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써, 쿨해지는 것을 선택한다. 평범하지 않은 어기도, 평범한 다른 이들도. 쿨해진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강해진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것일 뿐이다.
어렸을 적,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이 무려 10의 2,685,000승 분의 1 이라고. 확률들 중 우리가 쉽게 비교하는 것들 중 하나인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수치다. (그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욕조에 넘어져 죽을 확률보다 열 배 더 희박하다던데...)
그래서 우리는 '탄생'을 기적이라고 부르나보다. 앞으로는 탄생을 기적이라 부를 때, 꼭 저 확률을 함께 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내 탄생이 기적이라는 사실조차 하찮아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뭔가 저렇게 '수치'로 표기해 놓으면 조금은 더 내 탄생이 얼마나 기적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더 와닿지 않을까.
영화의 제목인 <원더>도 한글로 번역하면 '기적'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스스로의 탄생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전자적인 문제로 남들과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어기는, 태어나자마자 무려 27번의 성형 수술을 받아야 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남들의 외모와 달리, 자신의 모습을 흉측하다고 생각한 어기는 포스터에서 보는 것처럼, 밖을 나설 때마다 항상 '헬멧'을 쓰고 다닌다. 이런 상황에 무슨 내 탄생이 기적이란 말인가.
먼저 영화에 대한 평을 간단하게 한다면, 올해 본 영화들 중 최고로 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매우 따뜻하고, 세심하게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이 세심하게 묘사해 낸 어린 시절부터 '일반'적이지 못하고, 어딘가 불편하게 태어난 아이 '어기'와, 그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좋았던 이유는 나도 '어기'처럼 불편함을 안고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신께 태어나서 처음 받은 선물은 평생 스스로 자라지 않을 오른쪽 어깨였다. 태어나자마자 골수염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그 수술의 후유증으로 성장판을 다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여러 번의 수술 끝에 그래도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오른팔이 왼팔의 3/2도 채 되지 않는 괴상한 몸을 하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초반부터 '어기'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며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또래 친구들이 아닌, 의사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과 있을 시간이 훨씬 많다보니 철이 빨리 들게 된다. 다른 친구들처럼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하니 집 안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다.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호기심이 커지고, 나만의 세상을 그려나가는 재미를 알게 된다.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어기의 모습도 나와 꼭 닮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불편함에 대해 남들에게든, 자신에게든 '쿨'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웃겼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어기의 모습은 그런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쿨해지는 건 아니다. 밖에 나서고, 친구를 만나는게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상처받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신기하게 혹은 이상하게 보고, 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날 이해하거나, 혹은 날 그저 놀림감으로 삼으려 하거나. 전자라면 다행이겠지만, 후자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두렵다. 상처 받지 않은 척, 쿨한 척 하면 되지만 사실 내 마음은 상처받고 있으니까. 그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싫기 때문에, 아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군가와 시선을 맞추기 싫어지고, 자꾸 아래를 보게 된다. 그래서 어기가 선택한 것이 바로 '헬멧'일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 가족의 품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진다. 영화 <원더>는 이런 '어기'의 마음 속을 행동을 통해, 말을 통해 정확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영화는 '어기'가 집과 가족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게 되며 시작된다.
영화 속의 '어기'를 보며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집에 돌아온 어기가 엄마 '이사벨' 앞에서 난 왜 이렇게 못생겼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못 생겼어?
엄마한테 넌 가장 예쁜걸.
그건 엄마가 내 엄마니까 그런거잖아!
