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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Oct 25. 2018

결국은, 사랑이 필요하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시간이 긴 세상. 나 같이 때가 탈 데로 타버려 이제 행복이란 아예 가망도 없어 보이는 불행한 어른들에게 그래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아이들의 미소를 언제든 느낄 수 있는 세상. 아마도 행복한 세상은 그런 곳이리라 어렴풋이 상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레딧과 함께 폴란드 어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적어 내려 간 아이들의 편지와 사진, 그리고 찰나와 같은 짧은 삶 속에서 설렘보단 고통을 더 많이 느낀 채 이국 폴란드의 어느 마을 묘지에 묻혔을 '김귀덕' 어린이의 묘비를 보면서.


 

 난 아이들을 참 좋아한다. 어느샌가 내겐 당연하고,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아이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크게 뜨고는 이리저리 들여다본다. 지극히 사소한 것들을 보고도 즐거워하고, 놀라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게도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지고,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차오름을 느낀다. 


 시사회를 보기 전, 간단히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의 명령으로 비밀리에 폴란드로 옮겨져 자란 1500명의 전쟁고아들과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 준 폴란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근현대사를 공부했는데도 한국사 속에서 해외 강제이주의 역사라면 까레이스키 정도밖에 모르고 있었던 나로서는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왠지 모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밟았을 차디찬 이방인들의 땅. 영화를 보기 전부터 벌써 눈시울이 붉어졌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우 추상미 씨는 우연히 폴란드 작가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쓴 폴란드에서 자란 한국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르포 소설 '천사의 날개'를 통해 폴란드로 간 1500명의 전쟁고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 씨와 탈북 소녀 이송 양이 직접 폴란드를 방문해 실제 한국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워 준 폴란드의 프와코비체 양육원 선생님들을 만나고, 영화 촬영 장소를 헌팅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하나의 일지와 같다. 


 한국 전쟁 당시 군인과 민간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며 급격히 늘어난 부모 잃은 아이들. 김일성은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인 러시아나 폴란드와 같은 나라에 이 아이들을 양육해 줄 것을 부탁한다. 겨우 예닐곱 정도 된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기차를 타고 러시아와 동유럽 등지의 사회주의 국가들로 먼 길을 떠났다. 그중 1,500명의 아이들이 폴란드로 도착했고, 프와코비체 양육원으로 보내졌다. 



  한국 고아들을 키웠던 프와코비체 양육원의 폴란드 선생님들은 그때를 회고하며 두려움에 떨던 그 아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기와집도 초가집도 아닌 처음 보는 건물들과, 푸른 눈과 새하얀 피부를 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 어린아이들에게 그 사람들은 '외계인'처럼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폴란드에 처음 와서 아이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침대를 두고도 침대 밑에서 잠을 청했다. 폭탄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이 당연하고, 내 눈 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멀쩡한 사람들의 팔다리가 날아다니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처음엔 누가 누군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던 검은 머리의 작고 왜소한 동양에서 온 아이들을 양육원의 선생님들은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다. 부모를 잃고 세상에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었던 아이들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리라. 반 세기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생님들은 자신이 돌본 한국 아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며, 아이들끼리 한국말로 서로 주고받던 '빨리빨리', '아이고'란 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나치 독일의 지배 하에서 지독한 유대인 말살을 경험한 폴란드 사람들은, 칸트의 정언 명령이 말하듯 전쟁의 포화를 겪고 온 그 불쌍한 아이들을 단순한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적'으로 대했다. 양육원의 선생님들은 차가운 '이성'이 아닌 아이들의 '감정'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려고 했고, 그런 푸른 눈의 이방인들을 아이들은 엄마라고, 아빠라고 불렀다. 영화에서 나오는 '상처의 연대'라는 말처럼, 그들은 상처로써 상처를 품어주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폴란드 선생님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건 수많은 한반도의 전쟁고아들을 타지로 보낸 김일성과 북한 정부이다. 그들은 아이들과 함께 북한 당국 사람을 폴란드로 보내 이 전쟁고아들을 장차 '엘리트 부대'로 양성하기 위해 강도 높은 사상 교육을 시켰다. 영화엔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에 방문한 김일성을 만난 폴란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 말은 아주 섬뜩했다.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말썽을 피운다면 곧바로 북한으로 데려갈 것이니, 선생님은 언제든 말만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폴란드 선생님들과 함께일 때 아이들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재잘재잘 서로 웃고 떠들지만,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 있을 때의 아이들은 군대처럼 제식 훈련을 받는다.  



