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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Aug 23. 2018

편리함이 남긴 딜레마

영화 <서치(Searching...)>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영화 한 편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얼마나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사는지를 반증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보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하는 것이다. 딸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은 우리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행동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심리 상태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은 어찌 보면 이제는 우리의 얼굴보다도 우리의 감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도구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기에, SNS를 확인하고 구글링을 하는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어도 아이의 흔적을 찾는 데이비드의 긴박한 마음은 관객들에게 더 잘 스며든다.


 이 영화의 원제인 'Searching'은 그냥 'Searching'이 아닌, 'Searching...'이다. 뒤에 붙은 점 세 개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인터넷에 무언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고 결과가 뜨기를 기다릴 때, 깜빡이기를 반복하는 저 세 개의 점들. 무엇이든 찾고자 하면 1분 아니, 10초 안에 찾을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저 점 세 개를 말줄임표라고 생각한다면, 저 점 세 개는 영원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것처럼 느껴진다. 인터넷 상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정보들 때문에 찾아도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데이비드의 딸 '마고'처럼... 편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힘들고 불편하기도 한 이 세상을 영화의 제목은 말하고 있다.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진 딸과, 애타게 그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 리암 니슨의 <테이큰>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류의 스토리는, 액션과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서 재탕에 삼탕까지 거듭한 닳고 닳은 소재다. 그래서인지 영화 <서치>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기는 너무 쉽다. 암으로 아내를 잃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데이비드(존 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딸 마고(미셸 라)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사라진 딸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적어놓으니 이 영화, 더 뻔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현대인들이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과 만나자 이 영화는 마치 갓 잡은 활어가 지느러미로 연신 강력하게 바닥을 쳐대는 듯한 놀라운 생명력을 얻었다. 10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페이스타임과 텍스트 메시지, 구글링과 SNS, 인터넷 검색 장면만으로 스릴러가 꼭 유지해야만 하는 그 숨 막히는 긴박감의 고무줄을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 놓는다. 스릴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말한다면 조금 과한 것일까. 나중엔 어떨지 몰라도 지금 당장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듯, 정말 참신하게도 영화 <서치>의 모든 장면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데이비드나 다른 인물들의 얼굴과 그들의 감정은 그들이 하는 '페이스타임'을 통해서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아니쉬 차칸티 감독은 영화 곳곳에 일상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관객들이 공감을 느낄만한 디테일을 많이 심어놓았다. 특히 딸 '마고'의 SNS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이메일 계정에 인증번호를 보내고, 그 이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또 다른 이메일 계정에 인증번호를 보내는 모습은 긴박함 속에서 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사라진 딸 '마고'를 찾기 위해 컴퓨터 안의 주소록과 페이스북을 뒤지고, 마고가 마지막으로 사라진 장소를 구글 지도에 표시하며, 딸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 로즈마리 빅(데브라 메싱) 형사를 인터넷에 구글링 한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그러한 구글링과, 인터넷 검색의 연속이다.  

 다른 장면이 전혀 없이 컴퓨터 화면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얼마나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사는지를 반증한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이 보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 하는 것이다. 딸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의 심리 상태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은 어찌 보면 이제는 우리의 얼굴보다도 우리의 감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도구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기에, SNS를 확인하고 구글링을 하는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어도 아이의 흔적을 찾는 데이비드의 긴박한 마음은 관객들에게 더 잘 스며든다.


