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처음 보는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다.
이렇게 큰 병원은 처음이라
ㅇㅅ 병원 진료 예약한 날. 연차를 써서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야속하게도 날씨가 참 좋았다. 이사한 집에서 도보로 30분이면 갈 수 있을 거리였지만 오전 진료였고 진료 시간 훨씬 전에 병원에 도착해야 하는지라 택시를 탔다. 그리고 병원에 근접했을 즈음 택시탄 것을 후회했다.
대형 병원이 외래로 얼마나 붐비고 막히는지를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겨우 입성해 건물에 들어선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을 가졌지만 그 공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 온갖 소리가 뒤섞여 들렸고 멘탈이 흔들렸다. 정말 혼이 쏙 빠질것만 같았다. 겨우 접수를 하고 내 진료 기록 씨디를 복사하고 등록하고,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왜 빨리 오라는지 알 것 같았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내 번호가 뜨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접수가 되었고 신경외과로 이동을 했지만 그 안에서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특히 많았는데 그 사이에 있으려니 웬지 머쓱했다. 누가 봐도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인데 쟤는 어디가 아파서 왔을꼬 - 뭐 그런 눈빛이 느껴졌달까. ㅇㅅ병원의 신경외과 대기실은 정말 정신없었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진료실과 진료실마다 앞에 놓인 의자가 있었고, 환자의 이름이 불리면 일어선 그 자리로 이동해서 또 대기, 무한 대기.
드디어 교수님을 만났다. 첫 인상은 생각보다 젊다는 것. 그런데 시니컬하고 차갑기 그지 없었고 말투마저 너무 퉁명스러웠다. 신경외과 교수들이 대체로 너무 중요한 머리를 다루다보니 차갑다는 소리가 있던데..이건 차가운게 아니라 퉁명스러움과 귀찮음에 가까웠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는걸 봐서일까, 중증 환자들만 많이 보다 보니 나같은 사람이 이름도 생소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단 생각으로 겁에질려 처음 자기를 만나러 온게 그냥 일상이라는건가. 내 MRA를 보자마자 확신에 찬 말투로
"엠알에이 상으로 상당히 모야모야일 확률이 높네요.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진료 날짜까지 겨우 다잡고 있던 멘탈이 바사삭 무너졌다. 너무 놀라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근데 저는 모야모야 증상도 없고 이렇게 멀쩡한데도 그럴수가 있나요? 저는 어릴때도 아무 증상이 없었어요."
내 말을 듣더니 건강검진 때 선생님이 물은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나열했다. 뜨거운걸 후 불다가, 엄마한테 혼나서 울다가 힘이 풀려 주저 앉은적 없냐 등등. 그래도 MRA 상으론 거의 확실하다며 나가서 간호사와 검사일을 잡으란다. 간호사가 가장 가까운 날짜를 알려주는데 심지어 1인실 밖에 안되는 날이란다. 우선은 잡아두고 그 날 빠지는 환자가 있으면 다른 병실로 갈수도 있다고 했다. 너무 울어서 마스크가 축축했다. 눈물을 닦으려고 마스크를 코밑으로 내렸다. 빠르게 간호사가 주의를 줬다. "환자분 대기실에서 마스크 내리시면 안돼요." 슬퍼 죽겠는데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게 한다.
아직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희귀병은 의사들도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주치의가 중요하다고 한다. 병원 가기 전에 읽은 그 글이 생각나서 ㅇㅅ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본격적으로 내가 걸렸을지도 모르는 그 병에 대해 검색하고 알아봤다. 모야모야 쪽으로 정평이 나있는 명의는 누가 있는지, 어느 병원을 가야할지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야모야 환우들이 가입하는 다음 카페까지 가입했다. 불특정 다수가 접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와 다르게 실제 병을 가진 사람들과 그 가족들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다. 이 병의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 딸이 모야모야를 진단 받고 아버지가 정보를 나누기 위해 만든 카페라고 한다. 여러 병원의 후기들을 살펴보고 나는 ㅅㅂㄹㅅ의 ㄱㄷㅅ교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했고 바로 ㅅㅂㄹㅅ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에게 건강검진으로 내가 이 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단걸 알게됐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고 말하니 빨리 진료를 보셔야 겠다며 ㄱㄷㅅ 교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로 잡아주었다. 모야모야를 전문적으로 보시는데 특히 소아 모야모야에서 유명하셨다. 성인 모야모야와 아동 모야모야 둘 다 보시는 분인데, 나는 교수님이 아동 모야모야 보는 날로 외래를 잡아줬다. 곧바로 ㅇㅅ에 전화해 검사를 취소했다. 다시는 ㅇㅅ병원 신경외과에 가고싶지 않을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