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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원 Jul 05. 2018

그저 톱니바퀴가 아님을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이 리뷰는 브런치 무비패스가 제공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청춘의 시절을 지나쳐 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청춘 시절에 비축한 생각과 철학으로 여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그 청춘을 한 곡의 노래로, 한 편의 글로써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청춘을 수놓았고, 그 청춘을 어렴풋하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을 창조한 이들은 실로 하나의 세상을 만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영국은 그의 것이다.
BBC는 2009년 한 기사에서 그를 현존하는 위대한 브리티시 아이콘으로 칭했다.
한 때 사람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괄시하던 그를 말이다.
그런 그의 찌질한 기억은 그가 쓴 수많은 가사들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가 만든 노래에 수많은 영국의 젊은이들과 세계의 젊은이들이 울고 웃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그렇게 영원히 사람들의 머리 속에, 역사 속에 남았다.
그리고 영국은 그의 것이 되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신 분이라면 분명 이 장면을 기억하시리라.

smiths?

 영화의 주인공인 톰(조셉 고든 레빗)과 썸머(주이 디샤넬)의 엘리베이터 씬. 전혀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서 있던 썸머가 갑자기 톰에게 말을 걸고, 둘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 둘을 이어준 것은 무엇이었던가.


"You have a good taste of music."
"음악 취향 좋네요."

 

 고요한 엘리베이터 안을 나지막히 채운 것은 톰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던 작은 음악 소리였고, 썸머의 귀는 자연스레 그 음악에 반응했다. 아름다운 썸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던 톰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다름 아닌, 자신과 같은 그녀의 음악 취향 덕분에.

 

 그 이유는 매우 자명하다. 노래 한 곡과 영화 한 편에는 하나의 '세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그것을 만든 사람의 내면 세계와 연결된다. '이 노래 좋다.' '이 영화 좋다.'라는 말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 작품을 통해 작가의 내면 세계가 나의 내면 세계와 합치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톰과 썸머는 그 노래 한곡이 매개가 되어 서로의 내면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그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음악 취향, 독서 취향 등 예술에 관한 취향은 다른 이와 관계를 맺기 가장 쉬운 매개체이다. 이리저리 나를 설명하려는 구구절절한 말 여러 마디보다,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 좋아하는 영화가 그 사람의 내면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기 훨씬 쉽다.

 또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저 흘러간 옛 유행가 한 곡이 어느새 자연스레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 놓는 마법을 우리는 한 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다.


'To die by your side is such a heavenly way to die'
'당신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바로 최고의 죽음이야'

 

 썸머의 귀를 움직인 건 80년대 영국 인디씬을 강타하고, 이후의 브릿팝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전설적 밴드인 '더 스미스(the smiths)'의 대표곡 중 하나인 'There is a right that never goes out'의 노랫말이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소개할 진짜 영화인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이 노래의 가사를 만든 영국 인디 음악의 영원한 아이콘, 모리세이가 '무명의 천재'로서 살았던, 찌질한 청춘의 기억이다.


 후에 모리세이가 될 영화의 주인공, 스티븐(잭 로던)은 감수성이 넘치지만, 너무나 내성적인 평범한 영국 청년이다. 직업 없이 NME(New Music Express)라는 영국 인디 잡지 독자 기고란에 글을 쓰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는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기만 한 맨체스터의 인디 씬에 환멸을 느끼며, 밴드를 결성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미리 전화로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한 기타리스트를 약속 장소에서 보고도 부끄러워 말조차 걸지 못하고 지나치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칠푼이다.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의 첫 장면은, 이리저리 굽이치며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맨체스터를 흐르는 어웰 강의 모습이다. 그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스티븐의 혼잣말.


인생은 그 따분함으로 볼 때 피할 만 하다.
늘 원했던 세계에 닿을 때까지 잠드는 게 나을까?

거긴 지금 이 세상보다 나을까?

 

 스티븐은 스스로를 '무명의 천재'라 칭한다. 자신이 뛰어난 예술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답답함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따분하기만 한 그의 인생과 달리, 그의 머리 속은 어떻게든 표출해내고 싶은 그의 내면 세계가 아우성치고, 발버둥친다. 마치 굽이치는 어웰 강의 모습처럼. 하지만 그의 내성적인 성격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기를 망설였고,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를 알아봐주는, 그게 원하는 세계에 닿을 때까지 잠들고 싶었다.

