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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Oct 09. 2018

별을 빛나게 하는 건

영화 <A star is born>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뒷부분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뒷부분에 표시).


 찬란한 밤하늘 위에 별은 한 개가 아니다. 수 만개, 수 억 개의 별이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빛깔로 밤하늘을 수놓기에 밤하늘은 찬란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The star is born'이 아닌, 'A star is born'인 이유는 바로 그것일 테다. 이 영화가 말하는 별은 특출 나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아닌, 누구나 저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팝스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는 것이라던 잭의 말은 결국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지 않아야 스러지지 않고 밝게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영화의 깊이는, The와 A가 내게 보여준 큰 차이만큼이나 깊었다.



 기타를 들고 있는 브래들리 쿠퍼와 그와 이마를 맞대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레이디 가가. 그리고 영화의 제목 <스타 이즈 본>. 연기의 내공이나 스타일로 볼 때, 장차 할리우드의 '최민식'과 같은 배우가 될 것이라, 아니 어쩌면 이미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브래들리 쿠퍼가 메가폰을 잡고 주연까지 맡았으며, 그 상대 여배우는 레이디 가가라니. 포스터를 보기도 전에 그 소식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설레었다.  한편으로는 포스터를 보자마자 조금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뻔한 음악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하는 영화는 아닐까. 수염을 덥수룩히 기르고 기타를 치는 브래들리 쿠퍼와 화장기 없는 청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레이디 가가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영화 <비긴 어게인>의 마크 러팔로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실력은 있지만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부족한 자신감 때문에 세상 앞에 나서지 못하는 레이디 가가를 돕는 브래들리 쿠퍼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저 그게 끝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상영관에 들어갔다.


 영화의 스토리를 조금 거칠게 말하면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상상한 이 영화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뉴욕의 어느 드래그 바에서 노래를 하는 '앨리'(레이디 가가). 근처에서 공연 후 술을 마시기 위해 우연히 그 바에 들른 당대의 톱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은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되고, 그녀와 가까워진다. 자상하게 그녀를 챙기는 잭의 모습에 앨리는 빠져들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작곡을 직접 하지는 않느냐는 잭의 질문에, 작곡을 하지만 자기 노래를 절대 무대에서 부르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앨리. 하지만 그녀의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가창력과 잠재력을 알아본 잭은 앨리를 자신의 투어에 데려가게 되고, 잭의 도움으로 앨리는 점차 인기를 얻게 되고, 스타가 되어간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그저 그런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보인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잠재성을 알아봐 준 멘토이자, 사랑의 파트너를 만나는 뻔한 성공 스토리.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는 어느 연예인의 말처럼 운 좋게 명성과 부를 얻는 스토리. 영화의 제목처럼 '스타가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운인 것일까.



 하지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그렇게 쉽게 한 가지 스타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다양한 결을 지니고 있다. 계속해서 영화의 제목에 기대어 이 영화를 살펴보면, 이 영화는 스타란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태어남'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영화를 들여다볼 때, 잭은 앨리를 스타로 '태어나도록' 해 준 산파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산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죽어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마찬가지다. 마음과 정신은 몸보다 그 주기가 조금 더 빠르다. 일생을 살며 우리는 절대 한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돌과 같은 무생물이 아닌 생물이기에. 살아오며 여러 가지 희로애락을 겪으며 우리의 가치관이나 생각은 매일매일 변화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마음과 정신이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정신은 몸이 죽는 날까지 죽음과 탄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잭은 알고 있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되기 위해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야기가 무대에서 스타가 '태어나기' 위한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훌륭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부르기를 꺼려하는 앨리에게 잭은 말한다. 세상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거라고. 스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네가 부르는 노래 안에, 너의 목소리 안에는 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음악이란 옥타브 내에서 12개의 음을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잭은 그 간단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앨리에게 알려주었고, 앨리는 잭의 투어 무대 위에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사람들 앞에 선보이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 '스타'로서의 첫 발걸음을, 세상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녀는 무대에서 말 그대로 '태어났다'. 그녀를 그저 호텔 직원으로 묶어두던 예전의 가치관이 '죽음'을 맞고, 스타로서 '탄생'을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한 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큰 차이는, 잭과 앨리를 연결하는 '산파-태아'로서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잭은 수렁 속에서 앨리를 건져낸 단순한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었다.

