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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Apr 17. 2019

모두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吾輩は猫である。名前はまだ無い。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첫 문장을 읊으며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시작했다. 문장을 읊는 이는 차 지붕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어느 이름 없는 고양이. 옛날 이런 고양이가 있었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아마 일본 고양이들 사이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화자 아니, 화묘(猫)인 주인공은 묘구(猫口) 에 회자되는 가장 유명한 고양이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이 고양이는 처음엔 길고양이였지만, 고양이 집회에 나가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자신을 사토루(후쿠시 소타)가 구해준 것을 계기로, 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사토루는 고양이에게 '나나'(타카하타 미츠키)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얼마간 그렇게 같이 살다가 더 이상 나나를 맡아 키울 수 없게 된 사토루는 그의 고양이 나나를 맡아줄 새 집사를 찾아 나나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난 이 영화를 보고 자연스레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베일리 어게인>이 떠올랐다. '베일리'의 목소리를 연기한 조시 게드처럼 고양이 '나나'의 모습에 겹쳐지는 타카하타 미츠키의 목소리 때문에 그랬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애틋한 우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톤이 그랬다. '일본 고양이 버전 베일리 어게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고양이 여행 리포트>의 해시태그로 따라붙었다. 


 다분히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 영화 전반적으로 지극히 '일본스러운 신파'가 너무 짙게 배어 있었다. (특히 사토루가 나나에게 '사랑한다고, 바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나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최근에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느꼈던 느낌 그대로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다. 위와 같은 일본풍 멜로 영화를 보며 먹먹한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취향에 맞는 사람이라면,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일본풍 멜로가 감정이 풍부하다 못해 과도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클라이맥스에서 사랑과 인생을 통찰하고자 다소 오그라드는(?) 명언들을 마구잡이로 던져대는 이런 분위기의 영화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꼭 이야기를 이런 방법으로밖에 풀 수 없었는지 조금 아쉽다고 느낄 만한 영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차치하고, 동물을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분명 따스한 위안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종(種)'의 범주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과 '고양이', 혹은 '인간'과 '개'라는 말로 서로 다른 종으로 나누지 않고, '동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동물들에게 그들의 속마음을 들려줄 '목소리'를 부여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테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 직접 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들의 목소리는 각각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로써 작용한다. 마치 집사와 반려묘, 혹은 반려견 사이의 '동물적인 유대감'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했다는 느낌이다. 각각의 대사에는 일본인 특유의 '사려 깊은 배려심'이 더해져 동물과 인간이 정말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효율적으로 설득시키고, 영화 전체에 따뜻함을 배가한다. 척하면 척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는 사토루와 나나의 모습은 마치 '말'이 통하지 않아서, 오히려 사람 사이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동물적인 공감대'로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위에서 내가 아쉽다고 평한 '일본스러운' 느낌이 이 영화에 안겨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정확히는 '사토루 여행 리포트'라고 해야 한다. 사실 사토루가 '나나'를 맡을 수 없게 된 이유는 불치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사실 여기서도 신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토루가 '나나'를 맡기기 위해 찾은 집사 후보들은 모두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다. 그들 역시 '동물'이라는 존재를 매개로 연결된 친구들인데, 사토루는 '나나'와 함께 친구들을 만나며 그 시절 자신이 만나고, 사랑했던 동물들을 추억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결국 '인생은 마치 하나의 여행과 같다.'는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사실 사토루의 인생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었고, 또 다른 교통사고로 그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고양이 '하치'도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불치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되었으니, 범인의 눈으로 보기에 사토루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다. 

 하지만 사토루는, 자신의 인생을 '감사하다'라고 표현한다. 사토루는 부모님을 여의고 판사인 이모 손에 큰 탓에 자주 전학을 다니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곳을 다니며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이 그의 '인생 여행'을 다채롭고, 재미있게 만들어 줬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여행'의 결말 부분을 함께한 고양이 '나나'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내 마지막 고양이가 너라서 참 좋았어."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사실 사토루의 부모님이 친부모가 아니었다는 것인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토루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물론 친부모가 아니라는 설정은, '막장 드라마'에서 뼈에 구멍이 날 정도로 우려먹은 장치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서 이 장치는,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슬픔에 새로운 결을 만들어냈다.  

 사토루를 입양아로 만들면서 사토루는 보는 이에게 하나의 '길고양이'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사토루를 어느 한 곳에 정착시키려 하지 않고, '인생의 나그네'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불치병을 얻었음에도 삶에 미련과 후회를 가지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개연성을 제공했다. 한편 점점 약해져 가는 사토루와, 어떻게든 사토루의 곁에 있기 위해 이모 노리코의 집에서 나와 노숙을 하는 '나나'의 모습은 마치 사토루의 보호자가 '나나'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으로써 서로를 의지하는 둘의 아름다운 우정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숨이 넘어가는 순간, 나나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힘겹게 뱉어내고는 죽음을 맞이한 사토루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동물을 '주종관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했다. 

 흔히 동물의 죽음을 표현할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사토루 부모님의 묘소를 찾은 사토루와 나나는 하늘에 뜬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함께 바라봤고, 그 무지개다리를 먼저 건넌 건 사토루였다. (인간도 동물이니, 이 표현을 사람에게 쓰면 안 된다는 법도 없으리라.) 일본어로 '일곱'이라는 뜻인 '나나'의 이름도, 어느 정도 복선의 역할을 한 것일 테다. 이 영화는 그렇게 '인간'과 '고양이'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 우리가 당연하게 '인간'과 '동물'을 분류해서 표현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인간'도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 영화는 우리 주변의 동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니 이 영화의 제목이 <사토루 여행 리포트>가 아닌 <고양이 여행 리포트>인 것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고양이는 사토루가 하는 '인생 여행'의 매개체인 '나나'가 아닌, 사토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이던 묘생이던, 본질적으론 하나의 '생'임을, 그리고 그 '생'을 살아가는 '동물'로서의 동질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마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 사실 제목에 등장하는 기쿠지로의 정체가 아이가 아닌, 기타노 다케시라는 사실에서 느껴진 큰 울림과 비슷했다. 


 '소유'와 '욕망'이라는 가치는 분명 사람의 인생에 필수 불가결하다. 저것들은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윤택한 삶이 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도 나약해서,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되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피조물을 넘어, 자연과 다른 동물들까지도 '소유'와 '욕망'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소유'와 '욕망'은 세상 모든 것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든다. 내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내게 혜택만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길고양이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나, 줄어들 줄 모르는 유기동물의 숫자도 인간의 그 오만한 생각을 반증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특유의 '일본스러운 신파'와 부족해 보이는 디테일에도 이 영화를 본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 자리해야 할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인간들 사이의 유대를 더욱 긴밀히 할 수 있게 만든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그렇게 인간은 그들만의 '소유'와 '욕망'을 더욱더 공고히 했고, 그것은 결국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식물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서 '사토루'와 '나나'의 관계를 보며, <베일리 어게인>에서 '이든'과 '베일리'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며 세상의 모든 것은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를 새삼 바라게 되었다. 함께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임을, 인간'만'의 윤택한 삶이 조금은 불편해지더라도, '동물'이라는 범주에서 더 많은 '생'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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