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영원할 나의 작은 친구들

영화 <토이 스토리>

by 정주원
우리 역시도 사회 속에서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래된 장난감처럼 우리도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고 쓸모를 잃으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도 사회 속에서 아웅다웅 피나는 경쟁을 해가며 열심히 살아갈테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의 옆을 채우는 건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한 친구일 것이다.


1995년의 어느 날 새벽, 부스럭대는 소리에 한 소년이 잠에서 깼다. 할머니께서 새벽 기도회에 나갈 채비를 하며 옷을 갈아 입으시는 소리였다. 눈을 부비는 손주의 모습에 힐끗 웃으며 얼른 더 자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머리맡의 성경책을 챙겨 들고는 교회에 가셨다. 다시 잠들려던 소년은 문득 어제 본 영화를 떠올렸다. 눈은 이내 책상 옆의 장난감 상자로 향했다. 파워 레인저, 선가드, 다간 등의 로봇들과 몇몇 개의 레고 조각과 레고 인간들, 그리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받은 미니 마우스 인형이 들어있었다. (농촌에서 상경한 시골 사람이었던 아버지는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를 구별하지 못했고, 그는 회사 동료에게 산타 할아버지 분장을 시키고는 아들에게 물방울 무늬 치마를 입은 소녀 생쥐 인형을 안겨주었다.)

할머니께선 아까 나가셨고, 방 안엔 오직 소년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소년은 뭔가 알았다는 듯이 도로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초 뒤,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서 누군가에게 들킬까 조심 조심 실눈을 뜨며 장난감 상자를 쳐다봤다.


이것이 토이 스토리가, 그 당시 어린 아이들에게... 아니,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으므로. 어느 아이에게 미친 거대한 영향을 반증하는 사건 중 하나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을 보면 '영화를 보는 것은 거대한 세계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거에요.' 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차 그 세계에 오롯이 빠져들기가 어려워진다.


'이건 너무 시시해.'

'이건 거의 표절 아닌가? 그 영화랑 너무 비슷한데.'

'저게 말이 되나?'


요즘 영화를 보러 가게 되면 이런 다양한 트집을 잡기 일쑤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이 하게 되는 말.


'에이, 너무 뻔하잖아.'


뭐가 그렇게 뻔해졌을까. 근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본 책들, 영화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된 다양한 스토리들과 플롯들. 난 그 이야기들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배우고, 교훈을 얻고, 점점 '나'라는 사람을 형성해 갔을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성장'해 간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 '성장'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새로운 이야기를 접함에 있어 팔짱을 끼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롭게 본 영화들 중에는 정말 심하다 싶을 만큼 명작을 따라한 아류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과한건 그 영화가 아니라 나다. 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그 영화를 과거의 것들과 끼워맞추며, 뻔한 이야기의 영화를 보느라 내 시간을 낭비했음을 한탄하고 심하면 비난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어줍잖은 지식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뭐든 비난하고 비판해야 영화를 제대로 보는 사람 같고, 그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잡다한 생각과 질문들이 영화가 품고 있는 그 세계에 온전히 '빠져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토이 스토리>가 CGV를 통해 재개봉 했다. 그 겨울 엄마 손을 잡고 명보 극장에 가서 봤던 그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22년만에 다시 우디와 버즈를 큰 스크린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용산 CGV를 찾았다.

들어 보니, 전 좌석이 매진되었다고 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니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가득 영화관을 채우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어린 꼬마였을 때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사람들일 테다. 이 안의 모두가 나와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하니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왠지 모르게 벌써 짠한 감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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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토이 스토리>를 보러 온 나는, 혹은 모든 관객들은 장난감이 살아나진 않을까 실눈을 뜨고 바라보던 그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함을 간직하고, 그것을 꺼내보고 싶었을 것이다. 우린 <토이 스토리>를 통해서, 우디와 버즈를 통해서 어린 시절 느꼈던 느낌을 다시 느끼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통해서 그 시절의 나와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장난감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그 때보다 더욱 깊어졌다.


그것은 아마 지금의 우리는 마치 우디와 버즈 영화 속 모험처럼, 22년의 세월을 헤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 우리는 얼른 어른이 되기를 바랐다. 얼른 커서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성장해 갈수록 앞에 펼쳐지는 일들은 즐거운 일들보단, 힘들고 실망하고 좌절할 일들이 더욱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예전에는 앤디의 입장에서 저렇게 멋진 장난감들을 나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면, 22년 뒤의 나는 저 장난감들의 심정에 좀 더 공감하고 있었다. 앤디의 생일파티가 열리자 장난감들은 혹여나 새 장난감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게 되고, 심하게는 버려질까봐 걱정한다.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하루하루가 즐거울 줄로만 알았지만, 그 반대로 어른이 될수록 근심과 걱정이 늘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회가 우리에겐 '앤디'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항상 사회에 인정받아야하고,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내 모습이 앤디의 장난감들의 모습에서 오버랩된다.


