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산맥에 우리말이라는 산이 있을 뿐
우리말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우리말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모른다’입니다. 물론 대표적으로 ‘알타이 어족설’이 있기는 합니다. 알타이 어족설에 따르면 우리말은 몽골어, 일본어 등과 먼 친척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가설에 반대하는 이론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답은 ‘모른다’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우리의 언어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왔다는 것이죠. 밤하늘의 별빛은 별을 출발하여 오랜 시간 멀고 먼 우주를 여행하여 우리에게 과거의 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우리말도 엄청난 과거의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 것입니다.
조금은 상상할 수 있는 과거의 시간으로 가볼까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전투가 치열했던 그 시절. 과연 이들은 서로 쉽게 대화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북한 방송을 볼 때 우리는 조금 어색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욱 어색함이 없죠. 과연 삼국시대 사람들도 서로 이야기를 쉽게 나누었을까요? 여기에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주몽 신화를 생각해 봅시다. 동부여의 금와왕에 의탁하여 자라난 주몽은 유리를 낳습니다. 주몽은 금와왕의 아들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탈출하고 후에 고구려를 건국하게 되지요. 어머니의 손에 자라난 유리는 후에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가게 되고 주몽을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고구려 건국을 위해 힘쓰던 주몽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바로 소서노입니다. 소서노는 주몽과 인연을 맺기 전에 전 남편에게서 얻은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있었지요. 유리가 고구려로 돌아오자 위협을 느낀 소서노는 비류, 온조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형인 비류는 미추홀(오늘날 인천)에 터를 잡았고 동생인 온조는 위례성(여러 견해가 있지만 오늘날 서울 송파구에 있는 몽촌토성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년 10월이면 한성 백제문화제를 올림픽 공원에서 열립니다.)에 터를 잡고 십제(十濟)라는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비류가 죽고 비류를 따르던 무리는 온조의 위례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후 십제를 백제(百濟)로 이름을 바꾸어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제는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과 북쪽에서 내려온 지배층들의 언어가 달랐다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북쪽의 언어와 신라로 대표되는 남쪽의 언어가 달랐다는 의견도 있고, 삼국 모두 조금 말은 다르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답니다.
산이 흐른다는 말은 어색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산은 산으로 이어지고 산맥을 이룹니다. 산처럼 오랜 시간에 언어도 흐르고 언어의 맥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로 이어졌던 산들이 풍파와 지질 활동으로 끊겨 새로운 산맥의 시작으로 변신할 수도 있듯 언어도 그렇게 흘러왔고 흘러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