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남편은 개발자고 나는 마케터다.
남편은 컴퓨터와 대화할 일이 더 많고, 나는 사람과 대화할 일이 더 많다.
그래서 처음에 인테리어 업체와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테리어 업체와 함께 일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같은 말을 여러번 하게 만들고, 분명히 주고 받은 내용들도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하고..
그래서 그런지 인테리어를 하면서 화가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그래서 말도 곱게 나가지 않았는데,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가는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기도 조금씩 불편해져 가고 있었다.
잘 살아보자고 집 리모델링을 하는데..불편해져 가는 부부사이.
이게 맞는건가? 남편은 여러번 '현타' 가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인테리어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나 대신 남편이 맡게 되었다.
화가 나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화가 나도 변함없는 얼굴 표정으로 침착하게 응대했다.
가장 놀랐던 순간은 인테리어 업체와 약속을 잡았는데
업체가 말도 없이 펑크를 내고 연락을 받지 않아서
몹시 화가 났던 사건이었다.
이틀만에 통화가 되었을때 업체는 감기에 걸려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고
나는 그래도 약속을 잡아놨는데 연락 두절이 된 건 이해가 안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자 남편은 그런 상황이라도
"몸은 좀 괜찮으세요?" 라고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의 그 말에 무척 놀랐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불같은 성격의 나와는 달리 물같이 침착한 남편,
화가 날 때는 사실 '내가 화가 났다' 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 배려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화가 나는 상황이라도 여러 각도로 상황을 바라보고
침착하게 응대를 한다.
화를 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대처를 해야 하고 섣불리 화를 내면 오히려 본인과 주변사람의 감정이
더 상할 수도 있다는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남편의 의견에 사실 100% 동의하는 건 아니다.
분명히 화가 나는 상황인데 화를 내지 않고 본인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인거 아닌가 라는 삐딱한 생각도 사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화법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내 감정에 스스로 많이 휘둘리는 편이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휘둘린 감정 중의 하나가 '화' 였고.
나의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는게,
하고자 하는 일을 마무리 하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이번에 했다.
부드러운 물같은 남편과 불타는 활화산같은 아내.
이번엔 정말 같이 프로젝트의 팀원이 되어 실무를 진행한 느낌이었고,
같이 일을 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과 다시 같이 일을 해도 괜찮을것 같은데
남편은 어떨까?
침착한 얼굴로 "같이 일하는 건 좀더 생각해보자" 라고 하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싫은 일이 있으면 싫어! 라고 하지만, 남편은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