 스타로서 '갓 태어난' 앨리는 잭의 사랑과 사람들의 관심 아래 무럭무럭 성장해 가지만, 이미 한 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경험한 잭은 죽어가는 별이었다. 잭을 스타로 만들어 준 그의 이야기는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여읜 어머니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그리고 배다른 형 바비. 잭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63살이었으며, 배다른 형인 바비는 아버지라고 해야 믿을 만큼 잭과 나이차가 많이 났다.


 

 잭은 앨리라는 스타의 탄생을 도운 산파였지만, 정작 잭은 그 스스로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지 못했다. 잭의 불우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잭은 대중들의 스타로 태어났지만, 그는 그 안에 갇혀 있었다. 잭이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를 마약과 술에 찌들게 했다. 그리고 결국 매니저로서 자신을 돕는 형 바비에게 상처를 입히기까지 한다. 그리고 형 바비는 이제 너 같은 놈에게는 신물이 난다며 잭을 떠난다. 가수로서 품고 있던 자신만의 꿈을 포기하면서까지 잭을 도운 형 바비는 아마도, 잭이 스타가 될 수 있도록 그를 이끌어준 잭의 '산파'였을 것이다. 이는 잭이 점점 스러져가는 별이 되는 발단이 된다.

 

  마약과 술로 인해 점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되는 잭과 달리,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해나가는 앨리.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앨리는 그녀 답지 않은 것들로 스스로를 치장한다. 어울리지 않는 옷과 머리 색, 그리고 춤까지 추는 앨리를 보며 잭은 실망하게 되고 둘의 갈등은 점차 커진다. 잭은 분명 앨리를 위해, 그녀가 자신만의 색깔을 잃게 된다면 그녀도 그 순간 스러져버릴 것이라는 걸 알기에 한 말인데 오히려 그 말이 발단이 되어 둘은 크게 싸운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앨리와 싸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술과 마약의 수렁에 빠져 점차 빛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은 더 이상 앨리의 산파이자 멘토도, 빛나는 별도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느꼈을 것이다. 스스로 꿈을 포기하고 기꺼이 잭이 별로 빛날 수 있도록 자신의 빛을 포기한 그의 산파, 형 '바비'의 소중함을. 형의 차를 타고 재활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잭은, 차에서 내리며 어렵게 어렵게 한 마디를 뱉어낸다. 난 사실 형을 닮고 싶었다고. 그리고 멋쩍게 문을 닫는 잭. 무뚝뚝하게 아무 말도 않고 후진해 차를 빼는 바비의 눈시울은 촉촉이 젖어있다. 그저 형이 원했던 것은 형을 닮고 싶었다는, 그렇게 고맙다는 그 한 마디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보는 나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이후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스러져버릴 위기에 처한 잭에게, 앨리는 그의 산파가 되기를 자처한다. 자신의 투어에 잭을 데려가며 잭의 재기를 도우려고 하지만, 이제는 잭이 오히려 앨리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앨리의 매니저 레즈는 이를 반대한다. 앨리는 잭과 함께 할 수 없다면 투어를 취소하겠다며 맞선다.

 앨리는 그녀의 첫 싱글 앨범 마지막 무대에서 함께 무대에 서자고 잭에게 제안하고, 잭도 이제 악순환을 끊고 재활원에서 중독 치료까지 받으며 그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기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앨리의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오른 자신의 차 안에 우연히 남아 있던 마약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잭은 그 죄책감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그가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려던 앨리의 손을 그는 잡지 못했다. 영화 초반 앨리의 방에 걸려 있던 재니스 조플린의 앨범 자켓을 보며 음악을 통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요절한 그녀의 사진이 걸린 방은 혹시나 앨리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인가 했지만, 그 운명의 주인은 앨리가 아닌 잭이었다.


