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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Aug 13. 2020

몸짱 아줌마

 그녀는 '니들에게 봄날을 돌려주마'라고 했다. 하지만 내 여동생은 그녀만큼 친절하진 않았다. 퍽 하고 날아든 레깅스. 나 좀 당황했다? 동생은 나지막이 소리쳤다.


 "입어."




 사실 동생이 이렇게까지 한 건 내 뱃살 때문이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은 게 화근이었다. 벗자마자 동생은 한마디 뱉었다. "미쳤다, 미쳤어." 그리고는 그것이 날아들었다. 고급 쫄쫄이는 내 얼굴에 찰지게 감겼다. 나는 좀이 아니라 좀 많이 벙벙해졌다.


 상체가 유독 약했던 나는 '쪼아도 쪼아도 쪼아 지지 않는 웨딩드레스의 주인공'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를 품었다 빼내니 많이 달라졌다. 체형 자체가 변해버렸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약한 상체는 더 이상 없었다. 이 두툼한 것들은 뭐고 나는 누구지. 동생이 나보다 더 내 살들을 안쓰러워했다. 나는 이제껏 안쓰러워하지 않아서 절박하지 않았던가. 내 몸을 이렇게 본 적이 있었던가. 처음 보는 운동용 레깅스 앞에서 기가 죽어 있는데 동생이 또 툭 던지고야 만다.


 "언니, 언니 자신을 포기하지 마. 제발."


 몇 달 전부터 제부와 함께 헬스장을 다니던 동생은 아예 PT까지 끊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내 PT를 자기가 해줄 참인 것 같다. 동생은 매일 한 시간씩만 해보자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동생은 2주 동안 매일 한 시간 하고도 반을 더 시켰고, 말도 안 되는 식단까지 일일이 챙겨줬다. 누가 그랬던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있는 사람이 되라고.(좀 나와봐...) 동생은 자신의 헬스에도, 언니의 몸만들기에도 기꺼이 미쳐주었다.


 첫 시작은 하체였다. 처음 해보는 헬스에다 근육이라고는 만나본 적도 없는 나는 생각했다. '왜 사서 고생, 아니 고통이지?' 이건 돈을 줘도 못하겠다. 얼굴은 시뻘게졌고,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다. 무게를 드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내 몸의 무게로만 운동을 하는데도 버거웠다. 나는 근육이 불탈 정도로 아프면, 살도 진짜 뜨끈뜨끈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류의 근육통은 이튿날보다 사흗날이 더 아프다는 것도.


 하체를 시작으로 등, 가슴, 어깨+팔 순으로 운동이 이어졌다. 사람의 몸은 정직했다. 등을 하는 날엔 등이 아프고 가슴을 하는 날엔 가슴이 아팠다. 어깨+팔 운동을 하면 머리를 감기 어려워졌다. 동생은 운동초보인 나를 위해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줬다. 2주 뒤, 집에 돌아가서도 혼자 할 수 있도록. 아령과 의자 같은 것들을 활용한 방법들을 위주로 하나씩 배워나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사람은 안 변해'라는 격언과 싸우자고 마음먹었다. 아이가 옆에 있든 낮잠을 자든 상관없었다. 나는 매트를 깔고 아령을 들었다. 남편과 아이 밥을 차려주고, 내 식단을 따로 또 차렸다. 유명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따라 했고 격한 유산소 운동도 소화했다. 8주를 지켰다. 몸은 서서히 조금씩 바뀌어갔고 안도감과 동시에 약간의 희망과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다. '내 몸은 바뀔 수 있을까.', 'PT를 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때 사실 헬스장에 가고 싶었다. 비슷한 몸을 갖고 태어난 동생은 벌써 근사한 몸매로 바디 프로필을 찍고 있는데, 나는 혼자 거실 TV 앞에서 바둥거리는 것만 같았다. 제부는 "처형 스스로 8주를 한 거면 엄청 잘한 거네요."라고 했지만 왠지 서글펐다. 웃기게도 나는 '누가 나를 더 운동시켜줬으면 좋겠고, 돈을 주고서도 운동을 배우고 싶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현실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코로나 19도 끝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8주가 지나고서는 운동도 식단도 흐지부지해졌다. 나는 격언에게 진 패배감과 '내가 그럼 그렇지'라는 무력감,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는 자괴감까지 쓰리 콤보로 맞았다. 그즈음 손목과 팔꿈치에 이어 어깨 통증까지 새로 생겨서 제대로 잠도 들 수 없었다. 내 나이나 자세, 부족한 운동량의 문제였겠지만, 육아니 살림이니 하는 것들의 단어에다 후유증을 갖다 붙이며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핑계를 대는 내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쓰리 콤보는 물풍선처럼 점점 더 부풀어올랐다.




 물풍선이 터지지 않고 쪼그라든 건, 남편 덕분이었다. 남편은 단 한마디로 수도꼭지를 잠갔다.

 

 "하고 싶으면 해."


 남편의 조건은 딱 하나였다. 20회, 30회 끊지 말고 10회씩 여러 번 해보라는 거다. 30회를 등록하고 10번만 가는 꼴을 못 보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의 현명함에 격하게 동의했다. 그래, 사람은 변하지 않지. 하지만 성장은 할 수 있다 이거야.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하러 가는 게 이렇게 좋을 일이 될 줄이야. 다행히 어린이집의 문은 다시 열렸고, 나는 매일 두 시간을 키울 수 있었다. 근육도, 그리고 나도.

 

 PT를 시작한 지 오늘로 딱 한 달이 됐다. 요즘 내 취미는 '눈바디'다. 맨몸으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내 몸을 훑어보는. 좀 낯간지러운 취미다. 동생이 레깅스를 던지던 날, 그 집에서 처음으로 거울 앞에 섰을 때는 뱃살만 보였는데. 지금은 살보다는 어쩐지 '나다운 내'가 보인다. 아직도 가엾고 볼품없는 내 몸과는 상관없다. 여기저기 꿈틀대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내 열정이라고. 운동을 향한 내 애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위로 따지자면  이랄까. 입 만큼은 나는 몸짱 아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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