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 닮은 딸이 될래’

친정엄마는 나의 복지 담당자

by 별하


나는 엄마가 정말 훌륭하다.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30대 후반이 된 나는 제삿날만 되면 여자라서 엄마를 도와야 했다.

크면서는 혼자서 제사 준비를 다 하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고,

왜 엄마 혼자 이 일을 다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릴 때는 엄마 따라 시장 가고 하는 게 좋았지만,

커서 보니 엄마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아무 말하지 않고, 군말 없이 제사를 10번 다 지내니 말이다.


한 달에 두 번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한 달이 너무 바쁘다.

우리 집은 돌아서면 제사, 돌아서면 제사였다.

그리고 제사 지내고 나면 제사상에 올라간 음식은 집에 두고,

제사상에 올라가지 않은 음식은 이웃들과 나눠먹었다.

이웃들은 우리 집 제삿날만 기다리기도 했다.

엄마 음식 솜씨가 그만큼 좋아서 제사 음식 좀 없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 반찬은 늘 나물이랑 튀김 반찬이 주였다.

매일 나물에 밥을 비벼 먹어야 했고, 튀김은 냉동실에서 꺼내서 구워서 다시 먹어야 했다.

제사 음식 다 먹을 때까지는 다른 반찬은 만들지 않으셔서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음식이 제일 맛있어서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병시중을 해야 할 때는 우리 집에 모셔서 병 수발을 다 받아냈다.

똥, 오줌을 다 받아내고, 벽에 똥칠과 오줌칠을 해도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할머니를 씻겨 드렸다.

그렇게 하면서도 제사는 잊지 않고 꼬박꼬박 군말 없이 지냈다.


학창 시절에는 집안 제사가 버겁기도 했다.

학교 다니며, 바깥에 일이 있어서 일을 봐야 할 때,

집안 제삿날이 되면은 바깥일은 다 정리하고 집에 일찍 와 있어야 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처음에는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시간 지나고 집안 문화가 익숙해지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당연한 일은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왜 그 룰을 따르냐고 말을 많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조상들을 잘 모시면 집안이 편안해진다는 말에

어느 순간 세뇌가 되었고, 그 말을 잘 따르게 되었다.


솔직하게는 제사 음식을 다 맡아서 할 자신은 없다! 엄마만큼은 해내지 못한다.

신랑 집안도 제사 문화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제대로 하지 못해 항상 시누이 도움을 받고 있다.

30대 후반인 나는 지금도 제사 음식을 혼자서 다 하지 못한다.

이제는 늙고 아픈 엄마를 기어이 불러내어 음식 만드는 걸 부탁한다.


너무 죄송하지만, 나는 엄마를 닮지 못했다.

마음은 엄마를 닮았지만, 음식 솜씨는 엄마를 닮지 못했다.


늘 이웃들은


“엄마 닮았으면 음식 잘하겠네. 딸도 엄마 음식 솜씨 닮아 음식 맛있겠다.”


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죄송스럽게도 엄마 음식 솜씨를 닮지 못했다.

그래서 늘 남편한테도 미안하다.

음식을 잘하지 못해서 남편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음식을 전담해주고 있다.

그럴 때마다 신랑도 고맙지만, 내심 엄마가 떠오른다.


‘우리 엄마, 참 대단하시네, 이 모든 일을 어떻게 다 하고 두 자녀까지 키워내셨을까?’


“엄마, 난 엄마 닮은 딸이 되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정말 멋진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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