 

 세상은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 글쪼가리나 찌끄리는 스티븐을 태만하고, 나태한 놈이라고 했다. 요즘 많이 쓰는 표현인 '잉여'라는 말처럼.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취직을 하지 않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일을 시작한 세무서에서도, 지각과 결근을 일삼는 스티븐에게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왜 남들처럼 잘 할 수 없냐고. 왜 남들처럼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지 못하는지, 왜 다른 톱니바퀴들처럼 효과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 못하는지 말이다. 동전 한 푼 벌지 못하면서 띵가 띵가 기타나 쳐대고, 타자기 앞에 앉아 멍하니 벽만 응시하는 스티븐을 보며 그의 누나와 아버지, 가족들 조차도 그를 머저리라고 말하고, 무시한다.


 하지만 사실 스티븐은 전혀 태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방 안에서, 거리에서 항상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글을 쓰고 또 썼다. 아무도 봐주지 않았지만, 그는 홀로 차근차근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와 제임스 딘을 동경한 스티븐은 방에 그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영화 초반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머리를, 후반에는 제임스 딘의 머리를 하고 다닌다. 스티븐은 그들은 존경하며, 그들처럼 자신도 자신만의 세계를 세상에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스티븐은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 속에 점점 자신감마저 잃어간다.


"세상은 나같은 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야."


 

 '린더 스털링(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은 그런 스티븐에게 운명처럼 나타났다. 마치 '500일의 썸머'의 톰과 썸머처럼, 둘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취향이 비슷했다. 둘은 셰익스피어의 시구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린더는 스티븐의 머릿속을 휘몰아치는 그의 예술적 재능과 감성을 알아봤고, 스티븐에게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보라고 용기를 줬다. 어둠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며, 그 안에서 혼자 머리를 싸매지 말라고 말했다. 스티븐은 망설임 없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린더의 모습을 보며 점차 두려움을 이겨내기 시작한다.


 스티븐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청춘은 하나의 예술이다.

  

 그렇다. 청춘의 시절을 지나쳐 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청춘 시절에 비축한 생각과 철학으로 여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그 청춘을 한 곡의 노래로, 한 편의 글로써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청춘을 수놓았고, 그 청춘을 어렴풋하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을 창조한 이들은 실로 하나의 세상을 만든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영국은 그의 것이다.

BBC는 2009년 한 기사에서 그를 현존하는 위대한 브리티시 아이콘으로 칭했다.

한 때 사람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괄시하던 그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찌질한 기억은 그가 쓴 수많은 가사들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가 만든 노래에 수많은 영국의 젊은이들과 세계의 젊은이들이 울고 웃었다.

그의 노래는 그렇게 영원히 사람들의 머리 속에, 역사 속에 남았다.

그리고 영국은 그의 것이 되었다.


  한 편으로 스티븐은 운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스티븐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 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 대신 그의 몫까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해준 또 다른 '톱니바퀴'의 희생이 없었다면, '위대한 영국의 아이콘'은 탄생할 수 없었다.


"Create Your Own World. You're the only version of yourself."
"너만의 세상을 만들어. 오직 너 자신만이 유일한 너야."


 그가 태만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만의 꿈과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어머니가 없었다면 스티븐은 결국 지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그저 부품으로 쓰이다 사라질 '톱니바퀴'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그가 말한 대사처럼 평생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이런 생각 해 봤어요?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역사에 남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을 통해 한 천재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무명의 천재'가 아닐까. 자신만의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내면이 결국 내 생활 방식과, 삶의 철학을 결정하는 것이니까. 꼭 예술이라는 분야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재능'이라 말하는 스스로 내면에 담긴 것들을 표출해낸 사람을 우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천재'라고 말한다. 그러기엔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운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명의 천재'로 살아가고 있을 뿐.


 그러고 나니 이 영화에서도 지금의 나와, 지금을 함께 사는 이 나라의 청춘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세대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인 시대였고,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들이 일구어놓은 기름진 땅 위에서 꿈을 먹고 자란 세대다. 단순히 돈만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스티븐처럼 세상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루고 싶고, 내 내면에 꿈틀거리는 것을 세상에 표출하고 싶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천재'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요즘은 그냥 '톱니바퀴'가 되는 것마저도 어려운 시대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우리 청춘은 그 각각의 모습과 존재만으로 하나의 '예술'이다. 모리세이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역사에 족적을 남기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채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리세이가 청춘의 아이콘이 되어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그가 글로써, 노래로써 보낸 신호에 응답한 수많은 이들과, 그들 마음 속의 내면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처럼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는 박제되어 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역사에 남지 못해도, 시대의 아이콘이 되지 못해도 스티븐의 어머니의 말처럼 나만의 내면 세계를, 나만의 세상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나지막히 생각하며 극장을 나왔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천재라는 사실을 나 하나만이라도 알아봐줘야 하진 않을까. 내 안에 굽이치는 그 강물을 나 하나는 느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그 내면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살았던 한 시절을 대표하고 있을 테니까. 그걸 모른채 그저 톱니바퀴처럼 살다가 마치는 일생은 너무 억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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