  아마도 마고의 아빠 데이비드의 청년 시절 정도부터가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고, 이를 사용하며 살기 시작한 세대일 테다. 그렇기에 데이비드의 가족들은 그들의 모든 일상과, 마고의 성장 과정을 모두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 컴퓨터와 인터넷 공간에 소중히 모아두었다. 영화 <서치>의 첫 장면은 팸이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 가족이 겪는 모든 사건을 '컴퓨터'에 빼곡히 모아 놓은 사진,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렇게 딸 마고를 찾는 데이비드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보는 사람도 스스로 딜레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번의 입력과, 1~2초 정도의 로딩 시간이면 딸의 흔적과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낼 수 있다. 스마트폰의 위치 데이터만 있으면 몇 분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수많은 정보를 찾아다 긁어 모아도, 딸의 행방은 오히려 점점 더 짙은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인터넷 상에 마고가 남긴 흔적에 따라 사건은 가출에서 납치로, 심지어 살인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마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스스로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점차 깨닫게 된다. 그는 마고의 친한 친구가 누군지 단 한 명도 모르고 있었으며, 데이비드에게는 낯설기까지 한 딸의 모습이 남아있는 인스타그램과 텀블러, 페이스북은 그를 더 놀라게 만든다. 아내의 사후 데이비드는 마고와 아내 팸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피했고,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던 마고는 아버지와 나눌 수 없는 이야기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인터넷 상에서 표출해 왔던 것이다. 심지어 데이비드는 마고가 6개월 전에 피아노 레슨을 그만뒀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알고 있는 마고의 모습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해맑게 뛰노는 그 때의 모습으로 굳어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가 퍼스널 컴퓨터 시대의 문을 연 세대라면, 마고는 컴퓨터, 스마트폰을 자신의 손발보다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세대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것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든 덕에 많은 것이 편리해졌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덕에 사람들은 휘발하기 쉬운 기억 속에서 스러졌을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또 인터넷 덕분에 세상은 더욱 좁아졌고, 여러 사람들이 쉽게 한 데 모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분명 '일장일단'이 있다.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쁜 것은 없다. 영화 <서치>는 우리가 편리하고 좋다고만 생각했던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의 역설적인 면을 잘 드러내서 보여준다.

 물론 어느 하나가 좋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듯,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만약 컴퓨터나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다면 어땠을까. 딸이 사라진 부모는 그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 경찰의 전화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SNS와 인터넷 덕분에 데이비드는 스스로 딸의 행방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 발견한 자신도 몰랐던 딸의 모습과,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보들은 오히려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인터넷 덕분에 데이비드는 #FindMargot이라는 해쉬태그만 검색하면 손쉽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인터넷 때문에 데이비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에 여과 없이 노출되었다. 심지어 데이비드가 딸을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입 가진 놈 아니, 손가락 가진 놈이라면 한 마디씩 다 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 속에서 데이비드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이 영화의 제목도 그런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제인 'Serching'은 그냥 'Searching'이 아닌, 'Searching...'이다. 뒤에 붙은 점 세 개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인터넷에 무언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고 결과가 뜨기를 기다릴 때, 깜빡이기를 반복하는 저 세 개의 점들. 무엇이든 찾고자 하면 1분 아니, 10초 안에 찾을 수 있는 세상. 하지만 저 점 세 개를 말줄임표라고 생각한다면, 저 점 세 개는 영원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것처럼 느껴진다. 인터넷 상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정보들 때문에 찾아도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데이비드의 딸 '마고'처럼... 편리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힘들고 불편하기도 이 세상을 영화의 제목은 말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가상에 존재하는 그 세상을 너무 믿고 의존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바보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요즘 들어 이런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된다. 카톡이나 메신저를 통해 누군가를 사칭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건들. 사실 알고 나면 어이없는 이야기다.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야만 하는 세상이라면 과연 이런 사기를 칠 수 있을까. 우리가 인터넷을 믿는 만큼, 우리는 더 바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인터넷 덕분에 세상이 더 좁아졌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속의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과 의견이 휘발되지 않고 남아있는, 이 세상의 10배, 100배는 되어 보이는 더 거대한 세상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쉽게 뭉치고 흩어진다. 이전보다 크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여론은 개인을 더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며, 심하면 그 여론은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인터넷 덕에 세상은 더 좁아졌지만, 한편으로 인터넷 때문에 세상은 상대하기 벅찰 만큼 더 광대해졌고, 더 복잡해졌다.


 긴박한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떠나고서라도, 영화 <서치>는 이렇게 현대인들에게 생각할 만한 거리를 많이 남기는 영화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결말에서 몇 가지 정도는 열린 결말로 관객의 상상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문제집 뒤의 해답지를 보듯 모든 의문을 스스로 다 풀어버리며 끝났는데, 오히려 모든 의문이 명백하게 풀려서 조금은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명백한 결말을 단점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경이로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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