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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y 03. 2019

'나누는 맛'에 대하여

<브런치X문토>

 브런치에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로 첫 리뷰를 쓴 게 2016년 12월이니, 마치 벽돌을 쌓듯 브런치에 영화 리뷰를 한 칸, 한 칸 차곡차곡 쌓아온지도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감사하게도 '브런치 무비패스'에 1기부터 지금의 5기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영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로써 소통할 수 있었다. 


 영화는 확실히 '보는 맛'보다, '나누는 맛'이 훨씬 큰 매체다. 물론 비현실을 현실같게 만드는 CG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며 '어벤져스'를 대표로 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들처럼 분명 관객의 기대를 120% 충족시키는, 화려한 풍미의 '보는 맛'을 제공하는 영화들도 분명 많아졌다. 하지만 관객들이 마블의 영화를 찾는 이유는 비단 그런 '보는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화려한 'CG'라는 껍질 안에 싸여 있는 '이야기'라는 탄탄한 과육 덕분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나누는 맛'을 제공한다. 

 사과를 먹을 때 껍질을 깎아내고 먹거나, 껍질 채로 사과를 먹는 사람은 있어도, 껍질만 먹는 사람은 없다. 몇 억 달러가 우습게 제작비로 산화되는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턱없이 적은 예산이 투입된 독립 영화임에도 블록버스터만큼 혹은 그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하는 '기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그 '이야기'의 힘일 테다. 단순히 영화를 보고 났을 때의 즐거움보다, 보고 나서 밥을 먹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마치 경제학의 '네트워크 효과'처럼 이야기는 '나눌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지만, 유독 한국 사람들은 '남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이의 얘기를 나누면서 동질감을 얻고 친밀감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난 이것이 내가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는 행위도 본질적으로는 '남 얘기'를 보고 듣는 행위다. 얕게든 깊게든, 결국 관음적 시선이 깔려있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어디서 보고 듣고 온 '남 얘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런 '남 얘기'의 소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이 적은 인구에도 가히 폭발적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행태를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혼자 앉아서 책을 보고 영화를 읽는 것, 다시 말하면 '이야기'를 혼자 소비하는 것보다 커피를 마시거나 술 한잔 하면서 친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재미있다. 이야기는 '나눌수록' 힘을 발휘하니까. 그리고 실제 존재하는 주변 사람의 '뒷말'을 해서 의가 상하는 것보다, 픽션 속 인물을 가지고 '뒷말'을 하는게 더 낫지 않은가. 영화는 '건전한 뒷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사회에 이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이제는 '영화'라는 매체를 소비함에 있어 '보는 맛'은 그 어느 때보다 원만히 충족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보는 맛'을 충족하기 위한 기술들은 현재 더할 나위 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화려한 CG 기술이라는 측면을 떠나서, '넷플릭스'나 '왓챠'같은 OTT 서비스들의 등장은 어디서나 영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그 통로를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혼자 영화를 보는, 이른바 '혼영'이 일상화 된 시대다. 노트북, 스마트폰, TV로 언제든 혼자 영화를 즐길 수 있고, 영화관에 혼자 들어가도 더 이상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맛'과 비교했을 때 '나누는 맛'은 과연 그것을 따라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물론 나같은 사람은 '브런치'같은 공간에 글을 쓰면서 '나누는 맛'을 스스로 충족하고는 있지만,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서 심리적인 '진입 장벽'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 마음이 맞는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내가 쓴 영화 리뷰에 댓글이 달리면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지만, 댓글을 보는 것이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결국 글을 쓰는 행위도 상호 적이라기보다, 일방적일 수 밖에 없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래서 사실 브런치에서 브런치 무비패스를 사용하는 유저를 대상으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셜 모임'을 만들어 주기를 내심 바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브런치와 문토의 콜라보는 참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점 천편일률적인 인간 관계에 '권태기'를 느끼며,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문토'와 같은 '소셜 모임'의 존재는 '나누는 맛'을 점점 잃어가는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사실 나는 '문토'에서 진행하는 '씨네마 클럽'에 예전부터 참여해보고 싶었다. 특히나 '함께 나눈 영화' 목록에 폴 토마스 앤더슨의 '펀치 드렁크 러브'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같은 내 인생 영화들을 비롯한 좋은 영화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던 것도 참여 의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간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로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엄청나게 많은데 내가 시간이 안나고, 막상 시간이 나도 술 약속 잡을 친구가 없는 느낌이랄까. 지금 나는 영화를 '나누는 맛'에 심히 굶주려 있다. 


 아마 이런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10분 정도 거리면 지척에서 언제든 최신 개봉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그것마저 귀찮으면 내 방에서 뒹굴뒹굴하면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분명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 2%의 빈 공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문토'에서 열리는 '씨네마 클럽'에 참여해 보며 내 스스로 그 2%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체험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을 글로 사람들과 나누며, 모쪼록 많은 이들이 자신의 빈 공간을 '나누는 맛'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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