고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왔다.

  “산에 뭐 숨겨놨냐?”

  “에이, 어떻게 알았지?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산은 순간 심장이 덜컥했으나 웃으며 농담처럼 대꾸했다. 버섯이든, 버섯이든, 왜 버섯밖에 떠오르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핑계 댈 것은 찾을 수 있을 테다.

  “여자지?”

 침밖에 삼킨 게 없었는데 사레들렸다. 캑캑거리다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아버지 같은 줄 아세요? 여자는 무슨, 콜록.”

  “둔탱인 줄 알았더니 이게 능구렁이었구먼. 지 각시나 찾으랬더니,”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데 손주 못 볼까 봐서 중매쟁이를 찾으러 갔더니 길에서 애들 하는 노래가 거슬려서 들어보니까 네놈이 선녀 옷을 훔쳤다더라. 설마 그 윤 양반댁 애기씨는 아니겠지.”

 마지막은 낮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부채 장수가 무슨 소릴 했는지 다 크긴 뭘 커, 욕먹을 오지랖이라고 중얼거렸다. 들어보니 노래는 자신이 아리따운 선녀 하나를 숨겨두고 매일같이 산에 가더라는 것이 내용이었다. 솔이 선녀보다 예쁜데. 가사가 조금 틀린 것 같았다. 솔의 이름이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걸 알고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필시 누군가 근처를 지나다가 본 것이리라. 아버지가 삐딱하게 서서 그런 눈으로 산을 쳐다봤다.

  “혼인해라.”

  "아버지!"

 벌써 중매를 몇 군데 넣었다고 했다. 젠장맞을, 평소엔 하지 않던 욕설을 입속에 굴리며 거칠게 문을 열어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막지도 않았다.     

 갈만한데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하늘은 무심하게 끝없이 넓었다. 누가 톡톡 볼을 건드렸다. 눈을 뜨니 동그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보는 솔의 얼굴이 보였다. 보고 싶지 않았냐는 물음에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늘 보고 싶어요. 또 보니까 좋네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대요.”

  “올라오는 걸 봤어. 무슨 일 있지.”

  “몰라요. 저잣거리에서 이상한 노래 하나 듣고 와서는······.”

  “왜?”

 말하기 좀 낯부끄러운 면이 있었으나 말해주었다. 솔은 자신이 선녀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혼인하랬다는 말도 전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서두르는 것 같다고. 사실 제 신분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건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도 당연히 누군지에 포함되는 거겠지?"

 숨이 막혔다. 숨이 멈췄다. 숨을 쉬었다. 옆에 아무 돌이나 쥐고 손에 힘을 주었다. 아팠다.

  “쉿.”

 산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킬 생각도 하지 않고 검지를 올려 입술에 붙였다. 붉게 물든 얼굴로 솔이 뭔가를 더 얘기하려 했다. 산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솔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 말은 자신이 하고 싶었다. 기분이 둥둥 떠서 밑도 끝도 없이 희망적이다.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하면 될지도 몰라. 그리고 둘은 평소처럼 속닥속닥 많은 얘기를 했다. 낼모레가 칠석날이라는 말도 끼어 있었다.


 다들 칠석 준비로 바빴다. 산은 솔이 가득 찬 머리 따로 몸 따로 일을 도왔다. 물동이 옮기는 것을 도와주는데, 어느 애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아이는 흰 봉투 하나를 주고는 쪼르르 가버렸다. 설마 벌써 선 보자는 집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솔의 서찰이었다. 집 뒤쪽 굴뚝 있는 곳으로 넘어오면 몽둥이는 조금만 맞을 수 있고, 개구멍이 있긴 한데 좀 위험할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엔 솔이 직녀였다. 그리고 견우. 웃음이 나왔다. 저번에 그 사내도 아마 이런 꼼수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응, 요번엔 귀찮게 안 와도 된댔어.”

  “잘됐구먼, 사실 뽑기 할 때마다 마음 졸이긴 했지, 즐거운 구경 놓칠까 봐. 하하.”

 편지에 정신 팔려 있는 사이에 화제는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봉수대에서 마음껏 불 피우쇼, 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룰 수 있을 만큼 큰 불을 원해왔었다.


 몽둥이가 날아왔다. 산은 간신히 팔뚝으로 돌려 막고 담에서 뛰어내려왔다. 방금 맞은 종아리가 제일 욱신거렸다. 적다는 몽둥이가 장정 둘이었다. 개구멍으로 갔으면, 글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솔을 들쳐 업자 몽둥이는 멈췄다.

  “여러모로 고마워요, 몽둥이도 피하고.”

 둘은 키득거리며 그 자리로 왔다. 작년에도 지금도 커다란 장작더미가 있는 곳으로. 환호도 박수도 휘파람도, 똑같았다. 이번엔 그가 주인공이라는 것만 빼고.

 환한 빛을 쏟으며 불타는 횃불 막대 머리를 장작더미에 대었다. 화르륵-

  “꺄악!”

 저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바람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졌다. 계획에 없었던 것이 분명한 불꽃과 시커먼 연기가 보였다. 근처 가게 하나가 불에 타고 있었다. 어느 여인 하나가 물에 젖은 채 도망하는 게 눈에 띄었다. 치마엔 타다 남은 흔적이 있었다. 모두들 한눈 팔린 새에 다른 불이 생겨났다. 저 멀리서도 커다란 불이 일렁였다. 갑자기 불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었다. 실수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집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너무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고함.

  “우리 아기!”

 한 목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젊은 아낙이 불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근처에 있던 아저씨들이 정신을 차리고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무너지는 중이었던 불타는 지붕에 먹혀버렸다.

  “우어어어- ”

 사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올라왔다. 길목을 막으며 점점 에워쌌다. 특이한 옷차림이었다. 가까이 보니 엉성하게 만들어진 갑옷이었다. 뒤에 있던 사람이 피를 터뜨리며 넘어졌다. 뜨뜻한 피를 뒤집어쓰니 정신이 들었다. 솔, 솔을 찾아야 했다.

  “솔! 솔!”

 큰 소리를 부르다 시선을 끌고 말았다. 머리로 날아오는 창을 피하다 볼이 조금 찢어졌다. 다행히 곧 솔이 보였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방향을 틀었다. 벌써 죽은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남아있던 농기구를 찾아낸 사람들이 덤볐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솔은 어느 시체 근처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있었다. 솔, 내 손을 잡아요, 팔을 내밀었지만 채 닿기도 전에 우악스럽게 뒤로 팽개쳐졌다. 이번엔 칼이었다. 급소만 피했다. 점점 상처가 늘었다. 우연히 보이는 상대의 빈틈에 간신히 발을 차 넣고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돌아본 쪽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솔이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의 성대는 지금까지 진동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울렸다.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혀에 도는 쇠 맛이 목구멍 맛인지 속에서 올라온 붉은 맛인지, 어디서 튕겨 입에 들어온 피 맛인지도 몰랐다. 실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칼이 옆구리로 찔러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온통 붉었다. 그 빛을 받은 눈도 붉었다.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뛰어올랐다. 하지만 땅에는 다리보다 먼저 코가 닿았다.



[사진] 야트막한 산 중턱에 앉아 하늘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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