  '이데올로기'라는 당시 세계 정세의 거대한 폭풍에 휘말린 우리 민족은 한국 전쟁을 통해 서로를 죽이고, 또 죽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야 할 나이에 전쟁고아들은 태어난 지 겨우 5~6년도 안 되어 부모를 잃거나, 부모의 죽음을 경험했다. 국가는 그런 아이들을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만 대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국가가 하라는 대로 기차에 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 포화로 인해 잿더미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북한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폴란드에 도착한 지 8년 만에 1,500명의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시 북한으로 끌려갔다. 국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아이들을 버리듯 남에게 떠맡겼고, 다시 찾았다. 그 과정에서 전쟁고아들에게 부모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 준 것은 한국 사람들이 그리도 중요히 여기는 같은 머리색과 외모를 가지고 같은 말을 하는 이른바 '같은 민족'이 아닌, 다른 외모를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이방인'이었다. 


 우리 남한 사람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전쟁 중 생긴 고아들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있었다.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까지 진격했던 북한군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고아를 폴란드와 러시아 등지로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해외로 보내진 고아들은 북한 지역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남한의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고아들에 대한 책임은 북한뿐만 아니라, 이 한반도에서 차가운 이성에서 발현한 알량한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대를 걸쳐가며 반백년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들 모두가 져야 했다. 



 하루아침에 북한으로 끌려간 아이들은, 집이 그리워 폴란드의 선생님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썼고, 선생님들은 그 소중한 편지를 지금까지 고이 보관하고 있었다. 계속 폴란드로 오기를 원해 선생님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낸 어느 아이의 이야기는 보는 관객들 모두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당국에서 편지를 감시할 것을 걱정한 선생님은 아이가 위험할까 봐 눈물을 머금고 아이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흔이 넘은 그 폴란드 선생님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듯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그 아이들에게 폴란드는 '고향'이었다. 처음엔 능수능란하게 폴란드 어로 편지를 써 보낸 아이들을 보며 역시 한국인들이 똑똑하단 생각을 한 내가 순간 창피해졌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모든 것을 흡수한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흡수'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교육의 차원을 뛰어넘는 하나의 행위일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한 필요에 의해 말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간 것이다. 우리에게 모국어는 배운 것이 아닌, 그저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것인 것처럼. 그 아이들에게 프와코비체는 집이었고,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버지요, 어머니였으니까. 백발이 성한 노인이 된 폴란드 선생님은 인터뷰를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보는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불쌍한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마음을 다해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정들게 해 놓고 마음대로 빼앗아 가버려 죄송한다는 말 조차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진실로 필요한 건 이념도 사상도 이전에 이 지구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아니, 하나의 '생명'으로써 그 무엇보다 마땅히 느끼고 가져야 할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추상미 씨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탈북 소년 소녀들을 대상으로 배역 오디션을 본다. 꿈을 찾아 북한에서 탈출한 그 아이들은 북한에서 살면서, 탈북을 행하는 과정에서 저 전쟁고아들이 겪은 비극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받았다. 북한의 위정자들은 그런 상처를 미국의 압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주체 사상 아래 똘똘 뭉쳐 국가 체제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쯤으로 생각할 테다. 추상미와 함께 폴란드를 답사한 탈북 소녀 이송 양은 탈북 과정을 묻는 추상미의 질문에 선뜻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거부한다. 탈북 당시의 트라우마로 수전증을 갖게 된 어느 소년이 인터뷰에서 총살당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덤덤히 하는 모습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저 이야기를 저렇게 담담하게 하게 되기까지, 소년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저 아이들이 지독한 감시와 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착한 이 곳 남한은 다를까. 과연 이 곳은 천국일까. 난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에 남한 땅에서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소득'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가족을 만들어 살기 위해 필요한 그 충분한 소득은 까마득히 높다. 그래서 어느 부모는 나아지지 않는 생활에 대한 분노를 애먼 아이에게 표출하여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작고 연약한 생명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 비극을 사전에 막기 위해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사람도 많다. 이 '헬조선'에서 살아가게 될 내 미래의 자식이 안타까워서. 고아를 만들어 내던 세상보다는 아예 그런 아이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면 어쩌면 그건 더 큰 비극이 될 수 있다. '돈'도 결국은 '자본주의'라는 말로 치환이 가능한 하나의 이념이요, 사상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전쟁고아를 만들어 내던, 그 순수한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던 그 비극적인 시기에서 한 뼘도 변화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공산주의라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희생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은, 눈 앞에서 폭탄이 터져 사람이 죽어나가게 당연하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흔히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들 말한다. 그리고 가끔 궁금해진다. 인류에게 현대 문명의 시작을 알린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어떤 목적으로 탄생한 것일까.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 시장 경제'를 말한 것도,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창시한 것도 결국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매몰된 나머지,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사랑'이라는 행복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며 놀랐던 것은 흑백 화면 속 기차에서 처음 내려서는 아이들의 눈빛이었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던 고향 땅에서 부모를 잃는 끔찍한 경험을 한 아이들의 눈에는 분명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더 내 눈에 띈 것은 새로운 세상을 대할 때 아이들이 보이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기만 해도 내게 건강한 기운을 북돋워 주는 그 어린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 아이들의 눈은 머나먼 타지에서도 밝게 빛났다.  


