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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Jan 21. 2021

미운 7살 앞에서 못난 마흔 살을 봅니다.

신께 드리는 엄마의 기도

 
하나님, 어제저녁 제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았어요.


일의 발단은 이랬어요.

오랜만에 친구가 왔다 갔어요. 7시간 정도 실컷 놀았죠. 보드게임을 하는 중에  해온이가 말했죠. 

"이거 하고 엄마 아빠 놀이를 하자"

그런데 보드게임이 끝나자 저와 친구 엄마는 시간이 늦은 걸 알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엄마 아빠 놀이를 하기로 했는데 못했다며 아이는 화가 났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떼를 쓰거나 했을 텐데 어제는 화가 났더라고요. 울거나 짜증을 부리는 게 아니라, 뚱한 표정으로 '나 화났어'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아이이에게 말했어요. 
"해온아 엄마는 너 기분 좋으라고 친구들 초대한 건데,

넌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네.

그럼 앞으로 친구들 초대 안 해야겠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래요. 

"응, 앞으로 친구들 초대하지 마"   

뜨악... 이렇게
전 놀랐어요. 

예전 같으면 이럴 거면 아예 안 한다는 식의 협박에 겁을 먹고

순순히 안 그러겠다는 어조로 대답했을 텐데,

어제는 아니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협박이 먹히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어서인지 저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어요.

저는 여러 육아서적에서 배운 대로 감정을 공감해주는 말을 했어요.
"해온아, 네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이해해. 네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야"

그리고 설교가 시작되었죠.
"누군가 너에게 딸기 2개를 주었다고 해보자. 

넌 그 딸기를 먹고 나니 한 개 더 먹고 싶어 졌어. 그래서 더 달라고 했는데 안 주었어. 

아쉽지.. 근데 그렇다고 그 사람한테 화를 내면 될까? 

2개라도 먹어서 감사하고 기쁘게 여겨야지 않을까?"

아이는 잘 듣고는 있었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저도 아이의 낯선 대답 덕분에 
제 화법이 먼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네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아예 친구들 초대하지 않겠다는 표현이 너무 극단적인 거였죠. 

제가 먼저 그렇게 해 놓고는 

해온이가 아예 초대하지 말라는 말에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제가 '요놈 봐라'라는 기분으로 

한 수 가르치려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 "게임"에서 이기려고 말을 시작했으니.

아무리 '네가 아쉬운 건 이해해'라는 말에 이해받는 기분이 들 리가 없겠죠.

엄마는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니 

화가 더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내가 차라리 

"맞아. 엄마 놀이하기로 했었으니까 약속한 대로 하는 게 맞았는데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많이 아쉬웠지? 속상했지?" 

라고 말해주었다면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고 있다고' 실제로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딸기 예화를 하든 했어야 아이에게 들렸을 텐데 말이죠.

아이에게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됩니다. 

''아쉬울 수 있어''. ''아쉬운 걸 이해해''라는 말만으로 공감받고 있다고 느낄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진짜 내 생각은 '네가 틀렸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저 말은 그냥 배운 대로 말한 것뿐이었죠.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가 다시 생각이 나네요. 


그때 문득, 

"미운 7살"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어요.
다행히 해온이의 그런 변화가 괘씸하게 느껴질 찰나였는데 

그 변화가 '성장'으로 보였어요. 

그만큼 생각이 많이 자랐구나. 자의식이 커가고 있구나라고 말이죠 
그런 변화가 어른에게 밉게 보일 수 있어서 7살을 "미운 7살"이라고 말하게 되었겠죠. 

처음엔 그런 해온이에게 설교를 하고,

'엄마는 너 기분을 좋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야 뭐가 잘못된 행동인지 잘한 행동인지 알려주는 사람이지' 

맞는 듯 맞지 않는 듯 그런 말(포탄)을 던졌지만,

최후의 원자폭탄은 터뜨리지 않은 채 평화롭게 재울 수 있었어요.

마침내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시선을 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이런 일들이 종종 있겠죠?
참 지기 싫어하는 제가 큰 일이에요. 

하나님 이 일을 겪어내며 저도 성장시키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거지요?



어릴 때 언니한테도 한 번을 안 지려고 했던 저.
또박또박 따지고 들던 저.
어떻게든 내 논리로 따지고 들던 저.
지금은 많이 후회합니다.
언니한테 많이 미안합니다.

언니도 이겨먹으려고 한 제가.
하물며 저보다 어리고 약한 내 아이를 얼마나 "무자비"하게 이겨먹으려고 할까요.
제 본성이 어디 갈까요..


하나님,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못난 저로부터 제 아이를 지켜주세요. 
그리고 저를 변화시켜주세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언니에게 "미안해"라는 말이 아닌, 

변화된 나의 모습으로 사과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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