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리의 시간을 돌아보며...
<안내>
2년간 다녔던 모임에서 글쓰기를 해 보자 이야기가 나온 직후... 나라가 큰 굴곡을 지나던 시기에 휘갈겼던 초본을 발견해 개인 기록 차원에서 올려둡니다.
시기(25년 초)를 잘.... 떠올린 뒤 읽어주세요 갑자기 들이닥치는 빠빠빨간맛 주의
함께 모여 글을 쓰자 약속한 날부터 눈 뜨고 지새는 밤에는 글을 적었다. 침구에 모로 누워 전자파 푸른 빛을 받으며……. 쿠션에 등을 기대앉아 한 손에 펜, 한 손에 노트를 들고. 그렇게 일상을 닮은 하루하루를 지나 말일을 꼽던 어느 날. 우리의 시간을 질문으로 돌렸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비워 만남을 약속한 이들에게. 모임이란, 만남이란. “당신의 여가는, 흥미는, 시간을 충만하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구태여 물어 주는 애정일지니.
그렇다면 나는 넓고 얕은 관계를 말하고 싶다.
품을 들여 서로 곁을 내어주거나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욕구인가. 우리 모두가 합의한 화요일 오후 3시. 두 시간 만남에 한정한 관계는 그 자체로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적당히 서툴고 적당히 다정한 모습으로.
주 3일 아르바이트를 가고, 4~5일은 공부를 한다. 달에 한두 번 꼴로 서울이나 고향, 대전 등지로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이곳에 초대한다. 각자의 취미와 취향이 겹치는 부분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실컷 떠들며 소소하게 근황을 주고받는다. 어떤 날에는 졸작 준비에 눈물 쏟는 친구와 핸드폰을 붙잡고 머리를 맞대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또 어떤 날엔 좋아하는 게임 신작이니 기간한정 이벤트니 하는 소식에 슬쩍 발을 들였다 나온다. 수시로 냉장고 식품상태와 식량 잔고, 물건 재고 등을 살피고 구매 목록을 고쳐 쓴다. 청소 또한 비정기. 어렵게 마음먹지 않아도 휘적휘적 돌아다니면 금세 청소가 끝나는 건 원룸의 몇 없는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새로 나오는 영화, 전시회 소식을 꾸준히 찾는다. 영화는 홀로 보는 걸 선호한다. 스토리보다 연출에 가슴이 뛰는 인간인지라. 대중적 취향에서 영 벗어나 있다 자각하고 나니, 혼자 배회하는 쪽이 더 편해지더라. 경기도는 좋다. 고를 수 있는 상영 시간, 상영관 폭이 넓다는 것은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큰 장점이다. 허나 그럼에도, 여느 예술영화가 그렇듯 관객이 없으면 금세 내려가는 것이 자본 사회 순리인지라. 새벽과 한밤으로 홍해처럼 갈라진 상영표를 보며 일정을 되새긴다. 슬픈 일이다.
등지에서 ‘~카더라’하며 도는 추천 도서와 신간도서는 꾸준히 위시리스트에 담아둔다. 근처 도서관에 장서가 있다면 오히려 좋다. 2주 대출기한은 즉발 호기심에 책을 구한 뒤 유유히 방치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부스터다. 최후의 2~3일에는 물약을 펌핑한 것처럼 순식간에 책을 읽어내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상을 만든다.
요즘엔 시간이 비는 주말마다 시위처를 찾는 게 나름 일정으로 자리 잡았다.
자정도 되지 못한 밤으로부터 새벽 해가 떠오른 순간까지 날밤을 꼴딱 새운 하루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누구를 대리자로 세우리오, 내가 그들 중 하나로소이다.
하루 온종일 뉴스며 sns 소식을 붙들고 살기를 이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날것으로 느껴지지 않아 계획도 대비도 없이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한강 바람이 굴곡진 빌딩숲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핵토파스칼 킥으로 날아 차는 여의도. 그 거리로 몇 날 며칠을 성실한 생도마냥 찾았다. 잠 못 이룰 밤이 지속되니 이러나저러나 몸이 상할 건데 못 갈 일이 무언가 싶었다.
경기살이 도합 2년. 그때만큼 고향 떠나 무작정 버스에 올랐던 과거를 축복으로 여긴 날이 없었다. 곧 이어진 크리스마스 연휴날 어머니 댁을 찾았다 맞이한 허구같은 세상사 요지경을 모니터 너머로 보고만 있으려니 더욱 그랬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농성과 기만 현장을 평면으로 지켜보며 경기도와 수도를 가로지르는 빨간 버스를 너무도 그리워했다.
'올라갈까.'
나는 백수라 언제까지고 현장에 눌러앉아 있을 수 있는데. 평일이 와서 머릿수가 줄고 큰일이 나면 어떡해.
하지만 그날. 누군가의 안전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던 나날에 이어진 그 하루가 변곡점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날, 남태령의 그날을 기억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그날을 함께 한 이라면 필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 이전과 이후를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불완전한 나의 최선을 도움이 필요한 너에게 내미는 선의가 있고, 연대가 보를 넘은 물처럼 흘러내려 가물은 곳을 찾아 고이는 형상.
