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맞음.

'쏙'집어 라오

by 별이라오


"칼이 있는지 제가 다녀올게요."


잔잔한 호수 물결을 바라보며 품위 있게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녀석의 덩치가 생각보다 컸고, 함께 동행한 우리 셋이 한 번에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토막을 내야만 한다. 이럴까, 저럴까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동행한 동생이 칼을 찾아 나섰다.


모든 것이 완벽한 아침이었다.

칼을 부르는 그 덩치 큰 바게트 샌드위치만 빼고.

무더웠던 라오스도 가을에 접어들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진 날씨 덕에 야외로 나왔다. 호수를 바라보며 라오스식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요즘이라 2주 전부터 우리는 만날 날을 맡아놓고 그날이 되자 아침 땡! 하자마자 달려 나온 거다.

인공호수이긴 하지만 넓고 쾌적한 이 호수공원은 주말 아침이면 애완견들과 가족, 친구들과 조깅을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고 푸드트럭과 예쁜 카페트럭, 과일트럭들이 더 일찍부터 하루를 달리느라 분주한 풍경이 펼쳐진다.

"카오찌 능, 크롸상 능. 라떼 옌 쏭. 남망껀 능"*
샌드위치와 크라상 빵만 시켜서 나눠먹기로 하고 주문을 마쳤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카페트럭이 야외 한적한 나무들 사이에 센스 있게 펼쳐놓은 캠핑의자와 캠핑테이블 중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그 바람결 따라서 호수 물결도 신나는 듯 두더지 잡기 하듯 오르락 내리락이다.

"쌤.."


"..."


"쌤..."

칼을 들고 동생이 나지막이 나를 부르며 오는데 내가 못 듣자 몇 번 더 나를 불렀던 거다.(우리는 서로 라오스 덕분에 알게 된 사이인데 김 선생님, 박 선생님 부르다가 가까워져서 편하게 선생님을 줄인 "쌤"으로 서로를 불러오던 차였다.)

"쌤..."

나는 그제야 동생 쪽을 바라봤다.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가 광속으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웃다가 울다가 하는 미친 녀자가 눈을 못 뜨고 웃음소리랑 같이 새어 나온 눈물을 닦느라 어깨 쪽 옷이 얼룩이다.

칼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품위 있게 분위기 있는 놈은 아니었지만 세상 누가 봐도 '내 이름은 칼!!'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날카로운 놈이었다.


그런 놈을 집고 있는 손을 살살 흔들며 동생이 말했다.
"아니, 쌤.. 제가 '빵을 자르고 싶다. 칼이 있냐'라고 물어봤더니 '있다.'라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설거지통에서 이걸 꺼내 닦아서 주는데 잠시 고민됐지만 안 받아올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웃으면서 우느라 미친년 널뛰듯 숨도 못 쉴 지경에 처한 나는 배를 잡고 겨우 대답했다.
"아악...ㅎㅎㅎㅎ 쌤, 잘했어요 ㅎㅎㅎ 그나저나 다행이에요 ㅎㅎㅎ 저 뒷 테이블에 문신 새긴 남자들 중에 ㅎㅎㅎ 쌤(sam)이 없기에 망정이에요 ㅎㅎ아악!!!ㅎㅎㅎㅎ"


(주문한 음식들을 기다리며 우리는 스피커에 음악도 크게 틀고 떠들며 풍경 망치는 문신남들을 거슬려하고 있었더랬다.)


칼을 들고 등장하던 동생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복수의 칼을 들고 나지막이 상대조직의 쌤(Sam)을 부르며 도발하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쌤..."]

"아!! 꿈에서나 다시 오려나,

유쾌하고 눈물 나게 맛있는 아침이여!!!"







*한 줄 첨가*

라오스에는 아직 컷팅나이프(일회용)가 흔하지 않다.

개선되고 있는 부분들이 분명 많아지고 있지만 생일 케이크 포장 외에는 나이프가 일상적이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위의 주문내용
•카오찌 능=라오스식 샌드위치 하나

•크라상 능=크라상빵 하나

• 라떼옌 쏭=아이스라떼

•남망껀 능 = 용과 주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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