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키스트 아워>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칠의 '달변'은 결국 자신이 혼자인 것만 같은 가장 어두운 그 시간 속에서, 그가 혼자가 아님을 자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면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제야 처칠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올바른 생각은, 결국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영국의 수상은 영국 민중을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 처칠은 민간 선박까지 동원해 30만 명의 영국 군인들을 본토로 무사히 실어 나르는, 이른바 '됭케르크의 기적'을 실현시켰고, 히틀러의 위협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냈다.
예능 PD가 되는데 작문 능력, 일명 글빨(?)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던 그때, 나름 정기적으로 글을 한 번 쓰겠다고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어느덧 이 종이 위에 영화와 책을 비롯한 다양한 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 어언 1년 가까이가 되어 간다. 부지런했다면 부지런했고 게을렀다면 게을렀을 테다. 그 정확한 정답은 나 스스로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곳에 차곡차곡 써 모으기 시작한 글들은 내 인생에 또 다른 이정표를 남겼다. '글'은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내 정체성을 찾게 해줬으니까. 적절한 단어를 배치하고, 그 단어들을 모아 적절한 문장을 배치하고, 또 그 적절한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글이 만들어지는 순간. 스스로의 의지로 써나 간 50개 남짓의 글들은 내게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꿈이라고 하면 무조건 돈이나, 직장의 꽁무니만 뒤쫓던 내 눈을 뜨게 만들어준 것이 바로 글이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냐고. 생각보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흰 종이를 앞에 대면할 때의 그 막막함. 무어라 말해주고 싶은데, 적절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 난 후, 난 말할 수 있었다. 흰 종이는 마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꺼먼 방 같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안에 홀로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그저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 막연한 막막함이 아니다. 문장을 쓰자면 어떻게든 써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단순히 논리로 이루어진 문장의 나열체가 아니다. 그 안엔 쓰는 이의 철학이, 진실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읽는 이에게로 가닿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은 오롯이 혼자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히틀러의 침공을 대비하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1940년 5월 13일, 영국 수상에 취임한 직후 하원에서 한 연설에서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sweat.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입니다.
유럽 대륙의 나라들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속속 무너지는 불안정한 전세에, 그는 미치광이 독재자로부터 영국 국토와 국민을 수호할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그가 수상이 되었을 때, 그를 반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재 영국의 군주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이기도 한 당시의 국왕 조지 6세(벤 멘델슨)는 전임 왕인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왕위를 포기하고, 윈저 공이 되는 바람에 떠밀리듯 왕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처칠은 윈저 공의 사랑과 그 행위를 옹호하는 입장을 표해 조지 6세의 미움을 샀다. (여담이지만, 배우 벤 멘델슨의 얼굴이 조지 6세와 너무 닮아 놀랐다.) 그랬기에 극 중에서 취임 후 국왕에게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간 자리에서도 매우 껄끄럽고 불편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원들은 윈스턴 처칠을 정신 나간 망상가라고 생각했다. 피와 수고, 눈물과 땀. 이 말은 결국 그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영국을 지키겠다는 그의 각오였지만, 다른 의원들의 지지와 도움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구성한 전시 내각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현재 30만 명의 영국 육군이 됭케르크에 갇혀 사방에서 포위해 조여 오는 독일군에 의해 그대로 바다에 수장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유럽 대륙이 무너진 다음에는 영국 본토가 전쟁터가 될 터였다. 처칠은 어떤 방법을 써서든 됭케르크에 갇힌 영국의 젊은 병사들을 구출하고, 영국 본토를 방어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각의 구성원인 전임 수상 체임벌린 경(로널드 픽업)과, 외무장관 헬리팩스 경(스티븐 딜레인)의 생각은 달랐다. 유럽 대륙 전체가 나치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는 현 상황에, 히틀러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이탈리아의 중재 하에 히틀러와 평화 조약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들에게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 입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어떻게 호랑이와 협상을 한단 말이야!!
