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불이 꺼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넓은 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사람은 망자의 아들이었다. 그저 넋이 나간 채 벽에 등을 기대고 팔 한쪽을 다리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근처가 망자의 직장이었기에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인가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람을 아는 이가 없었다. 갑작스레 상주가 되어버린 아들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장례를 치를 채비를 하기 위해 급히 집으로 돌아갔고, 친척들도 마음을 추스른 후 아침에 다시 온다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묘하게 그 장소에 남겨지게 되었다.
사실 그 스산함은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이었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에 망자의 가족과 형제자매들은 영안실이 떠나가라 울어댔고, 볼살이 짓무를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단 한 사람, 망자의 아들만 빼놓고. 망자는 그 스산한 분위기만큼이나 차갑게 식어 영안실 침대에 누워있었고, 망자의 아들은 벽을 맞대고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네가 형님 아들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망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네." 망자의 아들이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의 정적.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라 예상했던 망자의 아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가 씨 X 너희 어머니랑 동생만 아니었으면, 너 죽여버릴라 그랬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들이란 새끼가 울지도 않아?"
위의 이야기는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브런치에 '아버지'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살짝 언급했던 내용이다. 내가 아버지의 차가운 시신을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이유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염라대왕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도하지 않았던'일 것이리라. 세상 일이 어찌 마음먹은 대로,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던가.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죄를 짓는다.
극 중 주인공인 망자 김자홍(차태현)이 귀인이 된 것도 지극히 '인간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차사 덕춘(김향기)은 그의 죽음에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가 '귀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차사도 알 수 없었던 듯하다. 귀인으로 사망한 김자홍을 뛸 듯이 기쁘게 반기는 사자들의 모습을 보면.
영화 상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천년 만에 나타난, 망자가 사후 49일간 한 주에 하나씩 겪게 될 일곱 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하고 환생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귀인'이다. 그가 귀인이 되면 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도 환생이 가능하기에 오래간만에 만난 절호의 기회였을 테다.
그리고 영화 내내 네 사람은 인간이 살아생전에 짓는 일곱 개의 죄와 관련된 일곱 개의 지옥인 살인 지옥, 나태 지옥, 거짓 지옥, 불의 지옥, 배신 지옥, 폭력 지옥, 천륜 지옥을 함께 헤쳐나간다.
일곱 개의 지옥에서 일곱 번의 심판 동안, 살아생전 인간의 업을 들여다보는 '업경'을 통해 망자가 인생을 살면서 행한 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죄'로 깔끔하게 정의되고 정리된다. 환생의 가능성이 일반 망자들에 비해 높다는 귀인 '김자홍'도 그가 저지른 죄들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다.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김용화 감독이 구현해 놓은 일곱 지옥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재판 과정을 보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다. 저승의 재판은 우리에게 굉장히 먼 듯, 가깝게 다가온다. 죽음을 최대한 몸에서 멀리 두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저승에서 김자홍이 겪는 재판은 우리에게 먼 일처럼 느껴지지만, 각각의 지옥에서 밝혀지는 김자홍의 죄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하는, 우리에게 매우 밀접하고 가까운 일들이다.
차사들은 그런 김자홍의 죄들을 변호하여, 그가 무사히 지옥을 통과할 수 있게 노력한다. 각 지옥마다 자사들의 변호는 한 가지 사실을 밝히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그 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이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아마 법률 용어도 그런 맥락에서 지어진 것은 아닐까. 회계사를 공부하던 시절, 지겨웠던 상법의 내용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법에서 '선의'와 '악의'의 개념이었다. 법률의 의미에서 '선의'는 '몰랐다'는 의미이고, '악의'는 '알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악의'로 한 행동은 고의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죄가 더 무거웠다.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통해 일곱 재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느낀 것은, 인간에게 '저승'이라고 하는 존재가 꼭 필요하겠다는 것이었다. 과학적으로 명백히 사후 세계의 유무를 밝히는 문제를 떠나서 말이다. 절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속에서 자신이 지을 죄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은, 절대 고의로, '악의'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그 실재 여부를 떠나 '저승'이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잔혹한 인면수심의 범죄를 적지 않게 목도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 죄를 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저승'의 존재를 마음속에 인지하고 산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물론 과학적으로 '저승'이라는 사후 세계가 존재할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그것이 또 존재할지.
"지금 당신의 아들이, 천륜을 거스르는 죄를 저지르고 있군요." 한 차사가 망자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망자가 차사에게 물었다.
"지금 아비의 죽음을 접하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천륜을 거스르는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차사가 차갑게 말했다.
차사의 말에 망자는 한동안 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갈 길이 멉니다. 어서 갑시다." 오랜 정적 끝에 차사가 망자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갈 때 가더라도, 이 망자의 청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제발 간청드립니다." 망자가 무릎을 꿇고 애원의 눈빛으로 차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의 청은 듣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겠습니다만... 처사는 절대 이승의 일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차사가 난처한 듯 말했다.
"아직 철없는 아들 녀석입니다. 저 어린것이 뭘 알아서 죄를 짓는다 하십니까. 다 저 때문입니다. 어떤 책임이든 지겠습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망자가 계속해서 차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 이거 참 난감하구만...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리시오." 차사가 결심한 듯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상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아버지의 장례식 때 겪었던 일의 배경에는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멀쩡한 사람을 저승사자로 만들어 버린 것일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상상일 뿐이므로.)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도 일곱 지옥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것이 '천륜 지옥'이다. 부모에게 지은 죄를 재판하는 것. 그리고 그 판결을 하는 이도 그 유명한 '염라대왕'이다. 그 천륜 지옥에서 유죄를 받을 위기에 처한 김자홍을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자식의 모든 과오를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용서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의 내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그때, 난 '천륜의 죄'를 범할 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에서야 모든 것을 후회하는 어리석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는 돌아가셔서도 차사에게 그런 부탁을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언론에서는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등장을 보며 '한국형 판타지',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길던 짧던 내 인생이 어땠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선의로 혹은 악의로 난 얼마만큼의 죄를 짓고 살았을지. 태어난 것이 내 의지가 아니듯, 이 세상에서 내가 지은 죄도 내 의지가 아닐진대, 어찌 그 죄를 묻는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언젠가 용서를 구할 수 있을 때 용서를 구할 수 있다면 저승의 일곱 대왕들은 우리의 죄를 너그러이 감싸줄 것이다.
"아무리 싫고 미워도, 아버지는 아버지야. 이 철없는 놈아."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망자의 아들을 향해 쏘아붙이던 그 남자는 어느샌가 타이르듯 말하고 있었다. 망자의 아들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간다. 장례식 잘 치르고, 어머니랑 동생 데리고 일찍 가신 아버지 몫만큼 열심히 살아."
그 남자는 그렇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장례식장을 떠났다. 이후의 이야기지만, 그 후로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불이 꺼진 장례식장에 망자의 아들은 혼자 남았다. 아까 그 남자가 있을 때보다 그곳은 더 스산해졌다.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벽을 사이에 두고 망자와 그의 아들만이 그곳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망자의 아들은 그제야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듯 몸을 흔들어대며 홀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