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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r 12. 2018

나의 삶

<내가 좋아하는 것 1>


 나의 삶이라. 첫 주제부터 너무 추상적이다. 하지만 추상적이라고 해서 뜬 구름 잡는 듯한 주제도 아니다. 나 스스로 삶의 정체성을 찾고 사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주변의 사람들, 다양한 매체들에서 귀에 인이 박히도록 얘기하지 않는가.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무언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대로 행하기 너무 힘든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으니까. '내 삶의 정체성'을 아는 것. 말이 쉽지 역시나 너무 어려운 주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삶의 정체성이란 죽어서야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살아서는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어느샌가 이리저리 무수히 변해가는 것이 삶이고, 인생인데. 


 그렇다. 난 내 삶을 사랑한다. 저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자그마치 29년의 시간이 걸렸다. 내 삶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건강하지 못했던 몸 때문에 남들은 인생에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큰 수술을 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여러 번 했고, 성장판이 다친 내 오른팔은 지금도 자라지 않는다. 


 팔을 늘리는 수술을 했지만, 지금도 내 왼팔과 오른팔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큼 차이가 난다. 왼팔과 오른팔의 모습은 지금까지 평생을 남과 비교만 해온,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한 내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 같다. 왼팔은 평범하고 일반적이게 사는 사람들, 오른팔은 나. 부모님께서도 내게 넌 남들보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뭐든지 두 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두 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누구를 기준으로 두 배 더 노력하라는 말인가. 그 말은 그저 내게 항상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고, 그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을 비교하는 최고의 잣대는 '공부'다. 몸은 불편해도 남들보다 머리는 나쁘지 않았는지 다행히 공부는 곧잘 했다. 하지만 많은 어머니들이 바라는 것인 '언제나 따놓은 당상인 전교 1등'이나, 꿈의 무대인 '서울대'에 무리 없이 갈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공부 때문에 부모님 속을 크게 썩인 적은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했던 이유는, 새로운 걸 알아가는 걸 좋아하는 강력한 '호기심' 때문인 듯하다. 문학 시간에는 새로운 문학작품을 읽는 게 재미있었고, 국사나 세계사 시간에 듣게 되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로 난 호기심을 충족했다. 음악이나 영화, 책 같은 문화생활도 좋아했다. (수학은 들어도 이해가 안돼서, 학창 시절 내내 잘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게 '악바리'같은 면이 없는 것을 항상 아쉬워하셨다. 그것이 '서울대'에 가는 친구들에 비해 내게 부족한 2%라고 말씀하셨다. 특유의 독하고 악바리 같은 성격으로 서울대에 간 작은 고모의 큰 딸은 매번 적절한 내 비교 대상이 되어 주었다. 그런 악바리 같은 면이 없기에 피시방에서 몇 시간씩 밤을 새우면서 게임을 해서 캐릭터를 키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불편한 몸 때문에 친구들과 같이 축구나 농구 같은 걸 하는 건 꿈 깨야 했다. 


 그러니, 난 한 번도 내 인생을 제대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나보다 뒤처져 있어 보이는 사람은 세상에 없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더라도 어떤 친구는 나보다 축구를 훨씬 잘했고, 게임을 훨씬 잘했다. 오히려 내가 그런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히는 그 잠깐의 순간 동안 난 그들보다 나은 사람일 수 있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상황에 나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공부마저도 나보다 나은 친구들이 세상에 수두룩 빽빽이지 않은가. 아무리 내 왼팔 길이를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손가락 한 마디'만큼은 평생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내 인생 자체가 자라지 않는 짧은 오른팔이었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쳇바퀴 도는 '경쟁'의 연속인 입시 지옥을 벗어나 처음 경험한 캠퍼스 생활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저 공부로만 사람을 평가하던 세상에서 벗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그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대학에도 서열은 있었다. 학점이 높은 친구가 있고, 낮은 친구가 있었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선배가 있었고 그렇지 못한 선배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그게 다가 아님을 알게 해줬다. 성적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축하하느라, 위로하느라, 아니면 그저 심심해서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을 마셨고, 그 과정에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나눴다. 평생 다른 사람들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 도 없을 듯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을 말하라고 한다면, 감히도 난 주저 없이 대학 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학창 시절에도 안 왔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20대 대학 시절에 보내며, 그때 마신 많은 술병들과 학점을 맞바꾸며 내가 느낀 것은 단 하나다. '세상에 완벽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말 세상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 모든 면에서 나아 보이는 듯한 사람도 술로 한 겹 한 겹 벗겨낸 속에는 자신만의 상처와 걱정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로 힘들어 보이는데도,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완벽한 줄만 알았던 왼팔에게도 걱정은 있었고, 스스로의 모습 자체를 사랑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오른팔도 있었다.


 그러자 내가 내 삶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완벽해 보이는 사람조차 자기 삶을 저렇게 사랑하지 않는데, 난 왜 그런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스로 패배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걸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저렇게 열심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악바리 같은 면이 없다고 난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스스로 원하는 모양으로 살면 그게 내 삶인 것이었다. 스스로 원하는 모양으로 살기 위한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새벽 두 세시, 술자리가 정리되고 이어지는 진솔한 대화들 속에 난 이렇게 인생의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아직 내가 완벽하게 내 삶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난 이제서야 내 인생의 목표가 뭔지,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아직 이루고 싶은 목표가 많고,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플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결국 죽기 전까지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테고, 평생 그것에 배가 고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난 남의 삶의 모습을 나 스스로와 비교하며 날 불행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다른 사람이 지금 일해서 얼마의 돈을 벌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고, 얼마나 많은 여행을 다니는지, 이런 구태의연한 것들로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이제 내게는 나만의 이상과 철학이 있고,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다. 내가 비교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그게 바로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쓰고 나니 내가 내 삶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아마 내가 내 삶을 왜 좋아하는지 얘기했다기보다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내 삶의 윤곽이 점점 더 드러날 테고,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삶을 왜 좋아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하겠다. 난 정말, 내 삶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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