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스스로를 내향인이라 구분짓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집안에 있으면 좀이 쑤셔 어디든 나가고야 마는 성미였으니. 입 밖으로 나올 것을 검열하려 몇번이고 머릿속에서 공회전을 반복하느라 소진이 유달리 빠른 기질이겠거니―하며 유야무야 넘겨짚고 마는 것이다. 애초 스스로를 내향인으로 보느냐 외향인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논제가 아닐까. 누군가 말마따나 스펙트럼을 흑백으로 분절하는 것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상像은 나, 너, 우리가 서로 간섭하며 조각하기 마련인지라.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스스로 돌아봄 없이, 믿음을 주고 따르던 이가 무심결에 던진 결정문을 끌어들여 나로 삼았다. '너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지'. 내 지난 삶보다 그의 한 마디를 믿었다. 현명한 어른의 말을 예언처럼 받들던 어린시절이었다. 그렇게 튀어나가려는 말을 붙잡고,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많은 도전을 포기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살아남은 기억은 죄 바스라진 것들뿐이다. 내가 실제 만나고, 만지며, 눈에 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인지. 영화나 광고의 한 장면을 너덜너덜한 기억에 직소퍼즐처럼 기워넣은 것은 아닌지. 믿을 수도 없고 검증할 방법도 없으니 방치하며 잊히길 기다린다. 간간이 이어지는 자리를 성성한 뜰채로 건져내가며.
-
그 시절 내가 그녀의 글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이 책을 넘겨주며, '자, 봐라! 이것이 진정한 내향인이다!'하고 말했더라면.
새로운 관계를 깊이 하려 맘을 굳히고 나서보아도 신체가 거부해 병이 나고야 마는 사람. 침구 깊숙이 몸을 뉘이고 불안 한 뼘 벗어던진 해방감에 으슥한 평화를 만끽하는 사람. 곁을 허락한 타인이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주면 조용히 소유욕을 불사지르는 사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애증하는, 나와 똑 닮은 그대를 해할 수 없어 자신을 끝없이 해치는 사람, 그대가 떠난 이후에서야 당신이 죽기 전까지 나를 죽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황망히 고백하는 사람.
'봐라! 진정한 내향인은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감히 내향인을 조용하고 말없는 것으로 단순화하지 말라며, 범주 짓고 폄하하지 말라며 화를 내려나. 죄다 흰소리라며 가장 내밀한 세계에서 홀로 비릿한 웃음을 지으려나.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는 너무 깊었던지도 모르겠다.
'내향인'이라는 단어는 그녀를 제시하기에 너무 단출해졌다. 그녀는 보편적이고, 지나치게 특별하다. 상상해보라. 소용돌이치는 한 세계를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힘을 티끌만큼 뽑아 써도 방전되는 이들을 단순히 '에너지가 안으로 향한다' 묶어 표현할 수 있을까. 조용한 비명은 외침이 될 수 없는가. 발산 방향은 보편적 외향인과 내향인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으로 침잠하는 본능을 선두로 말하기에 그녀는 참 '젊은 글'을 썼기에. 불편한 세상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붉은 깃발 나부끼는 너무나도 젊은 글을 썼기에.
책 말머리. 고인이 된 저자를 대신해 독자에게 첫인사를 건내는 역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이 옳다. 우리는 그녀의 40대, 50대... 그 이후의 기록이 필요하다. 예민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피로하며, 순수하고 다정하고 욕망하고 분노하는. 우리 모두를 한 뼘씩 닮은. 불꽃처럼 뜨겁고 찬란했던. 마흔둘 너머까지 생을 이어갔을 그녀의 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