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다가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아시나요? 아마도 30대 이상이라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줄리아 로버츠입니다.
최대한 똑같이 그려보려고 했어요. 처음 그림을 보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네요.
이번 주 책 모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리고 있는 그림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그림을 그리려면 꽤 오랫동안 그 대상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있을 때 기분이 좋아하지는 것을 그리려고 합니다.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웃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지? 해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줄리아 로버츠의 얼굴은 아름답다 못해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어요. 아무 게의 웃는 얼굴이 아니라 이게 줄리아 로버츠라고 인식되도록 그리는 건 다른 문제였습니다. 두 눈 사가 조금만 멀어도, 이마의 그림자가 조금만 달라도, 입술의 두께가 조금만 달라도 그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어요. 줄리아 로버츠를 줄리아 로버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작은 것들을 수정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 완성됐죠. 그리고 생각했습어요. 개개인이란 게 정말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서 완성되는구나.
그건 줄리아 로버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모두는 무수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았어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눈을 뜨면 나 말고 다른 것들만 보이는 생물학적 특성이 있겠죠. 거울이 없는 이상 우리는 자신의 물리적인 모습을 잘 보지 못하잖아요. 또 요즘은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떤 환상에 젖어있는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과거에는 40이며 불혹이라 했지만 요즘은 40이 되어도 삶이 무엇인지 거의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이인 거죠. 또 나라는 실체가 따로 있는지에 대해서 철학적으로도 아직 결론이 없는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나의 디테일들에 무심한 상태로 살아간다는 거죠.
굳이 나를 알아야 해? 그냥 이것저것 즐기면서 살면 좋겠는데.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사람이라는 동물에게는 내가 누구냐라는 질문과 마주치는 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이 오롯하게 나에게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같은 것 말이죠. 이때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마치 여행하려 탄 배에 선장이 없음을 알게 된 승객의 마음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제 내가 이 배를 몰고 가야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는 거죠.
줄리아 로버츠를 줄리아 로버츠로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고민했듯이 나에게도 질문해 봅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을 할 때 신이 나는 사람일까? 어떤 색을 좋아하고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무엇일까? 왜 그런 걸까? 이 보다 더 디테일한 질문들로 나를 알았을 때 비로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가 갈 것을 알고 있다면 처음 볼아보는 배일 지라도, 처음 살아보는 삶이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망망대해에 목적지는 원래 없으니까요. 두려움이 아니라 설램으로 가는 길이 목적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