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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Sep 10. 2021

정체성

 일 년 만이다. 꼴랑 두 개의 글 밖에 없는 허접한 브런치인데 새 글 마저 일 년 만에 올라왔다.

일 년 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틀 전에 들었던 '정체성'이라는 세 글자 때문이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면서 엘리베이터에 붙은 A4 용지 포스터를 봤다. 대충 '자녀와 소통이 되는 눈높이 대화를 하고 싶은 시간 되는 엄마들 모여라'라는 홍보였다. 나는 두 가지에 다 해당이 됐기에 신청을 했고, 그 첫 수업이 이틀 전에 열렸다.


 육아 전문상담위원 한 명과 엄마 여섯 명이 왔다. 아이가 넷인 분도, 셋인 분도 계셨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이 시작됐는데, 나는 정작 수업의 주제보다도 상담위원이 인사말로 건넨 한 마디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엄마의 정체성과 나의 정체성. 이 두 가지가 있어요. 이걸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얼얼해졌다. 엄마의 정체성은 정말이지 명료하고 뚜렷한데, 나의 정체성을 생각해보자니 흐릿하고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정체성이란 뭐지. 나는 누구인가? 뭐 그런 따위의 질문으로 답을 할 수 있는 건가. 직업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건가. 직업이 없다면 정체성이 설명될 수 없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건가? 그럼 난 뭘 좋아하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이가 두 살 때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즈음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아이의 세상은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있는데 왜 엄마인 나의 세상은 점점 좁아지기만 하는 걸까.' 


 뭔가 먹구름 같은 한숨이 온몸을 덮친 날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네 살인 지금, 그 이후의 나의 세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때보다 좁아졌는가. 넓어졌는가. 냉정하게 판단해보니 아- 그래, 딱 그대로인 것 같다. 어떠한 성장통도 이앓이도 없이 말이다. 이렇게 그대로 멈추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고장 난 시계는 아니지만, 시간이 가는 대로 우당탕 휩쓸려 살아왔던 것 같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그래! 결심했어. 지금이라도 정체성을 찾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좀 흐릿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 정체성은 있으니까. 그걸 인정하고 톺아보면 될 일이니까. 나이가 들면서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매일 깨닫고 느끼고 있다.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라는 아집이 아니라 나를 지각하는 노력을 말하는 거다. 누군가 그랬다. 지각을 하다 보면 '통찰'이 된다고. 


 그런 지각의 과정에서 '브런치'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쓰고 싶은 날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리고 지금은 정말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다. 그게 내 정체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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