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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Sep 13. 2018

땅 좀 아는 놈들의 피튀기는 부동산 전쟁

영화 <명당>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영원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땅 자체는 아무런 생각도,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서 판단도 하지 않는다. 그 땅에 스스로의 길흉화복을 내맡기며,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인간'이 있기에 땅의 영속성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주요한 부와 명예의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과거 성리학의 시대에는 '명당'이 가문의 명예와 번영을 안겨주었다면,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에 '명당'은 땅을 가진 자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땅만 가지고도 앉아서 떼돈을 버는 이들과, 집 한채가 없어서 거리에 나앉는 이들. 땅 한 평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명당'이 보여준 과거와는 그 모양이 많이 달라졌지만, 인간의 도가 지나친 '탐욕'이라는 명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언제부터인가 사극 영화는 우리 모두가 국사 시간에 익히 배워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을, 색다른 소재를 가지고 새롭게 재해석한 이야기가 하나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멀리 본다면 '광대'라는 소재를 가지고 '중종 반정'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부터 가까이는 주피터필름이 내놓은 역학 3부작 중 하나인 한재림 감독의 '관상'까지. '관상'은 제목 그대로 관상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을 다뤘다.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영화라 할 수 있는 영화 '명당'도 그런 공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영화 '명당'은 왕실의 외척인 장동 김씨 가문의 횡포로 세도 정치의 폐단이 극에 달한 시대, 무너진 왕실의 권위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흥선군(지성)과 장동 김씨 가문의 대립을 다뤘다. 제목이 보여주듯, 이 영화는 '땅'을 실제 역사적 사건을 꿰뚫는 소재로 사용한다. 영화 '명당'은 이전에 '관상'에서 나왔던 천재 관상가 '김내경'처럼, 땅이 내뿜는 기운을 읽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지관'인 박재상(조승우)이 등장한다. 박재상은 궁에서 일하는 지관이었는데, 효명세자의 묘자리를 소점하는 과정에서 흉당을 명당으로 속여 효명세자를 안장하려는 김좌근(백윤식)에 맞서 순조에게 명당 자리를 직언했다가 김좌근의 미움을 사게 되고, 집과 가족을 잃는다. 박재상은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땅을 무기로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장동 김씨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흥선군을 돕는다.



 영화 '명당'에서 장동 김씨 일가가 왕실의 권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권세를 누리게 된 이유 역시 '땅'이다. 장동 김씨 일파인 김좌근과 김병기(김성균)은 조선 땅의 명당이라는 곳은 전부 사들이고 빼앗아 조상들의 묘자리로 썼다. 심지어는 선대 왕들만이 묻힐 수 있는 자리에 몰래 자기 조상들의 시신을 암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당대 최고의 지관 중 하나인 정만인(박충선)이 김좌근에게 2대에 걸쳐 왕이 나온다고 알려진 천하의 명당 자리에 대해 제안하게 되고, 영화는 그 '천하의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흥선군과 장동 김씨 일가는 치열한 '부동산 전쟁'을 벌인다.

  

 영화 '명당'을 보면  등장하는 각각의 세력과 인물들이 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다르다. 장동 김씨 일가에게 '땅'은 자신들에게 부와 명예, 권세를 가져다 준 원천이다. 그들은 땅을 지극히 '운명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조상님의 묘자리를 좋은 자리에 썼기에, 말하자면 좋은 터를 잡았기에 가문의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운명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사로잡힌 이들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욕망'의 노예가 된다. 그들은 더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멀쩡한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땅을 모은다. 그들이 찾는 땅이 다름 아닌, 조상의 시신을 안장할 묘자리라는 사실도 그런 사실을 반증한다. 집안을 대대손손 번영하게 하려는 그들의 표면적 목적의 기저에는, 자손들의 칭송을 받으며 땅처럼 영원한 명예를 얻으려는 그들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박재상은 땅을 사람이 살아갈 '터전'으로서 바라본다. 박재상은 극중에서 유동 인구를 잃은 장터의 상권을 살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가난한 상인들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애초에 이 땅은 사람이 다니고 싶지 않은, 흉한 땅이라고 말하지만 점포의 배치를 바꾸고, 나무를 심고 길을 다시 닦도록 한다. 또한 공부를 게을리 하는 자식을 둔 어머니에게도 집터를 옮기라는 말 대신, 방의 배치를 바꾸는 법에 대해 귀띔해주기도 한다. 그가 땅을 보는 관점에 따르자면 사람이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땅이 좋은 땅이 될 수도 있고 나쁜 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터에 자리를 잡았기에 그 사람이 잘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리 잡은 땅을 좋은 터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흥선군은 그 사이에서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처음엔 박재상과 타락한 장동 김씨 일가를 처단하고 왕실의 권위를 일으켜세우려는 뜻을 함께했지만, 결국은 그도 2대의 왕을 배출할 수 있다는 '천하의 명당' 앞에서 세도가의 권세 아래 숨겨왔던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이미 역사에 익히 알려졌듯 흥선군은 그 '천하의 명당'에 결국 장동 김씨 일가들처럼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안장하고, 자신의 아들 명복을 26대 왕으로 세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흥선군이 순종까지 딱 2대의 왕을 배출한 것을 끝으로, 조선은 1910년 경술국치를 거쳐 망하고 만다. (여담이지만, 근현대사 시간에 배운 것을 돌이켜보면 흥선대원군이 그래서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했을 때 그렇게 노발대발 했던 것일까 싶다. 이렇게 힘들게 차지한 땅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사람은 '땅'을 가진 사람이다. 괜히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겠는가. 극중에서 정만인은 박재상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죽어도 땅은 영원하다고.

