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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May 24. 2018

그녀, 닻을 올리다

영화 <스탠 바이, 웬디>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안전이라는 말을 핑계로, 보호라는 말을 핑계로 
한 사람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항해의 닻을 올릴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보호가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의 항로까지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만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엔터프라이즈 호의 시동을 걸고 거대한 인생이라는 우주를 향해 출항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영화 <스타 트렉>에서 스팍의 직책도 함장이 아닌 부함장이다. 어쩌면 그들의 보호가, 삶 속에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그녀 스스로를 함장이 아닌, 부함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항해와 여정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목적지인 '죽음'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온 '과정'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어떤 여정을 했는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지나 온 그 '항로'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 이르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며칠의 여정 동안 웬디가 얻은 것은 그저 그녀가 응모한 한 편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녀가 거쳐온 그 길과 공간들,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한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앞으로 더 길고, 더 험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여정들을 헤쳐나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을 비유하는 가장 좋은 대상 중 하나는 바로 '항해'다. '탄생'에서 시작해 '죽음'에 이르는 항로를, 끝없어 보이지만 결국 끝이 있는 시공간을 헤쳐 나가 목적지에 다다르는 항해. 마치 최후의 개척지인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는 SF 드라마 <스타 트렉>의 엔터프라이즈 호처럼.


 영화 <스탠 바이, 웬디>는 SF 드라마 <스타 트렉>과 떼려야 뗼 수 없는 영화다. 주인공인 '웬디'(다코타 패닝)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을 만큼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이고, 영화 내내 <스타 트렉>에서 파생한 대사와 설정이 등장한다. 



 웬디는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어 가족을 떠나 보호 시설에서 생활하는 소녀다. 보호 시설의 관리자인 스코티가 빡빡하게 짜 놓은 스케줄 속에서, 치료를 받으며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인기 드라마인 <스타 트렉>의 시나리오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트렉 '덕후'인 웬디는 시나리오를 응모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뿔싸, 시나리오 공모전의 마감 날짜는 2월 16일이지만 지금은 13일 토요일이고 내일 14일은 일요일이며, 15일은 공휴일이다. 절대 시나리오가 제시간에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우편으로 도착할 수 없는 상황. 그녀는 용감하게도 시나리오를 직접 제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 이르는 거대한 여정에 나선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 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웬디에게 그것은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그녀를 보호하는 센터장 스코티는 항상 그녀에게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마켓 가'를 건너가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도시는커녕 집 앞 동네를 벗어나는 것조차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아지 '피트'와 함께 호기롭게 길을 나선다. 덕력을 가득 담아 정성스레 쓴, 그녀의 노력이 깃든 시나리오를 꼭 내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 웬디는 그녀의 언니인 '오드리'에게 자신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짜인 틀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답답한 시설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 속 웬디의 모습은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엔터프라이즈 호의 부함장, 스팍과 매우 닮아 있다. '벌칸'이라는 외계 종족인 스팍은 항상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어떤 문제이든 강박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인지적인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자폐성 장애를 앓는 웬디와 닮아 있다. 그리고 사실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외계인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담이지만, <스타 트렉>에서 엔터프라이즈 호가 소속되어 있는 함대인 '스타플릿'의 본부도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LA로 향하는 웬디의 여정이 엔터프라이즈 호의 항해와 쉽게 오버랩되는 이유다.)



  그런 웬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LA로 가는 길에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사건과 마주한다. 마치 거대한 우주 함선을 타고 미지의 우주 속 행성들과, 외계 종족들을 만나는 스팍과 엔터프라이즈 호의 승무원들처럼. 목에 걸려 있는 그녀의 수첩에는 'LA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티켓을 사야 한다' 등등 일상생활에서 알게 된 잡다한 것들을 적혀 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해 온 '항해'의 기록이다. <스타 트렉>에서 커크 선장이 매일 빠짐없이 기록하는 항해 일지처럼. 


 LA로 향하며 그녀는 못된 사람을 만나 돈을 도둑맞기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도움을 얻기도 하며, '클링온 어'를(?) 할 줄 아는 경찰을 만나기도 한다. 그 여정을 보며 관객들은 웃었고, 감동했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이제는 지루하기까지 한 세상인 탓에 이젠 느끼기 쉽지 않지만, 웬디에게는 지구 밖만이 우주가 아니라,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미지의 대상들로 가득한 거대한 우주다. 마켓 가를 건너는 순간의 웬디에게서 설렘과 동시에 태양계를 막 벗어난 것과도 같은 막막함과 두려움도 느껴지는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쫓겨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네에 다다르기도 하면서 LA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웬디는 스스로도 점차 성장해 간다. 



 웬디를 보호하던 사람들인 스코티와 오드리는 처음엔 무턱대고 시설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를 그저 걱정하고 초조해하기만 한다. 웬디의 언니인 오드리는 웬디를 마음 깊이 사랑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우기는 웬디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용기 있게 걸어나가는 그녀의 여정을 뛰 쫓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LA로 가면서 겪는 여러 위기의 순간, 웬디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 속 스팍의 대사를 되뇐다. 


 Captain, There is only one direction in which to go : Forward.
함장님, 가야 할 방향은 논리적으로 하나뿐입니다 : 전진.


 어쩌면 스코티와 오드리는, 안전이라는 말을 핑계로, 보호라는 말을 핑계로 한 사람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항해의 닻을 올릴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웬디가 이성을 잃고 흥분할 때마다, 스코티는 그녀의 흥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 웬디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다. 


 Stand by, please Stand by Wendy.
스탠 바이 해, 제발 스탠 바이 해 웬디.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이 말은 '제발 스탠바이 해, 스탠바이 해 웬디'라고 영화에선 번역했지만, Stand by는 아마도 기다리라는 표현이었으리라. 또한 Stand by는 방송에서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든 스태프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의 신호이기도 하다. 물론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보호가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의 항로까지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준비만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엔터프라이즈 호의 시동을 걸고 인생이라는 거대한 우주를 향해 출항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녀는 출항해야 했다. 닻을 올려야 했다. 언제까지고 스탠바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영화 <스타 트렉>에서 스팍의 직책도 함장이 아닌 부함장이다. 어쩌면 그들의 보호가, 삶 속에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그녀 스스로를 함장이 아닌, 부함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항해와 여정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목적지인 '죽음'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 온 '과정'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어떤 여정을 했는지 말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지나 온 그 '항로'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에 이르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며칠의 여정 동안 웬디가 얻은 것은 그저 그녀가 응모한 한 편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녀가 거쳐온 그 길과 공간들,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한 그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앞으로 더 길고, 더 험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여정들을 헤쳐나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93분간 펼쳐진 웬디의 모험을 바라보며, 자신감에 가득 찬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나도 감동과 함께, 새로운 자신감까지 충전할 수 있었다. 영화 <스텐바이, 웬디>는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인생이 주는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항로를 힘차게 헤쳐나갈 새로운 동력이 되어줄 영화가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탐험하고 있는 우주선과 마찬가지다. 우주선들이 겉모습이 똑같다고 항로까지 같은 게 아닌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인생의 여정까지 똑같지는 않다. 웬디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세상은 하나하나 탐험하고, 알아가야 할 미지의 세계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아득한 우주를 헤쳐나가는 엔터프라이즈 호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장수와 번영을(Live long and Pro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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