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준비물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셜 맥루한이 쓴 미디어의 이해의 주제다.
이 말은 미디어 형태 자체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는 말이다.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보자.
신문은 아침 공기처럼 하루를 채운다.
그렇게 사람들은 신문 속 사건사고들로 매일을 채운다.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인식한다.
TV는 마을에 하나씩 시간이 흘러 모든 집의 정 중앙을 차지한다.
심지어 아파트는 처음부터 그 위치를 지정하고 설계된다.
가정의 최고 권력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TV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다.
극장은 도시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도시 최고의 번화가에만 설치된다.
꼭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다는 희소성, 그것이 영화 권위의 원천이다.
이렇게 미디어에 내용 보다는 미디어의 외형이 훨씬 더 근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힘이 없다.
미디어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변한다.
과학이 발전하면 미디어가 변한다는 말이다.
소리와 어느 정도의 영상을 전송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그동안의 미디어였다.
그런데 그 제약이 없어졌다.
양자 단계의 트랜지스터는 더 이상 물리법칙이 적용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기존의 미디는 폐기된다.
넷플릭스는 로컬 방송국 시스템을 폐기시킨다.
유튜브는 영화의 권위와 시스템을 폐기시킨다.
비트코인은 은행이라는 시스템을 폐기시킨다.
스마트 폰은 그 선봉장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메시지다.
스마트 폰은 손바닥 안에 있다.
장난감이라는 말이다.
내가 주인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TV방송 시간을 기다리는 시대가 간 것처럼.
1000억짜리 영화나 개인이 찍은 유튜브나 같은 손바닥 안에 있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가 가졌던 아우라는 갈 곳을 잃는다.
AI에 대체되어 갈 곳을 잃은 사람들처럼.
시간은 성숙의 필요조건이다
인간 사회에서 성숙은 절대가치다.
현대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에 성숙이라는 가치가 갈 곳이 없다.
해서 예술도 갈 곳이 없다.
이 것이 AI 시대의 핵심 문제다.
어디에 가치가 있는지 모르는 것.
답은 간단하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이건 니체가 한 말이기도 하고 진리이다.
남들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 말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자.
유일한 AI 시대의 정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