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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y 10. 2018

사랑은 미친 짓이다

영화 <Like Crazy>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미친 척'(Like crazy) 했다. 서로에게 미쳐 있지도 않으면서. 지금의 자신을 미치게 하는 다른 대상이 있으면서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제이콥과 애나는 한 번도 헤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 있음이, 행동으로 말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싸우기도,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미쳐 있는 척 했다. 좋은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를 위해 노력했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하게도 버텼다. 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마약에 취한 척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지 않을까. 


 사랑은 미친 짓이다. 영화 제목으로도, 일상에서도 흔히 많이 하는 말이다. 보통 실연의 아픔을 겪고 나서 많이 생각하고,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 문장의 사랑과 미친 짓, 저 두 단어를 거꾸로 이렇게 적어보면 어떠한가. 마치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직 두 사람'에서 상투어나 명언을 뒤집어 새로운 말로 만드는 버릇이 있는 주인공의 오빠처럼.


미쳐야만 사랑할 수 있다. 


 그렇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것은, 미쳐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아무 문제 없던 한 인간의 머리 속 모든 우주에 갑자기 '너'라는 이유가 생긴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너'와 연결된다. 평소라면 죽기보다도 싫었던 일들이, 갑자기 생겨난 '너'라는 이유 덕분에 가능해진다. 사람은 절대로 잘 변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항상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인간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 딱 한가지, 그게 바로 '사랑'이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왜 변하겠는가, 미쳤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 <Like Crazy>은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하나의 격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Crazy'가 아니다. 'Like Crazy' 즉, '미친 것 처럼'이다. 그게 뭐라고. 그저 미친 듯이 서로 사랑하자는, 뻔한 말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난 뻔해 보이는 이 제목이 무엇보다 이 영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LA의 어느 대학에서 만난 미국 남자 '제이콥'과 그 곳에 교환 학생으로 온 영국 여자 '애나'의 사랑 이야기다. 나도 대학 시절 참 많이 봤다.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남친, 여친과 수업에서 눈이 맞아 사귀는 것.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사랑 이야기는 세계 어디든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특히 교환 학생과의 연애는 시한부나 마찬가지 아닌가.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한 쪽은 떠나야 한다. 제이콥과 애나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학기가 끝나고 애나는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가. 사랑도 비자 만료 시한에 맞춰 함께 사그라들어주면 좋으련만..

 


 헤어짐이 눈 앞으로 다가오자 힘들어 하던 애나는 비자가 만료된 후에도 제이콥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다. 비자가 만료되면 미국으로 되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몇 개월만 영국에 있다가 미국에 돌아오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아아, 사랑은 이토록 미친 짓이다. 사랑하는 '너'라는 이유가 그 모든 비이성적이고 미련한 행동을 스스럼 없이 행하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그들은 그 때 그만큼 서로에게 그렇게 미쳐 있었다. 


 하지만 애나가 영국에 잠시 다녀와야 할 일이 생기게 되고, 애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이 때 했던 그 '미친 짓' 때문에 미국으로의 입국을 거부당한다. 의도치 않게 롱디 커플이 되어버린 것.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만날 수 없는 이유가 그들이 너무도 사랑해서, 서로에게 미쳐서 행했던 일 때문이라니.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뻔하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점점 시들어가고, 그들 곁에 새로운 사람이 생겨난다. 그 속에서 감독은 사랑의 본질을 묻는다. 과연 사랑은 정신적인 것인가, 다분히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것인가. 제이콥과 애나가 장거리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넘어 굳건히 그들의 사랑을 지켜낸다면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고,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옆에 있는 누군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다면 사랑은 다분히 감정에 이끌리는 것이고, 육욕적인 것일까? 



 영화는 사랑을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미쳤다'는 말이 바로 사랑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인류가 탄생 이래 아직까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가장 어려운 난제가 바로 '사랑'임을 잘 드러낸다. 영화 내내 제이콥과 애나는 볼 수 없는 서로의 상황과, 지금 옆에서 각자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고, 힘들어한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사랑에 미친 것이 아니라, 그냥 미쳐 버린다. 사실 말이 좋아 위로지, 바람 피는 것 아닌가. 함께 영화를 본 여자친구는 이들의 행동에 크게 분개했다. 


 아까부터 계속 말하고 있지만, 사랑은 '미친' 짓이다. 그런데 미치기 위해선 그 대상이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대학 시절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던 친구 한 명은 술에 취해 멜랑꼴리한 기분으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네가 아니라, 그 때의 너였을 텐데."


  두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 한, 서로에게 계속해서 미쳐 있는 한 그들은 계속해서 '그 때' 안에서 함께다. 사랑은 시간과 공간 모두의 영향을 받는다. 서로가 함께 있을 수 없을 만큼 공간이 멀어질수록, 우리가 사랑했던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그 시간에서 멀어질수록, 사랑도 멀어진다. (뭐 물론 옆에 두고도 바람을 피는 인간 말종들은 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 부르지 말도록 하자. 그 자체가 이미 미쳐있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사랑이 '지금 너무 좋아'가 아니라 '그 때 우리 참 좋았는데'가 되어가고, 서로가 살을 부빌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지게 되면, 점점 우리는 미친 '광기'의 상태에서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간다. 

 

 제이콥과 애나도 그랬다. 서로가 처한 현실과 일상에 찌들어 이들은 점점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상태로 되돌아갔고, 애나를 스스로 불법 체류자가 되게 할 만큼 강력하게 둘 사이를 묶었던 사랑의 힘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때'를 잊지 못했다. 너무나도 행복했던, 서로에게 미쳐있던 그 때를. 


 그래서 그들은 서로에게 '미친 척'(Like crazy) 했다. 서로에게 미쳐 있지도 않으면서. 지금의 자신을 미치게 하는 다른 대상이 있으면서도.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제이콥과 애나는 한 번도 헤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 있음이, 행동으로 말로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싸우기도,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미쳐 있는 척 했다. 좋은 말로 하면 그들은 서로를 위해 노력했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하게도 버텼다. 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마약에 취한 척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지 않을까. 



 결국 그들을 괴롭 히던 비자 문제는 몇 년만에 해결되고, 둘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결국 함께 하게 된 제이콥과 애나의 표정은 참으로 알쏭 달쏭하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들의 표정. 그들의 사랑은 '크레이지'가 아니라 '라이크 크레이지' 아니던가. 서로에게 '미친 척'하며 버텨오던 그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었지만, 서로에게 '미쳤던' 그 때는 지나가 버리지 않았던가. 영화는 그렇게 끝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게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영화를 열린 결말로 끝낸 것은, 이 영화가 한껏 끌어올려 놓은 관객들의 감성과 감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오래도록 곱씹을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그것이 이 영화를 뻔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게 만들었고, 마지막까지 높은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다.  대체 어떤 게 옳은 사랑일까. 몸이 멀어지며 마음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서로에게 생긴 다른 사랑에 충실한 것이 해피 엔딩인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맞서나가며 결국 함께하게 되는 것이 해피 엔딩일까. 관객이 어떤 관점을 가졌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해피 엔딩이 될 수도 있고 새드 엔딩이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랑에는 답이 없다. 그렇기에 나이가 반 백살이 된 중년들도 로맨스에 빠지고, 사랑에 우는 것일 테다. 이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머리 속으로 자신만의  '제이콥'과 '애나'를 상상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결말을 지어주지 않아도, 그걸로 된 것이다. 어차피 답이 없는 사랑, 자신이 정의 내리는 그것이 바로 사랑일 테니까. 그저 확실한 건, 그것이 미쳤던 미친 척이던,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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