 그래서 옛사람들은 죽은 이를 '명당'에 묻으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는 지극히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땅'이 아니다. 과거 사람들이 좋은 묘자리에 조상을 묻으며 죽은 이의 안녕을 기원한 것은, 결코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조상들이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는 안심은, 결국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안함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한 행위였을 테다. 결국 누군가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땅'이 아니라, 그 땅 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땅'에 그릇된 욕망을 품은 장동 김씨 일가와 같은 이들은, 결국 스스로의 운명까지 그 땅에 내맡기고 말았다. 일이 잘 풀리면 터가 좋아서, 일이 잘 안풀리면 터가 좋지 않아서라는 말을 아직도 하고 사는 지금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멀쩡한 땅에 농사짓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다. 죽은 이를 묻기 위해 산 사람을 내쫓는 것은, 아까도 말했 듯 죽은 이를 위한 것도, 가문을 위한 것도 아니라 산 사람의 탐욕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까 말한 땅이 영원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땅 자체는 아무런 생각도,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서 판단도 하지 않는다. 그 땅에 스스로의 길흉화복을 내맡기며,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인간'이 있기에 땅의 영속성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주요한 부와 명예의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는다. 과거 성리학의 시대에는 '명당'이 가문의 명예와 번영을 안겨주었다면,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에 '명당'은 땅을 가진 자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준다. 땅만 가지고도 앉아서 떼돈을 버는 이들과, 집 한채가 없어서 거리에 나앉는 이들. 땅 한 평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명당'이 보여준 과거와는 그 모양이 많이 달라졌지만, 인간의 도가 지나친 '탐욕'이라는 명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대부분의 사극 영화들의 묘미가 그렇지만, 영화 '명당'은 책으로만 읽었던 이야기들을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재미와 그 당시 사람들의 면면을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재미를 충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배우 지성은 하늘을 찌를듯한 안동 김씨들의 권위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망나니인 척을 해야 했던 왕족 흥선군의 모습을 매우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중간중간 개그 기믹으로 감초 역할을 한 배우 이재명씨가 연기한 '구용식'의 존재도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명당 자리를 팔아먹는 간악한 지관 '정만인'을 연기한 또 베테랑 중견 배우 박충선 씨의 연기도 훌륭했다. 특히 흥선군과 박재상 앞에서 표독스러운 웃음을 짓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또한, 정만인과 박재상이 알려지지 않은 명당 자리라며 김좌근에게 소개하는 안골이나 말죽거리, 헌릉은 모두 지금의 서울 강남 지역이다. 지금의 서초구 양재동 일대를 일컫던 옛말인 말죽거리는 이미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로 유명하고, 안골과 헌릉이 있는 곳은 한때 MB의 사저 관련 논란으로 뜨거웠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후 이사가려고 했던 사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지금의 서초구 내곡동이다. 그러고보면 이곳이 명당은 명당인가보다.


 영화 '명당'은 뻔하지 않게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과, 명품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영화가 전하는 묵직한 메세지까지 더해져 추석 연휴에 가족들이 함께 봐도 좋을 만한 좋은 영화였다. 결국 역학 3부작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한 가지의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얼굴의 생김새, 배우자, 땅의 기운과 같은 것들은 분명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운명으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이 만고 불변의 진리임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운세를 볼 때는 어디까지나 재미로만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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