 사실 처음엔 죽음을 택한 잭의 선택이 매우 의아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앨리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텐데도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에 잭이 떠난 후 그의 추모 공연에서 보여주는 앨리의 마지막 무대는 그것이 절대 극단적인 것이 아님을, 오히려 앨리를 향한 잭의 크나큰 사랑을 뜻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잭도 잭이지만, 앨리에게도 어쩌면 그 순간은 위기의 순간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매니저와 기획사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이 되었다면 앨리도 결국 잭처럼 스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염한 옷을 입고 춤을 추던 앨리는, 잭의 추모 공연에서는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처음 그녀의 모습처럼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잭과 함께 한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통해 대중과 마주한다.  

 거기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잭은 살아서 앨리의 짐이 되는 것 대신, 죽음을 통해 앨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빛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라는 걸. 수명을 다한 별이 다시 먼지와 가스가 되어 새로운 별과 행성계를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는 것처럼. 앨리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 것 대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끝까지 앨리의 산파로 남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에 생각이 가닿자 그의 희생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내 마음도 애달파졌다.


 그런 점에서 앨리가 추모 공연에서 부르는 노래 'I'll never love again'은 묘하게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잭이 그녀를 위해 작곡한 사랑 노래인데, 잭에게는 더 이상 앨리 외에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앨리에게는 당신 같은 이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당신이 떠난 후의 내가 너무 힘들고 아파서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내포한다. 그 노래가 갖는 중의성은 잭과 앨리를 한층 더 단단하게 묶어준다. 잭은 죽지 않고 앨리와 함께 더 빛나게 된 것일 테다.



 걱정한 것처럼 단순한 러브스토리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었기에, 약에 절어 바지에 오줌을 싸고 이리저리 비틀대면서도 음악적 고뇌를 품은 강렬한 눈빛을 잃지 않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와 그에 뒤지지 않는 연기력과 엄청난 가창력을 보여준 레이디 가가 덕분에 135분이 지루하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의 영문 원제목을 보며 난 한 가지 궁금증을 품었었다. 이 영화의 원제목은 'A star is born'이다. 난 Star 앞에 관사 'A'를 붙인 것에 주목했다. 나는 당연하게 이 영화의 제목이 'The star is born'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스타라고 한다면, 그 빛나는 고유함 때문에 부정관사 'a'보다는 정관사 'the'를 붙이는 게 더 맞을 것 같은데. 'a'를 붙이게 되면 왠지 모르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들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들어 스타가 주는, 그 스타만의 고유한 '느낌'이 반감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영화를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The star가 아닌 a star. 수많은 별들 중 하나. 이 영화가 말하는 '스타'는 자신이 얻은 인기에 취해, 부귀영화에 취해서 살아가는, 그런 '스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잭의 가치관을 통해 말하자면 그런 '스타'는 오래가지 못한다. 스타는 스스로 자신이 스타인 줄 아는 순간 소멸하는 법이다.


 

 그것은 비단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해내야만 하는 가수나 예술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찬란한 밤하늘 위에 별은 한 개가 아니다. 수 만개, 수 억 개의 별이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빛깔로 밤하늘을 수놓기에 밤하늘은 찬란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The star is born'이 아닌, 'A star is born'인 이유는 바로 그것일 테다. 이 영화가 말하는 별은 특출 나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아닌, 누구나 저들만의 이야기를 품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팝스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는 것이라던 잭의 말은 결국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더라도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지 않아야 스러지지 않고 밝게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이 영화의 깊이는, The와 A가 내게 보여준 큰 차이만큼이나 깊었다.


 처음 기획사의 제안을 받고 기뻐하는 앨리의 얼굴에 잭은 빵에 발라진 크림을 짓이겨 바른다. 일순간 싸해진 분위기. 질투하는 거냐고 묻던 앨리에게 그런가 보다며 얼버무리듯 대답하는 잭.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정말 질투였을까.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본 순간 내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가 끝나고 환한 조명을 받아 그 무엇보다 하얗게 빛나는 앨리의 얼굴을 보며. 마치 크림을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 허옇게 된 아까의 앨리처럼. 그것은 결국 스타가 그 빛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방법, 인기를 얻어 휘황찬란하게 빛나더라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잭의 사랑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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