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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Aug 08. 2020

냉면

 엄마는 물냉면을 시켜달라고 했다.

 구식 선풍기로는 더위를 달래기 어려웠나 보다. 한 시간 가까이 좁은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개털을 깎인 뒤였다. 불 앞에 서서 딸년의 점심을 차려주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날씨다. 엄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엄마뿐만이 아니다. 피부가 뒤집어진 우리 집 반려견의 몰골도 처참하다. 15년도 더 산 노령견이다. 엄마는 털을 깎으면서 내내 신세한탄을 했다. "내가 왜 이걸 키워가지고."


 엄마의 탄식은 개에 대한 미안함이 커질수록 더 짙어졌다. 망가진 피부는 털을 깎이면 깎일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엄마는 끙끙댔다. 말을 하지 못하는 개보다 더 끙끙거렸다. 나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죄책감,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작은 짐승에 대한 애처로움 같은 것들이 화장실의 공기를 후끈하게 데웠다. 개를, 아니 엄마를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나는 얼른 물냉면이 도착했으면 했다.


 오늘따라 오토바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답은 늘 한결같다. '이미 출발했어요.' 그 멘트를 듣고도 한참 뒤에야 식초 냄새를 풍기는 배달통이 도착했다. 처음은 역시 국물이다. 입에 닿자마자 오그라드는 맛. 들큼하고 짭짤한, 누구나 다 아는 그 맛. 어릴 적 엄마의 미용실 쪽방에서 먹던 맛과 똑같다. 변한 것이 없다. 이건 기억이 아니라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맛에 대한 기록. 수첩 몇 장만 뒤지면 눈 앞에 생생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흐릿해질 수가 없다고.     


 엄마는 내가 아홉 살 때부터 미용을 배웠다. 자격증 시험에서 세 번인가 떨어지고 네 번째에 붙었던가. 호기롭게 차린 동네 미용실은 초반을 제외하곤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여자 손님은 거의 없었고, 남자 손님만 드문드문 왔다. 엄마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묵묵했고, 투박했다. 미용실 원장에게 어울리는 덕목은 아니었다. 네 개였던 의자는 세 개로 줄었다. 의자를 판 돈으로 세를 내야 할 형편까지 왔다. 엄마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공치는 날'이 많았다.   


 이런저런 사정에도 나는 엄마의 미용실을 놀러 가는 것이 좋았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앞머리를 잘라달라고 할 수 있었고. 집에  없던 소파에 누워 잡지도 읽었다. 별자리 운세며 패션 동향, 연예인 가십거리가 어린 나에겐 귀한 소식이었다. 잡지를 정독하고 시간이 남으면 엄마 옆에 앉아 짜글짜글해진 파마 종이를 손으로 따뜻하게 문질렀다. 주름이 펴진 종이는 오른쪽 엄지발가락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두툼해진 종이를 엄마에게 건네는 일은 제법 뿌듯했다.  


 엄마는 종이가 찢어진 것이 아니면 버리지 않았다. 그때는 종이가 꽤 질긴 재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엄마의 생활력이 더 질겼다. 엄마는 일주일에 딱 한 번 쉬었고, 쉬는 날에도 다른 언니의 미용실 일을 도와주러 갔다. 에어컨은 손님이 와야 돌아갔고, 밥은 늘 도시락이었다. 밤 열 시에 셔터문을 내렸고, 집에서 미용실까지 버스로 다섯 코스나 됐지만 걸어 다녔다.  


 사실 그때 내가 엄마의 미용실에 놀러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마가 한 번씩 시켜주는 냉면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먹기 힘든 그 음식. 칼국수나 비빔국수, 잔치국수는 엄마가 할 수 있었지만, 냉면은 아니었다. 집에서는 도통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라면처럼 생긴 냉면이 나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늦여름, 나는 냉면이 먹고 싶었다. 쪽방 전기밥통과 냉장고에는 엄마가 해놓은 밥과 반찬이 있었지만 먹기 싫었다. 책가방을 집어던진 나는 웃으며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흔쾌히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여기 냉면 한 그릇만 갖다 주세요. 빨리요."


 그때 먹은 달큼한 냉면이, 서른다섯이 넘어 먹고 있는 지금의 냉면과 맛이 똑같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냉면을 먹다 말고 돌연 엄마에게 고백했다.


 "엄마, 그때 미용실에서 냉면 시켜줬을 때 나는 알고 있었다."

 "뭐를?"

 "그 날 엄마가 공쳤다는 거."

 "진짜? 그랬나?"

 "어. 미용실 바닥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더라고. 냉면을 먹으면서도 엄마한테 참 미안했다."


 엄마는 별 걸 다 기억한다고 웃어넘겼지만, 나는 별 것도 아닌 거에 목이 좀 메어왔다.


 엄마. 그때는 한 그릇만 시켜서 먹었는데, 이번에는 두 그릇을 시켜서 내가 결제까지 했으니까. 완전히 공친날은 아니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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