그리고 이 날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 버즈는 시드의 집에서 우연히 자신이 등장하는 TV 광고를 보고 자신이 우주 전사가 아닌 장난감임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버즈는 다시 한 번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려고 했지만 그대로 추락하여 팔이 부러지고 만다. 다시 본 <토이 스토리>의 그 장면에서 유독 버즈의 상실감과 허탈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없다는, 한낱 장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뮤지컬처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는 <토이 스토리>의 ost를 부른 랜디 뉴먼의 <I'll go sailing no more>인데, 어린 시절과 달리 가사가 들리고, 그것이 장면과 어우러지니 왠지 모를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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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 among the stars I sit Way beyond the moon

난 저 달 너머 별들 가운데 앉아있네

In my silver ship I sail

은빛의 우주선을 타고서
A dream that ended to soon

너무 빨리 끝나 버린 나의 꿈을 향해


Now I know exactly who I am and what I'm here for

하지만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You are a toy, You can't fly

넌 장난감이야, 날지못해

And I will go sailing no more.

그리고 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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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no, it can't be true I could fly if I wanted to
아냐, 그럴리가 없어 난 원한다면 언제든지 날 수 있어

Like a bird in the sky If I believe I could fly

하늘의 저 새처럼 날 수 있다고 믿는다면
Why I'd fly

왜 날지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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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ly.. I will go sailing no more...

분명히..이젠 정말 항해 할 수 없겠지...


마치 큰 꿈을 가지고 있던 어린 내가 어른이 되어가며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고, 점점 세상 속의 한 점으로 작아져만 가는 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꿈을 잊은 채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고 그렇게 살아온 나의, 우리의 아픈 현실을 버즈의 모습을 통해 다시 만났다.


결국 우디는 시드의 불쌍한 장난감들과 합심해 위기에 처한 버즈를 구하고 시드를 혼내주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은 벌써 이사를 떠나버린 앤디 가족의 차와, 이삿짐 트럭을 열심히 쫓아야 한다. 버즈의 등에 매달린 거대한 로켓을 이용해 차를 쫓는 우디와 버즈. 버즈는 우디를 안고 푸른 하늘을 날아 앤디의 차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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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 Buzz You are FLYING!

야 버즈, 너 지금 날고 있잖아!


This isn't Flying. It's just FALLING with Style.

이건 나는 게 아니야. 그냥 멋지게 떨어지는 거야.


To Infinity, and Beyond!!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사실 저 장면의 대사들은 앞의 장면들과 정 반대다. 항상 난 날 수 있다고 말한 건 버즈였고, 넌 날 수 없다며 그건 그냥 멋지게 떨어지는 거라고 말했던 건 우디였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우디는 버즈에게 넌 날고 있다고 말했고, 버즈는 우디에게 지금 난 날고 있는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저 말,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를 외친 사람도 버즈가 아닌, 우디였다.


버즈는 우주 전사로서의 꿈과 이상은 잃었지만, 장난감이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우디'라는 둘도 없는 친구를 얻었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토이스토리는 2와 3로 계속된다. 앤디는 어른이 되었고, 장난감들은 쓸모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강산이 몇 번 바뀌었을 그 세월들 동안 펼쳐진 다양한 모험 속에서 우디와 버즈, 그리고 장난감 친구들은 항상 함께였다.

우리 역시도 사회 속에서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래된 장난감처럼 우리도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고 쓸모를 잃으면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도 사회 속에서 아웅다웅 피나는 경쟁을 해가며 열심히 살아갈테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의 옆을 채우는 건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한 친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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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의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너 어렵고 힘들 때, 누구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내가 있다는 사실 잊지 마

그래 난 너의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나보다 똑똑하고 더 잘난 친구들도 너무 많겠지

하지만 나처럼 널 아끼는 친구 이 세상에 또 없을걸, 그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리들

너와 난 뗄 수가 없다네

난 너의 친구야

영원한 친구야.


랜디 뉴먼의 <You've got a friend in me>. 이 노래 역시 랜디 뉴먼의 원곡이 있지만, 이상하게 <토이 스토리>영화 자체와 이 노래는 자막보다 더빙이 더 맛깔난다. 우리가 그 시절 영화관에서,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본 <토이 스토리>가 더빙이었기 때문일까.


아마 결국 <토이 스토리>가 하고 싶은 말은, '남는 건 친구밖에 없다.'일텐데, 정말 두고 두고 틀린 말이 아닌 듯 하다. 변하지 않는 진리를 이렇게 뻔하지 않게, 멋지게 이야기 한 95년도의 이 만화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토이 스토리>는 그 시절 유년기를 보낸 우리에게 동화나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싶었던 나는 아련했던 그 시절의 마음과, 그 때 가졌던 느낌과 함께 지금의 나에게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심어주었다. 아마 영화를 봤던 관객들 모두가 오랫 동안 못 본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오며 나도 어린 시절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유치원, 동네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롯이 빠져들며 봤던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앞으로 다른 영화를 봄에 있어서도, 비판할 점은 비판하는 자세는 유지하되 조금은 더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가 품고 있는,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세계를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영화와 책과 이야기들을 들여다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은 사회 속의 우리를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보내주는 건, 그런 이야기들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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