정말 어릴 때 한번 쯤은 꼭 해보게 되는 생각이기에, 나도 엄마에게 날 왜 이렇게 낳았냐며 엄마를 원망한 적이 있었기에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꼭 엄마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래도 넌 내게 가장 소중하다고. 이 영화가 참 세심하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을 정확히 그려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원더>는 단순히 주인공 '어기'가 세상 속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영화 <원더>는 주인공 '어기'를 통해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든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영화는 어기와 달리 지극히 평범한 외모를 가진 또 다른 인물들인 어기의 친구 '잭'(노아 주프)과 어기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그리고 비아의 베프 '미란다'(다니엘 로즈 로셀)의 관점의 이야기도 그려낸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어기의 누나인 '비아'는 아픈 동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정 속에서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다. 물론 동생을 미워하진 않는다.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가족 내의 모든 일에서 1번은 동생 '어기'여야만 하는 사실은 '비아'의 마음 한 켠에 외로움을 남긴다. 영화 속에서 말하듯, '어기'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비아'는 그 태양계를 도는 행성 중 하나일 뿐이다. 비아의 베프인 '미란다'는 작은 아파트에서 아빠와 자신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새엄마와 살고 있다. 그래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비아의 가족을 부러워 한다. 어기의 친구 '잭'은 처음엔 다른 친구들처럼 어기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외모만 다를 뿐 자기보다 공부도 훨씬 잘하고 유머러스한 어기에게 점점 마음이 이끌린다. 하지만, 반 내의 '주류'인 '줄리안'과 그 패거리들은 어기를 놀리고 괴롭히고 있기에, 그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리고 어기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다.
영화 <원더>는 영화에서 가장 불쌍해 보이는 '어기'의 고민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동정심을 자극하려 하지 않는다. 비아, 미란다, 잭 각각의 관점에서 보면 '어기'조차 고민 없이 행복한 아이처럼 보인다. 그저 '어기'의 고민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평범한 얼굴 안에 숨기거나 감출 수 없을 뿐이다. 어기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헬멧'을 썼지만, 평범한 다른 이들도 그와 다를 바 없다. 다르지 않은 평범한 얼굴 자체가 '헬멧'이다. 우리도 어기처럼 그 안에 '고민'을 감추고 살아가니까.
그 '고민' 때문에 비아는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게 되지만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가족들에게 쿨해 보이려 가족들을 연극에 초대하지 않는다. 또 연극반에서 만난 남자친구 저스틴에게 동생의 존재를 숨기고, 외동딸이라고 말한다. 미란다는 캠프에서 비아인 척 자신이 저택같은 집에서 훌륭한 부모님과 얼굴이 조금은 흉측하게 생긴 동생과 산다고 말해서 인기녀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얻게 된 쿨한 인기녀 이미지를 유지하려 비아와 멀어진다. 잭도 친구들 사이에서 쿨해보이기 위해 어기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뒷담화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써, 쿨해지는 것을 선택한다. 평범하지 않은 어기도, 평범한 다른 이들도. 쿨해진다는 것은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강해진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것일 뿐이다.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내 고민을 숨겨내는 것이 강인한 정신력이고, 드러난 남의 고민에는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강한 것이라고. 그게 쿨한 것이라고. 그렇게 우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것을 쿨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혹여나 상처를 받더라도, 상처 받지 않은 척 해야만 한다. 그렇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 쿨한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하며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이에 대해 영화 <원더>는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이는 비단 '어기'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영화 <원더>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은 '어기' 한 사람만이 아니다. 어기의 가족들도, 친구들도, 그 외 모든 이들도 자기만의 '고민'을 안고 힘겨운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고민으로 인해 상처 받으면서도 상처받지 않은 척, 혹은 상처를 주려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화는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친절하라고.
결국 우리 모두가 힘겨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우린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겨우 쿨해 보이겠다고, 자신의 고민을 숨기겠다고 친한 친구를 멀리하고, 상처주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왜 그렇게 힘겹게 쿨함을 유지하려 해야하는가. 이 리뷰의 첫 머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우리의 탄생 자체가 원더, 기적일진데. 기적처럼 주어진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보같은 거라고, 영화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에, 어기의 엄마 이사벨은 어기에게 말했다.
You are my WONDER
넌 내게 기적이라고. 우리 모두가 기적처럼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은 기적의 집합소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각각의 기적이 모두 다르다보니, 우리는 서로 남들의 기적을 보면서 부러워 하게만 되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작아진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강인한 척, 쿨한 척 한다.
그들에게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 것이 아닐까.
쿨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 모두가 마음 속에 한 가지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잖아.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기적'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