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지만 곁에 두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익숙해진 온라인 회의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라는 굉장히 평범한 일상을 묻는 질문에 대해 회의에 참여하신 분들은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거나 / 또다시 확산되는 각종 코로나에 대비하는 기관의 상황은 이렇다 저렇다 / MZ 세대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팀 인력 관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다거나 하는 전문적이고, 근사한 대답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콕’ 집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하루종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저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회의에서 기대하던 대답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근황 토크에서 나눌 것이 이것 뿐이었다.
‘나는 이제 쑥쑥 큰 언니야’라고 하면서, 꾹 참고 당근을 먹어 토끼가 될 수 있다고 기뻐하며 자랑하는 ‘별’
갖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세상을 이겨내고 뒤집었지만, 하늘을 보지못해 항상 화가 나있는 ‘빛’
이들의 도전과 성취를 바라보고 있는 것, 지금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내 세상의 ‘별빛’은 낮이고 밤이고 항상 빛나고 있지만, 그 빛은 각자의 세상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을 수천번 수만번 다짐한다.
나와 아내라는 통로를 통해 세상에 나온 아직은 너무 작고 소중한 우리의 아이들이
하루하루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갈 때마다 단계적으로 거리를 두고 멀어져 가는 것
이들의 세상에서 스스로 빛나기를 응원하며 바라보는 것
요즘 나의 일상이다.
<아이들에 대하여>
- 칼린 지브란 「예언자」 中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 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 조차 갈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활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쏘는 이의 손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