거리에 나서 부당함과 억울함을 나누고, 당신의 취약성을 기꺼이 말하는 투쟁에 나 또한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너와 나의 약자성이 닮아 이를 공감하고 공감받는 것도, 너와 나의 약자성이 달라 기꺼이 서로를 보완하고 함께 도울 수 있다는 연대의 마음도.
막연하기만 하던 교차성과 연결감이 두 눈앞에서 만개하고, 타인의 삶은 온몸을 샅샅이 돌아 혼을 닮은 입김으로 빠져나간다. 언제나 그곳에 있던 작은 소리가 모두의 입에서 입으로 진폭하여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장소. 광장. 그곳에 섰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다.
다시 한번, 넓고 얕은 관계를 말하고 싶다.
정해진 시간에 잠시 만나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표표히 헤어지는 것 또한 미덕이라고. 반복되는 나날에 눈 맞추고 근황을 나누며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다, 가장 순수한 거짓을 입에 담는 것. 내 영역에 일정한 선을 긋고 그 안에 발 들이는 것을 완곡히 거절하고 감히 새로운 이를 초대하지 않는 것. 상대에게 제시한 만큼 나에게도 철저한 것. 당신이 그은 선을 명확히 가늠하고 절대 그곳을 침범하지 않겠다 맹세하는 것.
이 나라에서는 참 정 없고, 모나고, 융통성 없고, 서운하다 소리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삶의 방식이라고. 세상만사 평균치 인간에 맞춰 굴러가면 무엇이 재미있을까. 만난 당일 홀라당 모든 걸 까발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몇 년을 사귀고도 속 안에 감춘 말 한마디 안 하는 사람도 있는 게 사람 만나는 재미라 생각한다.
눈을 넓게 보자고. 세상엔 오랜 시간 한 공간을 함께 쓰며 살아도 사회적 가면을 쓰고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게 매너인 나라도 있는 법.
사회 기준이나 상대의 요구에 따라 준비되지 않은 나를 무작정 열어젖히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 넓고 얕은 관계를 아주 길~게 유지하는 삶에서 평안을 느끼는 내가 이곳에 있음을 말한다. 이런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 소소하게 다짐하는 나를 말한다.
그러다 취미가 맞고 취향이 닮아 함께 시간을 나누고픈 무언가가 떠오른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주변 분위기에 어물쩍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고, 이후 경험할 행복과 불행의 모호함과 불안을 기꺼이 나의 것으로 짊어질 확신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너를 숨 가쁘게 따라잡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나를 돌아본다면. 오랜 시간 닫아둔 입으로,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으로, 너의 옷깃을 잡은 떨리는 손으로 이렇게 말하리.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
<후기>
가슴 떨리던 우리의 24년 12월 3일을 기념하며.
시기가 절묘하게도.. 내란 직전 제가 다니던 익명 모임에서 글을 써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과제 외 글쓰기를 하는 게 몇 년 만인지. 그저 하릴없이 그날 있던 하루하루를 일기처럼 끄적이던 어느 날. 화요 모임을 해산하고 평소처럼 집에 온 그날. 계엄이 있었고, 그렇게 평화롭고 느긋하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싫었고, 이런 때에도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고 이어진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모른 척 고개를 돌리면 없었던 일인양 할 수 있는 세상이라 느껴져 무엇이든 하지 않고는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화면으로 소식을 아는 게 싫었습니다. 비극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응당 두 눈에 담고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태령이 있었고.
새벽 내내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길 바라며 영상을 바라보았고.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순간, 저 도로 한 뼘 공간이.
개인으로 존재하되 서로를 위해 함께하고,
그럼에도 익명이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저 공간이,
존재가 바라 마지않는 넓은 얕은 관계의 실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익명을 찾아 정착한 저의 모임도 그와 같은 성질이었지요. 그렇게 이 글을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맺음이라 하니 드는 의문은. 언제나 그렇듯.
내란이 청산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이 나라에.
기실 인간은 잊고 사는 존재인지라
살아남기 위해 잊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라
잊힌 기억, 저 편에 둔 것에 결국 적응하고 마는 존재인지라
한 주를 늘여 발악한 시도가,
십 년을 들여 구축한 시대가,
백 년을 건너 흩어진 이들이,
바래고 멀어지면
꿈꾸던 모습으로 올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꿈을 꾸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고
희망을 그리지 않으면 바라는 것을 말할 수 없으니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살고, 과거를 보고, 내일을 말해야 하겠지요.
군중 속 익명으로 존재할 때면.
이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구나.
많은 부분에서 다른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하나를 알아, 모든 차이마저 잠시 내려놓을 수 있구나.
감사하게 됩니다.
모니터로 본 세상이 정보에 머무는 이유.
이곳에 있어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연결감. 나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 나를 환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넓고 얕은 관계만이 줄 수 있는 뜨거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치유가 있습니다.
기억합시다
오늘의 내일을 만든 건
우연히 지나쳤던 누군가의 배려가 모인 하루였으니
나 또한 환대에 기반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존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