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태원에 그토록 집착했나. 무엇이 나를 그들에 매이게 했나.
<주의>
이 포스트는 이태원 참사 현장과 당일의 기억, 외상 경험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은 해당 포스트를 피해 주시거나 읽으실 때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왜 이태원에 그토록 집착했나. 무엇이 나를 그들에 매이게 했나.
곧게 경직된 몸이, 몸과 몸 사이에 끼인 채 죽어가는 모습을, 그 적나라한 광경을 보고서도 일상의 흔한 사건인 양 잠에 들었기에. 공권력의 부재에 살해당한 이들이 스러지고, 살려달라 몸부림치고, 그럼에도 어느 하나 기적에 환호하는 소리가 없는.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 비명 지르는 쉰 목소리와 같은 공간 한 켠에서 들리는 음악소리. ‘마약’. 길거리 방치된 헐벗은 몸을 찍는 이들과 도로를 따라 늘어선 팔과 다리의 형상. 찍지 말라 외치는 어떤 여성의 응어리 맺힌 절규와 누군가를 껴안고 우는 비명. 그 사이 돌아서는 숨을 붙잡으려 솟구치는 몸이 여럿. 사이렌 소리. 꽉 막힌 도로에 갇힌 구급차. 떨어진 물건을 주워 한데 모으는 사람들. ‘사망자 2人’.
그 순간에 있던 너라면. 요동치는 활자로 그들을 눈에 담았다면.
어디까지 볼 수 있겠니. 화면 너머 현실에 대하여.
움직이는 것. 선동하는 것. 감정적인 것. 눈에 비치는 모든 것에 배반하는 선고. 그 모든 것이 한 데 섞여 혼잡한 한 뼘 세상에서. 경험과 전달, 확산, 증명. 그 사이에서. 이제 와 선명해진 시야. 평범한 선인이 목격한 현장을.
난 알아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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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아침에 무얼 보았더라.
아직도 그날의 볕이 기억나. 게임에 빠져 아침노을에 잠드는 걸 만회하려 임시로 거실에다 잠자리를 깔았었지. 그 집 거실에는 벽 하나를 차지한 통창이 있어서, “춥지 않을까?” 걱정하는 어머니께 “늦잠을 잘 수 없어 좋아” 하고 웃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해가 뜨고 가림막 하나 없는 창 너머 햇볕이 눈을 때리면 나는 뭉그적, 어제와 한 치 다름없는 자세로 핸드폰을 주워 들고, 곧 있을 할로윈 이벤트를 확인하려 해.
그리고, 암전.
순간 사방에 적막이 차올라, 세상이 시간을 멈추고, 나는 헛들이켠 숨을 뱉어내지 못해.
진공과 진동 사이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나 봐. 살려달라는 목소리. 아이의 이름을 외쳐 소식을 갈구하는 어머니. 꺼내달라고, 흔들리는 여린 손목과, 떠난 이곳에 남아 떠도는 너의 갑옷. 존엄을 지킬 천 하나가 없다면, 얼굴을 가려줄 사람 하나 없다면. 불운을 이유로 온 세상에 최후를, 가장 내밀한 순간을 보여줘야만 하는 걸까? 그게 응당하다고 생각해? 그제야 생각이 눈을 따라왔어. 내가 본 바, 목격했던 순간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포개지 못해 입구에 죽 늘어선 하얀 몸들이, 한 장 사진이, 살려달라는 소리가, 눈에 화인으로 남아 나를(모든 곳에) 따라오는 거야.
세상은 언제나 눈물 흘리고
사람은 양산된 비극에 살아남으려 사랑을 선별한다는데.
울지 않는 네가, 본 적 없는 네가 그리운 이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말이나 글로 형상할 수 없는. 싸늘하고, 끓어오르는. 죄를 쫓아 순간을 억죄는. 그 갑갑하고도 두려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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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마주하고 가장 두려웠던 것. 그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거야. 그 순간마저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았어.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신들을 정성으로 추모할 수 있다면… 이기적인 바람인 걸 알아. 오직 나를 위한 일이지. 떠나간 사람들은 이제 없는데. 순간은 한 때에 존재할 뿐이고, 죄를 빌 수 있는 대상도 사과받을 상대도 없어. 이토록 배반적인 위령이 또 어디 있겠어. 그치만 도저히. 이전 같은 일상을 보낼 수가 없는 거야.
