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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결국 바래진다

영화 <원더 휠>

by 정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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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환상'과 '현실'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서의 내 삶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기에, 우리가 자연스레 꿈꾸게 되는 것이 환상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현실'과 '환상'은 결코 별개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둘은 같은 것이다.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던 환상이 점점 당연해지고 익숙해지며, 무료해지면 빛이 바랜 그 환상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니까. 그 둘은 마치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한 명의 사람과도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인 <원더 휠>은 '코니 아일랜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대관람차의 이름이다. 대관람차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순간,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는 순간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즐거움을 내뿜는다. 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결국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돌고 도는 대관람차 '원더 휠'처럼 '환상'과 '현실'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놀이공원은 참 신비한 매력을 가진 장소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이 주는 스릴과 짜릿함 때문이라는 단순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난 놀이공원이 가지는 '현실과의 단절성'에 큰 매력을 느낀다. 놀이공원은 인간이 스스로 현실 속에서 환상을 분리해 낸 공간이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간 놀이공원 안은,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과 같은 느낌을 준다. 오색찬란한 풍선들과,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건물들로 꾸며진 그곳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마음이 들뜬다. 집에서 매일 피곤에 지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TV만 보던 아버지가 나보다 더 신난 표정으로 후룸라이드를 타러 가자고 내 손을 잡아 끄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곳이 바로 '놀이공원'이다.


영화 <원더 휠>은 그런 환상 속의 공간인 '놀이공원'을 무대로 하는 영화다. 우디 앨런은 영화 <원더 휠>에서 뉴욕의 대표적인 유원지인 '코니 아일랜드'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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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코니 아일랜드 안에서 살며 회전목마를 관리하는 험티(제임스 벨루시)와 지니(케이트 윈슬렛)에게 험티가 전 부인과 낳은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찾아오며 시작된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가길 바라는 험티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캐롤라이나는 화려한 생활을 좇아 갱과 결혼했는데,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도망쳐 나와 아버지를 찾아온다. 처음에 험티는 그런 캐롤라이나를 내쫓으려 하지만, 결국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듯 딸을 야간 학교에 보내고 공부를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부인이 죽고, 지니와 그녀가 전 남편과 낳은 아들 리치(잭 고어)와 함께 살고 있던 험티에게 갑작스레 다시 나타난 캐롤라이나는, 험티의 인생에 새로운 환상을 심어준다. 리치는 계속해서 도시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문제아였고, 그의 부인인 지니는 처음엔 부인과 딸을 모두 잃고 막막했던 험티의 인생을 구제해 준 '구원자'였지만, 지금은 여러 면에서 삐그덕거리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돌아온 딸은 그의 인생에 새로운 '환상'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영화 <원더 힐>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현실'과 '환상'과의 괴리에 주목한다. 지니 역시 남편 '험티'와의 관계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극작가를 지망하는 코니 아일랜드의 해수욕장 인명 관리 요원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내연 관계에 놓이게 된다. 한 때 배우를 꿈꿨지만 실패한 채 살고 있던 그녀에게 극작가인 믹키는 더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사실 그녀가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이유도 그녀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었다. 믹키와 함께하는 어느 장면에서 지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종업원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 대사는 철저히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지니의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연극이라 생각하며 언젠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믹키와의 위험한 사랑을 통해 환상으로 한 걸음 더 발을 디디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지니를 괴롭히는 '두통'은 그녀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잘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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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그렇다. 믹키도, 험티도, 캐롤라이나도 각자가 처한 힘든 현실 속에서 환상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험티는 그녀의 딸인 '캐롤라이나'를 통해서 그녀가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환상'을 품고 있다. 믹키도 처음에는 '지니'를 통해, 나중에는 '캐롤라이나'를 통해 한 편의 멋진 연극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바라는 '환상'을 품고 있으며, 캐롤라이나도 전 남편에게서 도망친 후 새롭게 만난 '믹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힌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환상은 너무 '이기적인' 환상이다. 그들이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환상 속에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믹키는 딸 캐롤라이나의 학비를 대느라 지니와 그녀의 아들 리치를 점점 등한시하며, 딸의 학비 때문에 리치의 심리 상담을 위한 치료비조차 주지 않으려고 한다. 지니는 사랑이라는 환상을 좇는 과정에서 첫 번째 남편을 배신했고, '믹키'라는 새로운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험티까지 배신했다. 캐롤라이나 역시 전 남편과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지만, 결국 도망쳐 나왔고 그 과정에서 FBI에게 갱단의 비밀을 누설하는 바람에 킬러에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지니의 아들 '리치' 또한 계속해서 여기저기에 불을 지르는 것도 자신이 처한 답답한 현실 속에서 환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환상'과 '현실'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에서의 내 삶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기에, 우리가 자연스레 꿈꾸게 되는 것이 환상이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현실'과 '환상'은 결코 별개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둘은 같은 것이다.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던 환상이 점점 당연해지고 익숙해지며, 무료해지면 빛이 바랜 그 환상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니까. 그 둘은 마치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한 명의 사람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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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인 <원더 휠>은 '코니 아일랜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대관람차의 이름이다. 대관람차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순간,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는 순간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즐거움을 내뿜는다. 하지만 그 순간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결국 땅으로 내려와야 하고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돌고 도는 대관람차 '원더 휠'처럼 '환상'과 '현실'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놀이 공원 그 자체도 역시 그렇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화려함으로 가득 찬 놀이 공원의 매력은 '현실과의 단절성'에 있다고 했지만, 그곳도 결국은 현실 속이다. 놀이 기구를 타고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이상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장 줄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즐거움은 약 1분 남짓. 그렇게 환상 속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이 끝나고 놀이 공원 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잿빛의 2호선 잠실역과 마주하게 된다. 즐거움만 가득한 것 같은 놀이공원도 '원더 휠'처럼 현실과 환상 사이를 계속해서 오고 간다.


하지만 환상의 빛에 취해 있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잊는다. 환한 빛이 우리의 시야를 가려버리기 때문에. 영화 <원더 휠>의 등장인물들도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채 환상을 좇게 되고, 그것은 결국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영화 <원더 휠>의 우디 앨런 감독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긴박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누군가에게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꿈과 환상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척박한 황무지일 뿐일 텐데. 이 글에서 환상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는 나 조차도 달콤한 환상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있다. 당신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루하기만 한 현실도 과거 언젠가는 밝게 빛나던 '환상'이었다는 것. 그 현실이라는 것이 내 인생에서 내가 경험했던 '환상'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적어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현실이란 빛을 다 소진하고 버려진 쓰레기 더미일 뿐일 진데, 그렇다면 우리는 더 밝게 빛나고 더 달콤하지만 결국엔 우리를 더 깊은 파멸로 이끌 '환상'을 찾아 헤매게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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