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편

'내가 올라갈 산'

by 나윤

양자역학이 대세다.


그것이 최신과학이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원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을 삶의 영역에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비과학적인 과학이기에


사람들은 종교를, 자기 계발을 이 이상한 과학과 연결 짓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올까?’


어려운 책이라 선정하며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고 눈들이 반짝반짝했다.





“제목이 왜 부분과 전체인가요?”


책은 양자역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부분과 전체’라는 테마로 묶는다.


독일이라는 국가에서 과학자는 어떤 사람인가, 전쟁 속에서 과학자의 윤리는 무엇인가, 변화하는 과학이론 속에서 갈등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식이다.


이 이론이 태어난 전체 즉, 사회적 맥락을 소개하며 이를 제목으로 지었다.


이것은 부분은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는 정의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 이론과 너무도 절묘하게 닫는다.


작가의 작명 센스도 노벨상 감이다.





논의는 예상대로 이 과학이론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흘렀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론 같지 않나요? 그 말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느껴지거든요.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어떤 한계를 느낄 때 또 그런 생각이 들죠. 내가 뭔가에 속박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나에 갇혀있구나.”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


나라는 부분은 그래 확률적으로 이곳저곳에 위치할 수 있지만 그 확률 분포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나 나의 행동이 특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을 때 더욱 결정론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배경엔 명리학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나의 이야기에 모두 침묵했다.


침묵은 반대의 표시 혹은 무슨 소린 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시 둘 중 하나다.




이후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심리상담을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그렇게 이상항 억측은 아니어 보이는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문득이다.


‘나는 아직도 성공의, 행복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구나…’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혼란스러운 중에 이에 참석하신 멤버 한 분이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셨다.


“오히려 반대 아닌가요? 이 학문에 의하면 난 명확히 규정되지가 않잖아요. 가능성이 무한히 열린 거죠”

기분이 이상했다.


“창문은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이야”라고 하니


누군가 “무슨 소리야, 창은 안과 밖을 보여주는 것이지”라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 허공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성공이 어떤 조건들의 합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성공이라는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 이런 걸 준비했던 거다.


튼튼한 체력과 좋은 장비, 지도를 보는 방법, 기후를 읽는 방법, 조난당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 등등


이런 것들을 기르다 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바라보던 산은 존재하지 않는 산임을 깨달았다.




그 산은 사실 권위, 노력, 희생, 유일함이라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 정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있다고 믿어왔던 것 같다.


이제 보이지 않는 산에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올라야 할 산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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