올라오는 모든 기사를 읽고, 모든 뉴스를 보고, 만인이 외치는 만 가지 말을 전부 찾아보려 했어. 그러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죄스러워 견딜 수 없었어. 이 머리 한 켠 어딘가에서 낡은 시계의 전자음이 울리는 것 같은데. 눈에는 계속 누군가의 텅 빈 몸이, 흔들리는 팔다리가 일그러져 나타나. 멍하니 창을 보고 있어도 화면을 붙든 듯 두 눈이 따끔거리고 아파. 분명 잠에서 깨었을 텐데. 초점 없이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감정은 어느 때보다 조용했어. 먹먹한 바다 한가운데 온몸을 침잠하고 숨을 쉬는 것처럼. 몸이 잠드는 만큼 감각은 또렷이 살아나.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 소리를 틀어 두었어. 어느새 비명이 익숙해졌어. 모자이크 너머 모르는 이의 맨 얼굴이 보여. 내가 다 봤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그 영상도, 얼굴을 가리고 화면을 뭉갠 이 영상도. 어느 곳에서도 보도되지 않은 그때 그 기묘한 흐름도. 나는 그곳에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그때 나는 무얼 했더라. 모든 일을 다 목격하고서 난 뭘 했더라. 감히 그 순간을 참사라 인식하기는 했던가. 떠나가는 이들을 보고 죽음을 떠올리기는 했던가. 부정한 정부의 여느 가십처럼 뉴스를 흘기고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겨 마우스를 놀렸지. 누군가 평생 닿지 못할 할로윈. 그 이벤트를 기다리며 두근거리기 바빴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사실 다 거짓이라 믿고 싶었나 봐.
오늘은 10월 마지막을 향하는 날이 아니고, 인터넷엔 언제나 그랬듯 적당한 비극 적당한 표백이 있고, 난 게임 속 친구들과 어제 같은 오늘을 보낼 것이며, 새벽에 잠들어 점심에 깨는 일상을 반복하여,
슬픔은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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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도날드덕 이야기를 봤어. 가만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주체 못 할 눈물이 흘러. 핸드폰을 붙잡은 양손을 놓질 못해. 이곳 너머 당신의 손을 맞잡은 것처럼. 한참을 울었어. 막연하게 갑갑했던 마음이. 얼기설기 쌓아놓은 둑이. ‘슬프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흘러내리는 것을 어찌할 생각도 못 하고. 천천히, 꾸준히 스크롤을 내렸어. 그녀에게 들리는 모든 곳을 알아. 글과 영상. 조각난 한마디 비난, 비탄, 환멸, 오열까지. 각자가 목격한 모든 순간이 전부 그곳에 있었어. 연결을. 한 공간이. 그 증언이 전부 이곳에. 그 엄청난 밀도가. 온몸으로 현장에 들이 받힌 당사자가. 위태로이 홀로 선 사람이 보였어. 어떤 증언은 없던 내가 사방을 그릴 수 있게 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난.. 마음이 아팠어. 진부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란 게 있다는 걸. 그날 알았어.
그건 일상이었어. 평범한 기대로 시작한 날이 한 줄 한 줄 발을 디뎌 현장으로 향했어. 그녀의 걸음을 따라 나도 그곳에 섰어.
그녀의 시선은 말을 해. “여기 참사가 있었다.”
나도 그 시선을 알아. “나도 그날을 봤어요.”
내가 목격한 모든 것들이, 작은 화면 속 활자와 동떨어진 세상이, 그제야 삶이 되어.. 개인이 되어 인식에 다다랐던 거야. 처음이었어. 감히 눈물을 흘린 게. 그 사람이 참 강한 사람이라 울었고, 다정하고 솔직한 마음에 상처를 준 일들에 화가 나 울었고, 감히 울어도 괜찮은 입장일까 질책하는 말들에 울었어. 진심으로 기원했어. 정말 간절하게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어.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이곳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참사의 모습과 소리를 마주한 그대가, 언제까지고 사랑할 용기를 잃지 않기를.
후회와 가능성을 구분하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기를.
당신의 글을 보고 울었던 사람들의 수만큼 당신의 눈물이 거두어지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며칠 전 경복궁역 앞 별들의 집을 찾았습니다.
참사가 있던 날. 그리고 이어진 2년 7개월이 벽면에 걸려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 기억을 오래도록 믿지 못하고 있었어요. 실시간 올라오는 영상, 사진, 증오와 슬픔 가득한 글로 모든 걸 보고서도 “사망자 2인”이라는 그 짧은 문구 하나를 믿어, 마약과의 전쟁을 벌인다던 (전) 정부가 또 사건 하나를 꾸미고 억지로 키우는구나- 하며 평안히 잠들었거든요. 게임 길드원 사이 있던 소소한 다툼이 오히려 저에겐 큰 주제였고, 그렇기에 정오에 눈을 떠 처음 본 헤드라인을 믿을 수 없었고, 때문에 그 저녁과 새벽은 아직까지 선명한 영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생생한 증거를 보고서도 현장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건 왜일까요.
단지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인가. 무능한 정부가 일으킨 수면 안팎 여러 사건사고에 질려 소식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화면 속 비극은 어찌해도 현실의 감각이 될 수 없나. 통계로 집계되지 못한 죽음은 떠도는 것일 뿐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하나.
첫 일 년은 스스로가 부끄러워 그날의 기억을 어디서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특보가 어땠는지. 아나운서와 화면 구성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생존자분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떠난 분들의 기사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속죄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무서워 현장을 찾지 못하면서도. 얼굴 하나 없이 늘어선 영정에 ‘이건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선뜻 발을 향하지 못했습니다.