 어쩌면 아이들의 그 밝게 빛나는 눈빛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 걸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티 없이 해맑고 순수한 눈망울은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에 관계없이 맑게 빛난다. 부유함이나 가난함 같은 우리가 삶의 행복을 판단하는 삶의 기준은 아이들에게 전혀 중요치 않다. 아이들의 눈에는 지금 막 그들 앞에 주어진 세상에 대한 설렘으로 충만하다.  그 눈빛과 대비되는 총성과 포화, 그리고 잿더미를 뒤집어쓴 모습에서 나온 슬픔은, 나와 같은 어른들의 몫이었다. 



 언젠가 저 전쟁고아들도, 지금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아이들도 삶이 주는 수많은 굴곡들 속에서 때가 타고, 자신의 삶을 비관하기도 하며 점점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살다 보면 행복할 때보다는 불행함을 느끼고, 좌절과 고통을 느끼는 날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될 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어떤 어른도 그 관문을 피해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난 모든 사람이 그 고통스러운 관문을 피해갈 수 없다면, 불행을 알아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면, 어쩌면 행복한 세상이란 '아이들이 행복한 웃음을 잃지 않는 세상'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반 세기 전 이념의 충돌로 인해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은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눈물 흘리게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체제 유지 때문에, 돈 때문에 아이들은 삶이 주는 고통을 너무 일찍 깨우친다. 



 조금이나마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시간이 긴 세상. 나 같이 때가 탈 데로 타버려 이제 행복이란 아예 가망도 없어 보이는 불행한 어른들에게 그래도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아이들의 미소를 언제든 느낄 수 있는 세상. 아마도 행복한 세상은 그런 곳이리라 어렴풋이 상상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크레딧과 함께 폴란드 어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적어 내려 간 아이들의 편지와 사진, 그리고 찰나와 같은 짧은 삶 속에서 설렘보단 고통을 더 많이 느낀 채 이국 폴란드의 어느 마을 묘지에 묻혔을 '김귀덕' 어린이의 묘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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