유럽 대륙에 30만의 영국 젊은이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행해질 평화 조약은, 매우 굴욕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히틀러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 내다본 처칠은 분명 옳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처칠은 독불장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계속해서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는데, 아직 희망이 있다고 우기며 내각 의원들의 의견에 어깃장을 놓는 처칠의 모습은 관객에게도 매우 독선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영국 군인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고 있었으며, 히틀러의 거대한 군대에 비해 영국군은 너무나 작고 미약했다. 미국의 루스벨트는 유럽 내의 문제에 대해 중립 기조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처칠의 참전 제안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었다. 체임벌린과 헬리팩스는 의회에 처칠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계획하고 있었고, 처칠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와 비교하기에 물론 너무나도 거대한 사람이지만, 처칠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글을 쓸 때의 그 막막함, 어두운 방에 홀로 들어가 있는 그 막막함은 바로 공감의 가능성을 향한 불안함이었기 때문에. 매 순간 글을 쓰면서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은, '내 생각을 사람들이 과연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물론 글이라는 것은 쓰는 이의 생각과 철학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하지만 난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글'은 나 혼자 만들 수 없다. 나 외에 다른 사람들도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있어야 그 글은 비로소 좋은 글이다. 그래서 내게 글을 쓰는 과정은, 내 생각을 표출함과 동시에 '사회적 동물'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면 이 글을 쓰는 주체가 나인 것인지, 그저 남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처칠도 점점 악화되는 정세에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됭케르크에 고립된 아군을 구하기 위해 옆 동네인 칼레에 주둔한 군대에 독일군 공격을 명령했지만, 오히려 칼레에 주둔한 영국군이 큰 위기에 빠졌고, 됭케르크의 전세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된 노력에도 악재만 계속되고 있었다. 점점 처칠을 압박해오는 정적들. 결국 처칠은 헬리팩스에게 이탈리아에게 평화 조약을 위한 조건을 알아보자는 헬리팩스의 제안을 수용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다키스트 아워'인 그 순간 처칠의 손을 잡아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내내 처칠에게 까칠했던 조지 6세는 위기의 순간 처칠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는 어렵게 한마디 말을 꺼낸다. 당신을 지지한다는 그 한마디를. 조지 6세는 어두운 방에 혼자였던 처칠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왕실은 캐나다로의 피난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조지 6세는 그 순간 영국의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순간을 굳건히 이겨내야 한다고. 독재자에게 무릎 꿇는 것은 그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아마 조지 6세는 처칠의 수상 취임 연설 중, 이 부분을 곱씹어 보지 않았을까.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국왕의 신임과 지지를 얻은 처칠은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과 나눠야 함을 깨닫는다. 영화 초반 처칠은 자기는 살아생전 버스를 타 본 적이 없고, 지하철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딱 한 번 타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언제나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출근하고, 퇴근했다. 그에게 민중들은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닌, 그저 차창 밖으로만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마 그뿐만 아니라 다른 영국 의원들도 그랬을 것이다. 체임벌린과 헬리팩스가 평화 조약을 제안한 것도, 영국 국민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졸렬한 생각이었다. 의회는 민중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칠은 갑작스레 차에서 내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의회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른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평범한 민중을 대변하기에 '지하철'은 매우 효과적인 공간이다. 처칠은 지하철에 탄 다양한 이들의 생각을 듣고자 한다. 그리고 민중들은 처칠의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처칠의 손을 잡아주었고, 어두웠던 처칠의 마음의 방은 점점 많은 이들의 동의와 지지로 밝아지고, 시끌벅적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의회에 도착한 처칠은 그 유명한 연설을 한다.
We shall not flag or fail.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저 말은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We shall Never Surrender!
만약 처칠이 불신임 투표를 통해 수상 자리에서 쫓겨나고, 헬리팩스가 수상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굴욕적인 강화 조약은 결국 패배를 의미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처칠이 말했던 것처럼 영국은 '새로운 암흑시대의 심연'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저 순간이 영국인들에게 '가장 어두웠던 순간'임을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처칠의 연설 뒤에 처칠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하려던 체임벌린과 헬리팩스는 처칠의 연설에 환호하는 의원들을 보며 망연자실해져 이렇게 말한다.
처칠이 '달변'이라는 무기를 꺼내 든 거지.
처칠의 '달변'은 결국 자신이 혼자인 것만 같은 가장 어두운 그 시간 속에서, 그가 혼자가 아님을 자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면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제야 처칠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올바른 생각은, 결국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영국의 수상은 영국 민중을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결국 처칠은 민간 선박까지 동원해 30만 명의 영국 군인들을 본토로 무사히 실어 나르는, 이른바 '됭케르크의 기적'을 실현시켰고, 히틀러의 위협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냈다.
그리고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통해 나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옳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의 철학과, 사람들의 공감 사이의 균형추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처칠도 체임벌린과 헬리팩스에게 휘둘렸다면, 결국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칠은 '독선'을 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공감함으로써 결국 옳은 생각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든 글쓰기는 '막막함'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을 담는 것이다. 그저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하는 '글빨'이 아니다. 오롯이 혼자일 수밖에 없는 가장 어두운 심연의 순간,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생각'만이 내 글이 방향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끝 문장으로 가닿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일 것이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의 2시간 반 정도의 러닝타임은 나도 그렇게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값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