일 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 상담소를 찾았습니다.
일상 순간순간에 그날 저녁 실시간으로 본 영상이 떠오르고, 모르는 양 지나친 스스로가 역겨워, 때로 폭발하듯 울고 많은 날에 무상하고 무감각했던 제 상태를 그때서야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고 어떤 조언을 받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외부로 기억을 꺼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고. 상담사님 말씀은 와닿질 않았었다고. 몇 회기 만남은 짧은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희미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저의 부족입니다. 스스로 감정을 모르는데 입 밖에 나온 말이라고 정돈되었을 리 없었겠지요.
그저… 그땐 모든 게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두 같은 밤을 지냈을 텐데. 그 소식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오늘은 어제처럼 하루가 이어지고,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을 반복할까. 나만 그 시간을 무수히 돌아보나. 내가 지나친 걸까.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검열이 지겨워질 무렵엔 드문 말로 의견을 꺼내 보았고, 많은 날에 ‘겨우 그런 일’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쪽이 대중의 기억일까 하면서도 난 내가 들고 있는 분량만큼의 기억과 무게를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 밤이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이제는 그저 이 묵직함이, 내게 주어진 나의 몫이라 여겨졌습니다. 울며 해소해야 할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찾아 용서를 빌어야 할 것도 아니고. 분노… 의견을 표하는 수단으로 분노라는 형태를 선택할 바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목적은 아닌. 그저 내 개인에게 할당된 운명이고 동행이라고.
그렇게 때로 찾아오는 기억마저 익숙해질 즈음.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위를 하러 매일 버스에 오르면서도 차마 가지 못했던 곳. 별들의 집을 처음 찾았습니다.
벽면에 걸린 그날의 기록을 봤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까지, 희생자 분들께 죄송해서. 순간을 목격하고도 자각하지 못한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그러나 울지 못하고 텅 빈 자리만 남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 주변이 그날을 여상하게, 혹은 자신의 비극을 더 크게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영정으로 기록된 사진이 원통해서. 개인의 이야기에 집착했었나 봅니다.
그곳에서 저는 처음 그 밤 새벽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읽었습니다. 1시 47분 소방 당국은 최초 사망자를 “2명”으로 공식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시 13분. 언론에 책임자로 얼굴을 내 걸 희생자가 확정되었습니다. 공식 사망자 수는 순식간에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별들의 집을 나오며 함께 온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난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사망자가 둘 뿐이라고 해서 별일 아닌 사고인 줄 알았어.” “새벽 두 시가 넘어서 그 수가 정정된 걸 오늘에서야 알았네.” 친구는 가만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그리곤 나지막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나도 그랬어.”
그 한마디가 제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요.
기억은 많은 곳에 흔적을 남깁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일상에 여상히 고개를 빼 들고 안부를 묻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많은 날에. 인파 몰린 공간을 보며 숨이 가빠지고, 좁은 골목과 할로윈에 기억이 침투할 것이며, 령(靈)을 그리는 제단과 의식에서 어느 상인의 울음을 떠올리고, 참사를 기록한 글을 읽다 버스에서 울겠지요.
하지만 모든 순간에. 향하는 모든 곳에. 보라색 리본을 달아 함께 할 것입니다.
한때 내 몫으로 떠맡겨졌다 여긴. 오늘 나의 일부가 된 그 무게가.
이제는 조금 기꺼운 듯합니다.
<후기>
여러 날에 걸쳐 쓴 글을 한데 모아 업로드합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것이, 지나치게 적나라한 장면들이,
이 방향이 맞는 걸까 수없이 고민하게 했지만
제가 겪은 그날과, 그날에 이어진 수많은 낮과 밤은 이런 형태였기에
보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저의 시간을 적어 보았습니다.
돌아보건대
비난보다 익숙함이 더 무서웠어요.
일상의 한 사건과 다를 것 없다는 듯 비극을 크기로 경쟁하려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죠.
그들을 비난하지 않아요. 단지 놀라울 뿐.
내게 당연한 세상은 정말 한 뼘 우물에 불과해서
스스로 기어 나와 바다를 향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세상을 바라 홍수에 잠길 거라고.
도덕, 정의.
이들 단어로 이루어진 세상은 인식보다 좁고
위군자를 시시비비해 경멸과 선동에 몸 닳는 이들조차 한 뼘이며
어쩌면 세상 다수는
자기 안위 바깥으로 마음을 두지 않는 거라고.
한때는 이들이 낯설고, 이들에 실망하고, 두려웠지만
내 작은 세상에 충격을 주어 고마웠다고
이제는 감사를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립던 내 작은 우물이여..
그 속에서 안락하던 때로
나를 돌려보내며
그날의 기억을 꺼내 봅니다.
이태원 참사 규명이 첫 선을 끊었습니다.
좋은 날들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