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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r 29. 2018

'스타일'이 곧 내 철학이 되길

<내가 좋아하는 것 : 패션>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인 손석희 사장님도 2만원 짜리 카시오 시계를 차고 다니신다지 않는가. 나는 그 시계야말로 손석희 사장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청렴함,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해야하는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할 '실용성'. 이 모든 것들을 손석희 사장님의 2만원 짜리 카시오 시계는 말해주고 있다.
 나도 손석희 사장님의 카시오 시계처럼, 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들로 내 '스타일'을 말하고 싶다. '스타일'은 곧 '철학'이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내가 입은 옷과, 내 스타일이 잘 표현해주길 바란다. 내게 삐까뻔쩍한 명품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그런 것들로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한다면, 난 그저 '허영심'에 사로잡힌 속물일 테다.  

 

 난 내 인생에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약 10년정도의 기간 동안을 '빠숑 전국 시대'라 부른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취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으며 그저 엄마가 사주는 옷이나 입고 다녔던 나는 고2 시절 '멋'이라고 하는 것에 눈을 떴다. 멋에 눈을 뜬 나는 이것 저것 멋진 옷들을 찾아 다녔다. 물론 내게 '멋'이란 '과시욕'이었다. 내가 이렇게 옷을 잘 입는다는 걸, 이 정도로 감각이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몸부림. 그래서 나는 인터넷과 잡지를 뒤지며 유행하는 옷과 아이템을 찾았고 사면 무조건 다 쓰고, 신고, 입었다. 그 옷이 내게는 어울리는지, 아니 그 전에 사이즈가 맞는지도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게 '멋'이고, '스똬일' 아닌가. 


 특히 대학 시절은 멋을 향한 여정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동대문 밀리오레, 두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9년 당시는 스키니 진으로 대표되는, 몸에 딱 붙는 핏한 옷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가 약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호객이 엄청나게 심했던 동대문 옷가게 형님들의 말솜씨는 너무도 유려했다. 이리저리 나를 꼬셔대는 형님들의 말에 넘어가면 'X끼니 진'은 어느새 '스키니 진'이 되어 있었고, 어깨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작았던 블레이저는 '세미 정장'이 되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무대 의상을 연상케 하는 금장 단추가 달린 자켓도 입고 다녔다. 친구들은 그 옷을 '마잭 자켓'이라고 불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대학 새내기 시절 하루가 멀다하게 부어라 마셔라 하던 나는 술배가 만삭의 임산부마냥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 당시 유행이었던 몸에 핏하게 딱 붙는, 스판이 짱짱한 셔츠가 얼마나 작았겠는가. 그런데도 그게 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곧이라도 단추가 터져나갈 듯한 셔츠를 배에 힘을 잔뜩 줘가며 꾸역꾸역 입고 다녔다. 맨정신일 때야 괜찮은데, 술에 취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풀리며 배까지 힘이 풀렸다. 5초만에 배에는 출산 직전의 태아가 들어섰고 셔츠 단추는 점점 몸집이 비대해지는 그 태아를 힘겹게 막아섰다. 그날 내 배를 본 모 선배는 다음 날 내게 '남방학살자'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수많은 죄없는 남방들을 희생시킨 나는 남방들의 '히틀러'였다. 내가 사들고 들어오는 옷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왜 그 때는 몰랐을까. 패완얼과 패완몸이라는 인생의 진리를. 


 하지만 창피한 그 시절의 내 모습에서도 내게는 얻을 교훈이 있었다. 나를 옷에 맞추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 나는 그동안 모든 옷에 내 스스로를 그에 맞는 사람으로 세뇌하려고, 만들려고 했다. 당연히 모든 옷이 내게 어울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행 착오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나를 나로 만들어줄 수 있는 스타일을 찾아나갔다. 그에 더불어 무조건 싸다고, 예쁘다고 다 사지 않고 어떤 옷이 좋은 옷이며 내가 오래 입을 옷인지 따져볼 수 있는 눈도 생겼다. 어줍잖은 과시욕에서 시작해 '마잭 자켓' 같은 말도 안되는 옷들까지 입어보는 그 과정들은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창피했던 기억들은 지금에 와서 친구들과 술 한잔에 꺼내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정말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청년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기 발견의 과정이 아닐까..! 


 그렇기에 패션은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허세'와 잘 연결된다. 그런 면에서 내가 느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 옷으로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빠숑 전국 시대'의 어느 중간엔가 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기도 했다. 비싼 옷이 최고다, 좋은 브랜드가 그 사람의 품격을 높인다. 우리 모두는 쉽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 누구보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니까. 또 요즘은 자존감이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고, 그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파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는 시절이니까. 그래서 쇼핑과 패션을 통한 과시욕은 요즘 우리 사회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쉽고, 보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분수에 맞는 옷을 입고 다니라는, 경제 관념을 가지라는 꼰대같은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나를 옷에 맞추려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옷에 나를 맞추려고 하면, 달콤한 과시욕에 취해 어느 순간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내게 맞지 않는 삐까뻔쩍한 브랜드의 옷이나 악세사리를 하고, 사람들이 내가 그에 걸맞은 사람인 것처럼 봐주기를 바라게 된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어울리고, 그것이 자신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이게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에게 그렇게 찾은 자존감과 행복감은 너무도 일회적이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하루가 끝나고 집 현관에 섰을 때, 엄청난 공허함에 휩싸이게 된다. 어떤 옷이 자신에게 맞는 '진실한' 옷인지, 거짓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그렇기에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에도 쉽게 빠진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인 손석희 사장님도 2만원 짜리 카시오 시계를 차고 다니신다지 않는가. 나는 그 시계야말로 손석희 사장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아이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청렴함,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해야하는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할 '실용성'. 이 모든 것들을 손석희 사장님의 2만원 짜리 카시오 시계는 말해주고 있다. 


 나도 손석희 사장님의 카시오 시계처럼, 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들로 내 '스타일'을 말하고 싶다. '스타일'은 곧 '철학'이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내가 입은 옷과, 내 스타일이 잘 표현해주길 바란다. 내게 삐까뻔쩍한 명품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그런 것들로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한다면, 난 그저 '허영심'에 사로잡힌 속물일 테다. 


 어차피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해야만 한다. 하지만 '돈'으로 말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모든 것을 '돈'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정말 스타일리쉬한, 멋진 사람은 온갖 비싼 것들로 치장한 사람이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와 자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정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그 결과를 '스타일'로 보여주는 사람이 정말로 '스타일리쉬'한 사람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패션'을 바라보는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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